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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김혜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끝은 시작이다’란 말은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 끝은, 끝일뿐이다. 잔인하게도 그렇다. 시작을 위한 시도만 존재할 뿐이다. 울부짖음으로, 몸부림으로 말이다. 무수한 몸부림의 끝에 시도는 시작을 잉태할 수 있다. 김혜진의 『중앙역』은 그런 비루하고 치사한 인간의 몸짓을 통해 시작을 말한다. 그러니까 감히 말하자면 시작은 희망의 다른 말이며 반드시 시도라는 절망을 견뎌야 한다.
이야기는 불편하다. 친절하지 않다. 깊고 단단한 절망의 구덩이에서 시작한다. 다른 삶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 웃음과 기대를 안고 움직이는 사람들, 잠시 이별을 위해 머무는 곳, 중앙역에서 그들과는 다른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점묘화 속 점처럼 인물을 묘사하여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전달한다. 때문에 화자인 ‘나’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저 중앙역에 모여든 노숙자 중 하나로만 인식된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과연, ‘나’는 왜 이곳에 왔으며 이전엔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이다.
‘내 시간은 어딘가에 단단히 묶여 있다. 누군가 내 시간을 단단히 매어둔 게 틀림없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이다. 한꺼번에 모두 잘라내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해야 이 지겨운 하루를 빨리 소진해버릴 수 있을까. 나는 계단이나 벤치에 정물처럼 앉은 사람들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흘끔거린다.’ 31쪽
소설은 단순하다. 중앙역 안에서의 시선과 그들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으로 나눠진다. 화자인 ‘나’ 는 안에 있고 독자인 ‘나’ 는 밖에 있다. 뉴스를 통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람들의 모습을 픽션으로 만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김혜진은 『중앙역』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아니 잊고 싶어 하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삶에 대해 말한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의 사랑, 그들의 희망,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의 오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화자인 ‘나’는 화가 난다. 가방을 훔친 여자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함께 꿈을 꾸는 일에 대해 질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참을 수 없다. 젊음이라는 이유를 들어 광장을 벗어나 쪽방을 얻어 새롭게 시작하라는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과 자식이 있는 알콜중독자로 복수가 차오르는 나이 많은 여자와 살고 싶다.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에게 여자마저 없었더라면 삶은 지속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욕망과 본능 그 아래에 놓인 태초의 인간에게 부여된 평화였으니까.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경찰서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울타리는 너무 빈약하다. 강자에게 유린당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법자가 되어 살아야 한다. 그래서 폭력에 앞장서고, 자포자기의 삶을 산다. 우리는 알면서 외면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시작을 위해 시도를 반복하면서도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그들이 느낄 거대한 공포를 알지 못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을 나와 결국 자살을 선택했던 사람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나는 세계가 남김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상상한다. 모든 게 공평하게 황폐해지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 절망감과 무력감을 떨쳐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소리 지르고, 고통을 느끼고, 죽어가면서, 우리도 이렇게 살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여자와 나는 이미 다 무너졌는데. 이토록 또렷하게 망가진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우리는 자신을 숨기고 가장할 얇은 거짓 하나조차 걸칠 수 없다. 발가벗은 진실은 언제나 서로를 향해 각을 세우고 할퀴고 흉터를 남긴다.’ 167쪽
소설 속 중앙역은 가상 공간이 아니다. 작가는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주변이 풍경을 단문을 이용한 최대한의 절제로 시작을 위한 시도의 세찬 몸부림을 그려낸다. 그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언제나 ‘안’이 아닌 ‘밖’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될까?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을 때 삶은 끝이다. 그러니 죽어가는 여자를 끝까지 곁에 두지 못하고 응급실에 밀어 놓고 도망치듯 돌아서는 화자를 비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절망 끝에 매달린 사람들에게 ‘끝은 시작이다’라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는 젊은 작가의 손을 덥석 잡을 용기가 없다.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