당신에게 시 - 그 어떤 위로보다
박형준 지음 / 사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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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러운 마음으로 가득할 때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불현듯 전화를 걸어도 반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줄 사람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지 못한다. 내 작은 상처와 아픔에 나보다 더 아파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땐 속울음을 쏟는다. 그러다 시를 읽기도 한다. 소리를 내어 시를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괜찮아지는 듯하다. 물론 시를 읽다 끝내 참았던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다.

 

 계절마다, 달마다 생각나는 시도 있다. 비가 오면 읽고 싶은, 눈이 오면 꺼내고 싶은 시집도 있다. 시 전부를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다시 찾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시의 세계는 넓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시는 여전히 많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산다. 박형준이 엮은 『그 어떤 위로보다 당신에게 시』을 읽으면서도 몇 권의 시집을 메모한다.

 

 박형준이 소개한 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부터 황동규, 허수경, 문태준, 이정록, 정현종, 김기택, 함민복, 이제니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시인과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 만나는 시도 많았다. 한 편의 시와 함께 박형준의 글이 있다. 박형준이 고른 시는 힘겨운 삶에 위로가 되어주는 시다. 그러니까 어떤 시는 밥이고, 어떤 시는 뜨거운 포옹이 고, 어떤 시는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시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고운 손이 되기도 한다. 봄을 품었지만 유난히 추워 마음까지 옹송그리게 만드는 이 겨울, 이런 시는 이 시대의 모든 어른에게 위로가 된다.

 

 「코코로지(CocoRosie)의 유령」

 

 지금은 거울 속의 수염을 들여다보며 비밀을 가질 시기

 지붕 위의 새끼 고양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희고 작은 깨끗한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겨울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나는 어른으로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른으로서

 봄이 되면 지붕 위가 조금 시끄러워질 것이고

 죽은 물고기들을 닮은 예쁜 꽃들을 볼 수가 있어

 봄이 되면 또 나는 비밀을 가진 세상의 여느 아이들처럼

 소리치며 공원을 숲길을 달릴 수 있겠지

 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은 겨울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부끄러움을 가질 시기 (56쪽)

 

 황병승의 시에 박형준 시인은 이런 글을 덧붙혔다. ‘어른들의 슬픔은 신문에서, 방송에서, 회사 사무실에서 떠들어대며 객관화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슬픔이다. 그들은 슬픔을 나누고 곱하고 빼고 더하며 슬픔의 양을 잰다. 거울을 비춰보면 수염이 가득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자신만의 슬픔을 비밀스럽게 간직하려는 어린이다. 어린이들의 슬픔을 유리창을 맑게 닦아내는 세상의 창이다.’ (57쪽) 겨울이 지나고 나면 분명 봄은 올 것이다. 저마다 기다리는 봄의 풍경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생이 올라탄 롤러코스터는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분명 희망도 있을 터. 이성복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의 롤러코스터가 어디쯤 와 있을까, 생각한다.

 

 「강」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조각이

 미지(未知)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100쪽)

 

 ‘우리는 사소한 존재이지만 언제나 인생이란 강물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쓸쓸하고 아프더라도 그 기척은 아름답다’(101쪽)고 전하는 박형준의 글처럼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존귀하고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시가 지닌 힘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읽은 때마다 아릿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니 말이다.

 

1년 단위로 매듭지는 생인 양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괜히 더 심란하기도 하다. 도망치듯 떠나온 1월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새로 세워질 계획들을 생각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 게 아닌가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는 날들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을 1년, 천양희 시인의 시를 읽으며 절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1년」

 

 작년의 낙엽들 벌써 거름 되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작년의 씨앗들 벌써 꽃 되었다

 후딱, 1년이 지나갔다

 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 꺾었다 (216쪽)

 

 겨울에 마주한 까닭인지 기형도의 시 「겨울. 눈(雪). 나무. 숲」의 이런 시구를 여러 번 읽는다. ‘나는 여기 있다./ 죽음이란/ 가면(假面)을 벗은 삶인 것./ 우리도, 우리의 겨울도 그와 같은 것’/ 우리는/ 서로 닮은 아픔을 향(向)하여/ 불을 지피었다./ 창(窓) 너무 숲 속의 밤은/ 더욱 깊은 고요를 위하여 몸을 뒤채인다. (138,139쪽)

 

 ‘시는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숨통 같은 것이다. 숨을 잘 쉬면 육신이 맑아지고, 육신이 맑아지면 숨결이 맑아진다.’ (6쪽)는 박형준 시인의 말처럼 고단한 영혼에 위안을 줄 시들이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번지는 당신의 슬픔을 시가 위로한다. 감히 짐작할 수 없었던 크기의 맹렬한 위로와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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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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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군가에서 나로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소설을 읽는 건 아닐까. 소설이야말로 꾸며진 이야기라는 완벽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장 내밀한 우리네 삶과 대면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통해 그 확신에 한 발 다가선다.

