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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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라서, 누군가 권해준 소설이라서, 언론의 호평에 관심이 생겨서 읽는다. 읽는다는 건 듣는다는 것이고 듣는다는 건 집중한다는 것이고 집중한다는 건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책은 많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는 책, 책을 읽고 쓰는 데 중점을 두는 책, 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책, 책과 삶을 말하는 책. 어수웅의 『탐독』은 어떤 책일까. 인생 최고의 책에 대한 이야기, 책의 힘을 말하는 책, 책을 통해 변화하는 삶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잘 알려진 책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 책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은 책이, 여러 번 읽은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 권하는 책이 모두 좋은 책은 아니다. 특정 부분이 재미있어 기억이 남을 수도 있고 필요에 의해 여러 번 읽어야 할 책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꾸 생각이 나는 책, 책 속의 인물이 현실의 누군가와 겹쳐 보여서 힘든 책, 읽을 때마다 다른 목소리를 듣는 책이라면 진정 인생의 책이라 꼬집어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책이 나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올 수는 없지만 그 책에 대한 이야기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특별한 책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어수웅이 만난 열 명의 예술가는 저마다의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어떻게 그 책을 읽었는지, 책을 읽을 당시 자신의 상황, 책을 읽은 후 달라진 내면에 대해서 말이다. 한 권의 책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책들은 내게 새로운 책이 된다. 그 책을 읽든 읽지 않았든. 아쉽게도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았다. 더 안타까운 건 읽어야 할 책으로 오래전부터 책장에 안착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읽어야 할 일만 남은 것.

 

 이제 책이 아닌 그들의 말에 집중해보려 한다. ‘나를 바꾼 책, 내가 바꾼 삶’이라는 주제의 인터뷰는 신선한 주제는 아니다. 열 명의 인터뷰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다른 책에서 다룬 적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끌리는 이유는 책과 인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애정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은 건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을 읽고 가족이 다시 보였다는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과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우리의 대작가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다. 알파고와 대결하며 살아남기 위해 고분분투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까. 조너선 프랜즌의 진짜 사람들이라는 말에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비교하고 회의하라는 에코의 말은 인터넷 세대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이 어떻게 인간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겠어요? 소설가의 임무가 더 중요해진 시점입니다. 진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하니까요.” (46쪽, 조너선 프랜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정보를 여과하고 걸러 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 분별력을 가르쳐야 해요.” (101쪽, 움베르트 에코)

 

 그뿐인가. 김영하, 정유정, 김중혁, 은희경은 어디서 만나든 반갑고 유쾌하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과 그들을 지탱해주는 한 권의 책과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 특히 하나의 소설이 탄생하는 집필실의 소개는 놀라웠다. 직접 그린 지도가 가득한 스케치북, 거기에 세밀화와 확대도, 주인공의 동선과 사건의 동선을 미리 그린다는 것이다. 다른 소설가 역시 몇 권의 집필 노트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고 고친 후에 내게 온 소설이라니, 새삼 그 소설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책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이렇게는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도, 생각을 조금씩 바뀌게 해 줘요. 한꺼번에 바뀌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136쪽, 은희경)

 

 은희경의 말처럼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는 없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책이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없다. 어떤 책은 쉼을 위한 책이고 어떤 책은 위로를 전하는 책이고 어떤 책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책이고 어떤 책은 여전히 읽지 않은 책이 된다. 읽지 않은 책이 읽은 책이 되기도 하고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 당신에게 주고 싶은 책이 되기도 한다. 책이라는 미지의 세계, 읽어야만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 책은 정말 대단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한 권의 책이 인도하는 그곳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당신의 삶은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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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문의 기적 일공일삼 67
강정연 지음, 김정은 그림 / 비룡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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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믿었다.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뿐이라고 말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손녀가 있었으니 할머니가 맞지만 너무 젊은 나이였기에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언제 어떤 형태로든 이별이 찾아온다는 걸 경험했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러니 어린 나이에 갑자기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행복만이 가득했던 예쁜 ‘분홍 문’ 집의 김지나 씨는 맛있는 찌개를 해주려고 두부를 사러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별을 준비할 짧은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내를 잃은 박진정 씨와 엄마를 잃은 박향기의 일상은 엉망진창의 연속이었다.

 

 사랑하기에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던 엄마 김지나 씨는 남편과 아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남겨진 박진정 씨와 박향기 군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분홍 문’은 더이상 예쁜 문이 아니고 깨끗하지도 않다. ‘행복한 우리 집’은 ‘안 행복한 우리 집’이 되고 말았다. 향기와 아빠가 발로 차서 더러운 발자국만 가득하다. 아내와 엄마를 잃은 상실로 대충 살아간다. 아빠는 술에 취하고 아들은 게임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낸다. 챙겨주는 이가 없으니 향기는 학교에도 지각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지 않다. 모자 디자이너였던 아내와 연 박지성 씨의 모자 가게는 파리만 날린다.

