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평온한 날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많이 읽고 조금 더 많이 쓰면 좋겠다고 혼자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게 무엇이든 더 많이 읽고 그게 무엇이든 더 많이 쓰고 싶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 기록 같은 것. 내게 소중한 이들과 더 자주 연락하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명 아이돌의 죽음과 화재 소식이 들려왔다. 뉴스를 보면서 큰 화재가 아니기를 바랐고 숫자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무섭고 처참한 현장의 공포는 꿈이 아니었고 현실이었다. 춥고 쓸쓸한 겨울만 쌓여간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에는 누군가 보낸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이, 고민과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 소식을 받는다는 건 전한 이의 마음 조각이 내게로 온다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또 한 해를 살았구나 생각하다 멈칫하게 된다. 삶을 안다는 건, 삶을 산다는 건 정말 어렵고도 어렵다.
내년에는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살고 있는가.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지. 그럼 내년에는 해보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나. 연말이라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고마운 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미안한 이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좀 더 다정하지 못해서 좀 더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 나를 여전히 지켜봐 주고 여전히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인사를 건네고 싶다.
연말 책 리스트는 오정희 컬렉션이다. 소장하고 있는 책은 제외하고 나머지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양장본이나 박스 구매에 대해 큰 욕심이 없는데 오정희 작가라서 자꾸만 눈이 간다. 산타 할아버지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올해 많이 울었고 착한 일도 많이 하지 않았으니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