 

 열네 편의 소설은 고스란히 우리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때로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꿈꾸는 일탈의 조각들, 아득한 기억 속에 숨 쉬는 어떤 기억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로 채워진 소설집이다. 하여 어떤 단편은 지루하게 읽히기도 하고, 어떤 단편은 조미료 맛이 그리운 음식처럼 무미건조했고, 어떤 단편은 고즈넉했고, 어떤 단편은 은밀하게 다가온다. 우리 삶이 특정한 감정으로 말하여질 수 없듯 말이다. 놀라운 건 앨리스 먼로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다. 그것은 여든을 넘은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산물이다.

 

 단편마다 나의 이야기처럼 소름이 돋고 빠져드는 이유가 그 증거다. 한 남자의 아내로 딸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시인이라는 완벽한 자아까지 갖춘 한 여성의 일탈과 마주하는 <일본에 가 닿기를>는 어떤 특별함을 꿈꾸는 이들에게 묘한 충만을 안겨주기도 한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향한 욕망에 충실하려는 뜨거운 열망이 끝나 뒤에 남겨진 죄의식이 현실을 지배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죄. 그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결연하고 탐닉적인 관심을 아이가 아닌 다른 것에 기울였었다. 죄.’ (일본에 가 닿기를, 39쪽)

 

 정말 그것은 죄일까. 다른 어떤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마음일까. 앨리스 먼로는 이처럼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다른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건 누구나 그런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아문센>은 계획된 대로 모든 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시골 요양원의 권위적인 의사와 도시에서 그곳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교사. 둘은 그 자체로 주변인의 관심과 수다의 주인공이 된다. 여교사와 의사는 사랑을 나누고 결혼식을 하러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이 결별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과 몇 년 후 다시 조우하는 모습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통증으로 짐작할 뿐이다. ‘여전히, 우리가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라도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각자 가는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만큼 확신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아문센, 87쪽)

 

 우리 생엔 이처럼 명확하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절도 있다. 슬프도록 아름답거나 가혹하게 잔인한 시절이 그러하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닐이라는 다른 사랑을 선택해 원하지 않는 변화를 겪어야 하는 아이의 이야기<자갈>에서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게 생은 더욱 잔인하다.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았을 나이인 나는 가족처럼 기르던 개를 물에서 구하기 위해 죽은 언니 카로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그 과경을 목격한 나의 상처를 돌아봐 줄 이는 왜 없었을까. 여전하게 트라우마로 따라다니는 장면, 어른이 되어 만난 닐의 말은 슬픔의 크기를 줄어들게 만든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자갈, 142쪽)

 

 그럴지도 모른다.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이 희극이 되지는 않겠지만 옅어질 것이다. 그런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게 우리 삶이라고 앨리스 먼로는 말한다. 고요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이다. 누구나 늙고 죽는다. 늙는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비밀 하나쯤 품었다면 서글픔이 사라질까. 부유한 아버지를 둔 소아마비를 앓는 여자 코리와 유부남인 젊은 건축가의 밀회를 다룬 <코리>는 그런 비밀이다. 둘의 관계를 알고 협박하는 이가 있지만 개의치 않고 오랜 시간 만남을 유지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숨 막히고 떨리는 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할 수 있다면 삶은 찬란할 것이다.

 