 

 엄마가 있다면, 아내가 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아내가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은 부자에게 엄마 김지나 씨가 나타났다. 꿈이 아니라 진짜로 말이다. 아빠와 아들에게만 보이는 엄지공주. 엄마 김지나 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72시간. 아빠와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 옆에만 붙어 있고 싶다. 엄지공주가 된 엄마는 달라졌다. 모든 걸 다 해주던 엄마가 아니라 무서운 여장부로 변했다. 쓰레기장 같은 집을 정리하고 향기는 학교로 진성 씨는 가게로 보낸다. 그리고 말한다. 예전처럼 이웃과 교류하고 시장에도 가고 주말에는 공원에도 나가라고. 엄마가 있을 때처럼, 기쁘고 즐겁게 사랑해야 한다고.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점점 줄어드는 시간 때문에 씩씩한 엄마 김지나 씨는 힘들다. 그런 엄마에게 몽 천사는 주어진 시간을 온 맘 다해 사랑하라고 말해준다. 아빠 박진성 씨도 힘들지만 괜찮다. 그래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떠났을 때보다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엄마와 다시 이별을 해야 하는 향기도 천사가 된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가 없어도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 엄마를 기억하고 살아가면 된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현재 곁에 있는 이들과 오늘을 사랑하라는 동화. 모두가 알지만 잊고 사는 이야기. 저마다의 문에 사는 모두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선물로 주어진 이 시간엔 그저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그냥 기다리는 거야.” (164~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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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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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혈연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가까운 친구나 주변에 입양을 했거나 재혼을 한 경우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족 구성원의 조건이 있다면 최우선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한 공간에서 함께 살고 가족이란 제도에 속한 구성원을 모을 수 있다면 말이다. 배우자가 아닌 가족에 대해서다.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그런 걸 묻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도 성장하면서 가족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당연한 일이다. 직업을 갖거나 결혼을 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본가를 찾는다. 그러나 소설 속 한민형처럼 부모를 가족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분명한 건 그럴만한 계기가 있다는 것이다. 한 씨 집안에서도 금기가 된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부모와 아들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 사건이 무엇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저마다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소설은 그것을 수수께끼처럼 던져놓는다.

 

 출판사를 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4남매가 있다. 첫 번째 화자는 집안의 아들인 한민형이다. 낙하산으로 아버지의 출판사에 다닌다. 성실한 사람은 아니지만 직원들에게 나쁜 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사장과 직원일 뿐이다.  자신이 부모에게 되돌릴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걸 알지만 그에게 부모는 가식덩어리로 존재한다. 특히 막내 여동생 영미를 입양한 어머니는 참을 수 없다.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을 입양했지만 결코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머니의 지독한 위선에 한민형을 치를 떤다. 한민형은 가족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소설 곳곳에서 죽은 한민희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려주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을 쓰든 안 쓰든 나는 위선자다. 나는 그걸 안다. 내 가족에 대해서도, 내 술친구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한민형, 26쪽)

 

 부모는 부모의 입장으로 자식은 자식의 입장으로 상대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아들의 생일에도 함께 밥 한 끼 먹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털어놓는 부분은 묘한 감정을 발생시킨다. 한 씨 가족은 서현주에게로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한민희의 친구였던 서현주가 며느리로 들어오면서 그나마 한 씨 가족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장모를 부모 그 이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어서 서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민형에게 가족은 아내와 장모, 그리고 딸이 전부다. 남편과 시댁 사이를 조율하는 서현주, 그의 위선은 정녕 옳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서현주, 82쪽)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가족 구성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들려주는 건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공통된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가족. 비밀이라는 독을 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서로를 해피 패밀리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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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천 개의 유혹 - 욕망이 만든 뜻밖의 세계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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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떠오르는 생각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이 지닌 물건에 대한 욕심, 나는 왜 갖지 못했을까,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은 마음.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불행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뇌. 『보석 천 개의 유혹 』을 읽으면서 나는 잠깐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서랍에서 잠자는 다이아 반지, 목에 걸린 평범한 목걸이, 나중에 하나쯤 갖고 싶은 우아한 진주 반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고대사와 물리학을 전공하고 보석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인 저자 에이자 레이든은 독자가 이런 생각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랬다.

 

 책의 본문에 등장하는 보석은(사진, 그림) 정말 매혹적이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누군가는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아름다운 보석에 숨겨진 역사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왜 보석일까. 인간의 욕망과 가장 많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도 누군가의 마케팅이라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렇다. 다이아몬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바로 드비어스였다.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영화 속 여배우에게 다이아몬드를 제공했다. 그저 광고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뇌는 약혼, 결혼반지는 반드시 드비어스로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보석의 가치는 결국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것이다.

