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문의 기적 일공일삼 67
강정연 지음, 김정은 그림 / 비룡소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믿었다.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뿐이라고 말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손녀가 있었으니 할머니가 맞지만 너무 젊은 나이였기에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언제 어떤 형태로든 이별이 찾아온다는 걸 경험했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러니 어린 나이에 갑자기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행복만이 가득했던 예쁜 ‘분홍 문’ 집의 김지나 씨는 맛있는 찌개를 해주려고 두부를 사러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별을 준비할 짧은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내를 잃은 박진정 씨와 엄마를 잃은 박향기의 일상은 엉망진창의 연속이었다.

 

 사랑하기에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던 엄마 김지나 씨는 남편과 아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남겨진 박진정 씨와 박향기 군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분홍 문’은 더이상 예쁜 문이 아니고 깨끗하지도 않다. ‘행복한 우리 집’은 ‘안 행복한 우리 집’이 되고 말았다. 향기와 아빠가 발로 차서 더러운 발자국만 가득하다. 아내와 엄마를 잃은 상실로 대충 살아간다. 아빠는 술에 취하고 아들은 게임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낸다. 챙겨주는 이가 없으니 향기는 학교에도 지각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지 않다. 모자 디자이너였던 아내와 연 박지성 씨의 모자 가게는 파리만 날린다.

 

 엄마가 있다면, 아내가 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아내가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은 부자에게 엄마 김지나 씨가 나타났다. 꿈이 아니라 진짜로 말이다. 아빠와 아들에게만 보이는 엄지공주. 엄마 김지나 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72시간. 아빠와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 옆에만 붙어 있고 싶다. 엄지공주가 된 엄마는 달라졌다. 모든 걸 다 해주던 엄마가 아니라 무서운 여장부로 변했다. 쓰레기장 같은 집을 정리하고 향기는 학교로 진성 씨는 가게로 보낸다. 그리고 말한다. 예전처럼 이웃과 교류하고 시장에도 가고 주말에는 공원에도 나가라고. 엄마가 있을 때처럼, 기쁘고 즐겁게 사랑해야 한다고.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점점 줄어드는 시간 때문에 씩씩한 엄마 김지나 씨는 힘들다. 그런 엄마에게 몽 천사는 주어진 시간을 온 맘 다해 사랑하라고 말해준다. 아빠 박진성 씨도 힘들지만 괜찮다. 그래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떠났을 때보다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엄마와 다시 이별을 해야 하는 향기도 천사가 된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가 없어도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 엄마를 기억하고 살아가면 된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현재 곁에 있는 이들과 오늘을 사랑하라는 동화. 모두가 알지만 잊고 사는 이야기. 저마다의 문에 사는 모두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선물로 주어진 이 시간엔 그저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그냥 기다리는 거야.” (164~1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