 모든 삶이 그럴 수 있을까. 당신 혹은 나의 삶도 <호수가 보이는 풍경>처럼 머리에서 맴도는 기억들이 어지럽게 존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먼저 떠나고 요양원에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삶. 거부할 수 없는 생의 진실이다. 앨리스 먼로는 현재형인 삶이 과거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라졌다고 믿는 과거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전적 소설인 어린 시절 동생들의 태어남을 통해 탄생을 경험하고 친밀했던 이의 죽음으로 처음 시체를 발견하는 <시선>, 알 수 없는 충동과 불안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의 감정을 정교하게 묘사한 <밤>, 교사였던 어머니와 동행한 댄스파티에서 성에 대해 눈 뜨는 이야기 <목소리들>, 내가 아닌 타자他者가 되어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주는 <디어 라이프> 를 통해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진리이자 대단한 발견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디어 라이프, 416쪽)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 사라질 시간에 대한 기록, 내가 모르고 지나온 삶의 기척을 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제가 되는 오늘을 가만히 꺼내볼 시간을 기약할 수 없지만, 어쩌면 사라질지 모르는 일상이라는 찰나를 몇 줄의 메모로 붙잡고만 싶어진다. 모든 게 앨리스 먼로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앨리스 먼로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런 기대나 설렘 없이 그녀의 글과 만났다. 열네 편의 단편은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생이라는 바다에 닿는 여행 같았다. 그 물길은 때로 요란하게 요동치기도 하고 어디선가 날아온 부유물과 함께 흘러간다. 긴 시간 흘러 바다에 닿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충만해진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그것이라는 명백한 진실과 맞닿는 순간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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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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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대출로 인생의 발목이 잡힌 이들은 많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 갚을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맞겠다. 취업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든든한 배경도 없던 나는 3D 직종에 취업을 했다. 노동조합은커녕 갑과 을이 분명한 직장에 불만이 많았지만 동료들과의 어울림으로 힘겨웠지만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1929년에 발표된 코바야지 타끼지의 『게 가공선』을 읽으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잠깐 안도했고 우리의 노동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학생은,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간 절간의 어두컴컴한 불당에서 보았던 ‘지옥 그림’을 떠올리며 그것을 바로 자신이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 적 그에게 그런 그림들은 마치 이무기 같은 동물이 늪에서 꿈틀꿈틀 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과 정말 똑같았다. ―그들은 과로 때문에 오히려 잠들지 못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유리창을 마구잡이로 긁어대는 듯 섬뜩한 이 가는 소리나 잠꼬대, 가위눌린 듯한 괴상한 고함 소리가 어두컴컴한 ‘똥통’ 여기저기서 들렸다.’ 57쪽

 

 소설은 131쪽의 짧은 분량으로 내용도 간단하다. 제목 그대로 게 가공선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생생하게 담았다. 문제는 평범한 게 가공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1926년 게 가공선에서 가혹한 노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은 자본에 의해 잔혹하게 소모되는 노동 현장을 고발한다. 먼 바다에 홀로 선 게 가공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보여준다. 감독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 속 표현처럼 그곳은 ‘똥통’이었고 ‘지옥’이었던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난한 농부, 학생, 어부, 힘든 광산에서 치여 선택한 광부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국가적 산업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혹사한다. 그리하여 회사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작은 희망은 싹을 틔우기 전에 사라진다. 시체로 변하는 동료를 보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단합한다. 파업을 도모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감독이 불러들인 구축함의 해병 앞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소설은 실패가 아닌 다시 한 번 투쟁의 열의를 불사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앞날의 승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사느냐, 죽느냐 하는 거니까.”

 “그래, 한 번 더! ” (129쪽)

 

 발표된 지 80년이나 지난 소설이 지닌 의미는 특별하다. 그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깊어만 가는 양극화, 늘어가는 청년 실업,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 등 우리 사회 곳곳의 심각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거울처럼 우리네 삶을 비추는 아픈 소설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자본에 휘둘리며 살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며 응원하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그들의 환청과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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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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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란 제목을 지닌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목차를 훑어 내고 저자를 확인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고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는 당연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될 것이다. 번역가, 소설가, 신화전문가 이윤기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노하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번역과 글쓰기에 대한 39편의 에세이를 통해 이윤기의 생생한 말과 글을 마주할 수 있다.  그가 쓴 소설과 번역한 작품을 접한 이라면 더욱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작품을 세 네 권 읽었고 읽지 않은 소설과 산문집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의 열혈 독자라 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신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소설에 녹여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불어 문학, 번역, 언어에 대한 생각도 만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그의 글에서 단호함이 전해진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숨어 있다.

 

 ‘나는 문학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에다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에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이지 ‘저 자신’ 에게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는 아닌 것이다. 학문은 나날이 쌓아야 하고, 도는 나날이 비워야 하듯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에다 지어 붙이는 이름은 나날이 늘려야 하고 ‘제 이름’ 에 붙는 이름은 나날이 지워가야 하는 것이다. 남의 얼굴 보고 이름을 지어야지 제 얼굴 보고 이름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67~68쪽, <얼굴 보고 이름 짓기> 중에서)

 

 뿐만 아니라 번역에 대해서도 그가 얼마나 단어, 문장에 본 뜻을 전하려 애썼는지 알 수 있다.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오역에 대한 사례도 들려준다. 그는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어준 책으로 『장미의 이름』을 꼽으면서 오역에 대한 부분을 솔직하게 개정판의 글을 통해 인정한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반성한다. 자유로운 영혼인 ‘그리스인 조르바’ 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건 이런 그의 노력 덕분인 것이다. 정말 멋진 작가다.

