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드리고 점심엔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는 아니고 맛있는 파김치가 생겨다. 어려서는 파김치의 맛을 몰랐다. 어디 파김치뿐이랴. 모르는 것투성이고, 편견에 먹어보지도 못하고 상상의 맛에 갇혀지냈다. 현재까지 이어져서 아직도 나는 굴을 먹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가, 어린 시절 엄마가 굴을 조새로 까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정작 영양가 넘치는 굴의 맛을 모른다. 그리고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굴을 팔아야 해서 한 번도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에겐 어린 딸에게 굴의 맛을 알려주는 것보다 그걸 모아서 팔아야 하는 이유가 더 컸을 거라고. 


냉장고에 어리굴젓은 아직 밀봉된 상태 그대로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이고 작은언니가 먹거나 다른 누구에게 주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 속 엄마는 김치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는 김치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동네 친구들과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깨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을 나는 지독하게 싫어했다. 창피했다. 철없던 나는 엄마의 그 작은 여유를 인정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밤 독서를 했다. 밤 독서라는 말이 괜히 근사하다. 봄밤 독서라고 해야겠다. 추워도 봄이니까. 이주혜의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를 읽고 있는데 너무 좋은 거다. 좋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보다 더 좋다. 엄마의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는 늙은 엄마의 모습을 잠깐 상상해 봤다. 나는 엄마를 닮았고 내가 늙는다면 그게 엄마의 얼굴이 될까. 책을 읽다가 에드리언 리치의 책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을 꺼냈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글에서 언급하는 비비언 고닉의 책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주혜는 내가 자신의 글을 읽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책을 통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말이다.


이주혜가 글에서 이름에 대한 부분이 등장하는 데 그 게 참 좋았다. 사실, 다른 부분도 넘 좋다. 내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았다. 큰 오빠는 아명까지 있었다. 세상에 그 시절에 아명이라니. 세 자매의 이름은 돌림이 있고 언니와 작은 언니의 이름의 한자는 그나마 뜻이 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큰 오빠를 낳고 아들을 하나 더 바랐지만 내리 딸을 낳은 엄마. 큰 언니와 작은 언니까지는 괜찮았지만 나도 딸이라서 그랬을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남동생의 이름은 항렬자를 넣어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나쁘지 않았고 어떤 이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나 할머니의 이름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를 끼고 자면서 항상 자신의 이름을 외우게 했다. 그래서 엄마 이름보다 할머니의 이름을 먼저 알았다. 나를 명명하는 이름, 나의 존재를 부여하는 이름. 여성이 이름을 갖게 된 시점, 오직 남성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던 존재, 그 이전에는 여성은 이름이 없는 존재였다는 게 너무 아프다. 고모의 이름은 기억하면서도 작은엄마의 이름은 한참후에 떠올린다. 


정확함이 이름 붙이기의 기본이라면 이름 바꾸기의 전제는 애정이다. 오직 애정으로 붙이고 또 붙인 이름만이 길어질 수 있고, 우리는 마음을 다해 긴 이름을 부르는 수고로움을 자처할 것이다. (「이름에게」, 중에서)


최근 아끼는 동생은 자신의 이름을 개명할 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휴대폰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개명할 이름으로 바꿔 저장했다. 그리고 통화를 할 때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려 노력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가 생각한다. 자목련이라는 이름, 내가 지은 이름이 좋다. 블로그의 존재를 아는 친구들은 나의 다른 이름, 자목련을 안다. 


이주혜의 산문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가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고. 당신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해도 연결되고 어느 순간 어떤 지점에서 마주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근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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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06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안 올라간다. ㅠ.ㅠ

수이 2023-03-06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재, 북플 다 이상하던데요. 저도 사진 한장 올리는데 8분 걸렸어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 맘으로. 알라딘 일 제대로 안 하네요 😡

자목련 2023-03-07 08:34   좋아요 0 | URL
노화된 제 컴퓨터 때문인가 싶었는데 아니었군요. ㅎ

유수 2023-03-06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주혜는 내가 자신의 글을 읽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저자지만 저도 그랬어요. 연결의 느낌과 글, 저도 흠뻑 공감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3-03-07 08:37   좋아요 1 | URL
뭔가 깊게 연결된 느낌이었어요. 신기하면서도 반갑고, 아무튼 이 산문집 좋습니다!

얄라알라 2023-03-06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자목련님 글, 문장은 짧은데 어느 한 문장도 흐름 안에서 뺄 수가 없이 정교하게 짜여짐...
자목련님의 기억에 저절로 같이 빠져들다 나왔습니다^^

자목련 2023-03-07 08:4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와의 시간이 아쉽고 그랬어요.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은...

페넬로페 2023-03-06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는 굴을 싫어했는데 요즘에사 굴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해 먹은 굴떡국이 그렇게 맛나더라고요.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유가 별로 많지 않은 세대였잖아요.
저는 엄마가 그렇게 돈을 떼이면서도 계모임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사나운 애착도 읽고 이주혜의 산문도 읽어야겠어요^^

자목련 2023-03-07 08:43   좋아요 1 | URL
굴떡국을 먹어도 저는 슬그머니 굴을 건집니다. ㅎ 아마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입맛인 것 같아요. ㅎ
맞아요, 계모임. 엄마에게 그건 절대적인 무언가였을지도 모르는데.
즐겁게 만나세요^^

레삭매냐 2023-03-06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 술을 진탕
퍼먹고 난 다음날 아침
친구들과 채석강에 나가서
굴 따시는 분에게 사 먹은
굴 생각이 납니다.

그 굴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생뚱 맞지만 굴전이 먹고
싶네요.

자목련 2023-03-07 08:47   좋아요 1 | URL
기억과 맛은 멋진 조합 같아요.
음, 주말에 굴전을 추천합니다!!

구단씨 2023-03-06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주혜 작가님, 소설이 아니라 산문으로 신간을 만나게 하는군요. <자두>도 좋았는데요. ^^
<사나운 애착> 그렇고,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 좋네요...

자목련 2023-03-07 08:51   좋아요 0 | URL
<자두> 참 좋죠, 이 산문집도 좋습니다.
구단씨 님의 댓글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