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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라면 그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말이 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은 목소리가 아니라 몸짓이나 눈으로도 가능하니까. 때로 개나 고양이에게 고민이나 비밀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전부다. 동물들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화소설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밤의 나라 쿠파>도 고양이가 등장하는 우화소설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은 ‘톰’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낚싯배의 표류로 낯선 곳에 도착한 주인공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면서 시작한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쥐도 등장하지만 이름이 제리는 아니다.)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나는 톰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톰은 말에 실려 마을 밖으로 왔다. 톰이 사는 나라는 독이 있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곳이다. 거대한 나라 철국과 8년 간 전쟁 끝에 패하고 지배를 받는 상황에 놓인다. 옛날부터 철국의 속국으로 살았지만 병사들이 나라 안으로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항상 철국과 관계가 좋다고 말하던 국왕 칸토는 이런 상황에도 평화를 자신한다. 철국의 말만 잘 들으면 괜찮다고 말이다.
“국왕이라는 건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자기 삶을 위한 지지대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142쪽)
국왕이었던 칸토가 철국 병사가 지닌 총이라는 낯선 무기에 의해 죽자 인간들은 모두 두려움에 떤다. 톰을 비롯한 다른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칸토의 아들 산토는 자신의 안위만 챙기자 인간들은 철국 병사를 마을에서 내쫓기 위해 대책을 세운다. 그러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아준 쿠파의 투명한 병사를 기다린다.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살아 움직이는 삼나무 쿠파와 싸우기 위해 마음의 복안 대장에게 뽑힌 쿠파의 병사. 이야기는 쿠파의 병사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 쿠파의 병사가 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거대한 삼나무 쿠파에게 목숨을 잃을 각도를 해야 한다. 쿠파의 병사는 건강한 사람이 아닌 투명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 고양이와 말을 하고 있는 현실도 놀랍지만 움직이는 삼나무, 독을 품은 벌레, 투명한 병사까지 정말 기이한 나라다. 톰은 나에게 자신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 철국 병사와 싸워주기를 부탁한다. 철국 병사들이 인간들을 해친 후 나중에는 고양이들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 톰과 함께 벽에 둘러싼 마을 근처에 도착한 나는 몸을 숨이고 신호를 기다린다. 여전히 벽 밖에는 철벽 병사가 주둔하고 있다.
마을로 돌아온 톰은 놀라운 장면과 마주한다. 칸토를 죽이고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은 철국의 애꾸눈 병장은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복안 대장이었다. 복안 대장은 사람들에게 쿠파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진실은 모두 거짓이었다. 쿠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쿠파의 병사는 어디로 사라졌나? 복안 대장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 칸토 국왕의 실체를 밝힌다. 철국에게 복종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냈고 쉬운 통치를 위해 위협적인 대상인 쿠파를 만들어낸 것이다. 왜 복안 대장은 이제야 그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는 걸까.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441쪽)
“나는 시킨 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기로 했다. 단지 그뿐이야.” (461쪽)
복안 대장의 말처럼 우리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고정관념은 소설 곳곳에서 발견한다. 고양이에게 자신들을 잡지 말라고 당부하는 쥐,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쿠파의 존재, 아주 작은 나라의 사람들이 소인국이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걸리버 여행기 속 걸리버처럼 그들에게 거인이다. 작가는 말하는 고양이라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설정을 시작으로 결국엔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힘이 필요한 시대에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함께 만드는 사회를 위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좋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