 

 책은 이처럼 보석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보석 전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황금달걀과 역사 속 에피소드를 접목해 들려줄 뿐이다. 프랑스 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주,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와 파베르제의 황금 달걀을 통해 보석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거기다 양식진주 개발이 불러온 일본의 성장과 손목시계의 가치 변천사까지 들려준다. 저자는 보석이 정치적 수단이었고 권력의 상징임을 설명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러 면에서 마케팅의 귀재라 할 만했다. 여왕이 판 물건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진주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표하게 된 것은 단지 여왕이 진주를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항상 몸에 둘렀기 때문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일부러 진주와 진주가 연상시키는 모든 덕목을 자신과 결부시켰고, 진주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가장 핵심적인 통치 도구였던 거대한 상징화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258~259쪽)

 

 저자는 보석을 통해 세계사를 들려준다. 색다른 시선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하게 보석과 세계사에 얽힌 에피소드가 아니라 보석을 통한 인간의 욕망과 경제학, 심리학을 두루 다룬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서이고 누군가에는 물건의 가치, 광고, 가격을 매기는 경제학처럼 다가올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보석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읽든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욕망이다.

 

 ‘진짜 ‘보석’은 땅속이나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보석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보석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보석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보석은 우리를 살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으며 무언가를 만들지도 상상해내지도 못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보석의 반짝이는 표면과 마찬가지로 보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 (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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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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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다.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작가 윤대녕에 대한 이미지는 사막, 안개, 푸른빛. 그의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건 서툰 관계와 삶에 대한 회의를 지탱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탐구라고 해도 좋을까. 그러니 오랜만에 만난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에서 내가 기대한 것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문장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상처를 가진 인물이 등장했고 그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존재도 있었다.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린 사람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마마’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숨길 수는 없다.

 

 어쩌면 마마를 중심으로 아몬드 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는 알 수 없는 우주의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인지도 모른다.  재기를 꿈꾸는 극작가 김명우, 생부의 존재를 몰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마마의 조카 김현주, 소비되는 내가 아닌 자유로운 삶으로 전진하는 사진작가 박윤정, 연인의 잔혹한 죽음 후 관계의 단절로 생을 이어가는 윤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고등학생 정민. 마마가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마마는 그들이 서로의 절망과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라 믿은 것이다.

 

 화자 김명우를 통해 들려주는 그들의 지나온 삶은 고단함 그 이상의 고역의 연속이다.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느라 타인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 해체된 가족, 회복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윤대녕은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생의 무게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남겨진 생이 훨씬 가볍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먼저 경험한 생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조언이 될 수 있으니까. 각기 다른 세대는 서로가 통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하지만 같은 세대가 아니기에 객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방법은 아닐까.

 

 ‘나는 유대감에 대해 말했다. 상대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에서 얻어지는 친밀감을 통해 힘들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원했던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법이었다.’ (165쪽)

 

 선뜻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고 떠도는 아몬드나무 하우스 사람들이 정해진 날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장면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드러내어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 자신은 얼마나 외로운 존재였던가. 혼자서도 모든 걸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현대인에게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집이라는 공간, 함께 할 수 있다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돌이켜보면 위로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저 들어주는 것,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는 것.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다. 내가 알았던 것을 당신에게 전해주는 일. 마찬가지로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내게 전해주는 일. 그것은 소설 속 윤정과 명우가 나누는 대화 속 순환이다. 순환이 쌓이고 쌓이면 걷잡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힘. 그것은 소설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하는 윤대녕의 힘이다.

 

 “일정한 주기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삶의 에너지라는 게 존재하는군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봐야겠죠. 모든 존재는 순환하면서 나이를 먹고 성장을 거듭하니까요.”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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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5-1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단순한 걸 알아도 고장난 부품처럼 잘 안되는거거나 못하는 것...일테지 싶기도...하네요..모두 한마음 같지 않으니까. 타인들여서 지켜진 것들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족이었다면 오히려 안되지않았을까...싶어요.
멋진리뷰 잘읽고 갑니다.^^

자목련 2016-05-19 15:13   좋아요 1 | URL
때로는 단순해서 더 쉽게 잊고 지나치는 것 같아요.
여름처럼 더워요, 아니 입하가 지났으니 여름인가요. ㅎ

[그장소] 2016-05-19 15:2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 곁에 있는 사람 특히나 가족에 대한 건 ..늘 그래왔는데 ..타인들 구성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역광을 비추니 외려 잘 보이는 ,
겉으로 봐서는 사연이 풍선글처럼 떠있지 않는한 모를...일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