 

 이 책은 비단 문학이나 번역처럼 전문적인 글쓰기에 대한 책만은 아니다. 이윤기의 글을 통해 우리는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쓰고 있는지, 말이 지닌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는지 묻기 때문이다. 속어, 비어, 줄임말을 많이 사용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부리는 말, 내가 부릴 말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한자나 영어를 병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극소수의 독자에게나마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필요를 느낄 때만 그렇게 한다. 하지만 한글 표기만으로도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져서 그럴 필요를 느낄 때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272~273쪽, <내가 부리는 말> 중에서)

 

 많은 말을 하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강렬하다. 다만 그대로 전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은 많은 이가 그의 책을 펼칠 것이다. 글을 통해 여전히 살아 있어 조르바처럼 춤추는 이윤기를 만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설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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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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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12쪽

 

 예기치 못한 사고, 질병은 예외도 없이 모두에게 닥칠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내가 아닌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위무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니 타자의 시선에서 누군가의 불행은 안타까운 감정,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미약하나마 성금이나 자원봉사라는 행위를 통하여 할 일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도 다르지 않다.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진짜 재난이 무엇인지 묻는다.  

 

 주인공 요나는 정글이란 여행사에 근무한다. 정글에서 요나가 기획하는 여행상품은 재난 여행이다. 말 그대로 지진, 태풍, 가뭄, 화산, 쓰나미, 해일 이 발생한 재난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다. 10년 동안 근무한 요나는 정글에서 퇴출 대상으로 상사 김으로부터 성추행까지 당한다. 정글에서 최대 위기에 처한 요나에게 김은 휴가 겸 출장을 권한다. 기획자가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 재난 상품을 검토해보라는 것이다.

 

 ‘재난이 한 세계를 뚝 끊어서 단층처럼 만든다면, 카메라는 그런 단층을 실감하도록 돕는 도구였다. 카메라가 찰칵, 하는 순간 그 앞에 찍힌 것은 이미 인물이나 풍경이 아니다. 시간의 공백이다. 때로는 지금 살고 있는 시간보다 짧은 공백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요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은 이미 시작된 행보를 확인하는 일일 뿐.’ 35쪽

 

 요나가 선택한 여행지는 ‘사막의 싱크홀’ 란 상품으로 베트남 남부의 무이라는 섬이다. 5박 6일의 일정으로 섬의 사막에 위치한 싱크홀을 둘러보고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더 이상 재난 지역이 아니었다. 재난을 이용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할 뿐이다. 요나는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그만 일행과 헤어지고 만다. 신분증과 여권도 없이 무이로 돌아온다. 리조트 매니저는 요나가 정글의 직원임을 확인하고 무이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부탁한다. 더불어 리조트와 무이를 지배하는 폴에 대해 들려준다. 요나가 여권도 역시 폴에게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요나는 새로운 재난 시나리오를 만드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재난 여행을 준비할 때는 어느 각도로 칼을 들이대도, 누구나 감동하고 슬퍼할 만한 재난의 단면들이 나타나도록 고심해야 한다. 사람들의 동공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강렬한 이미지다.’ 145쪽

 

 요나는 새로운 재난 상품을 만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럭이라는 청년의 도움을 받아 무이 곳곳을 둘러보던 요나는 그곳의 진짜 삶과 마주한다. 어디든 폴의 그늘에 있었다. 폴이 기획한 시나리오는 끔직했다. 무이의 개발을 위해 허위 재난을 만들면서 걸림돌이 되는 가난한 하층민인 수상 가옥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사막에 거대한 구멍을 파는 도구이자 재난으로 발생할  갖가지 사연의 희생자로 말이다. 누군가는 폴의 계획대로 이미 재난을 위해 죽었고, 곧 죽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나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175쪽

 

 무이에서 재난은 곧 현실이었다. 어디 무이 뿐일까? 소설 속 직장이 정글이듯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작가는 우리의 삶을 정글이라 단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낸 건 아닐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은 이미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 긴 불황으로 이어진 청년 실업, 불안한 직장 생활, 거대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 소시민의 삶, 우리가 사는 곳이 무이와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재난 여행이라는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을 통해 윤고은이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우리 현실이 재난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극복하는 일은 현실을 이겨내는 것이고, 재난으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켜는 일이다. 그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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