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물든 낙엽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면 푹신하면서도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다. 어디선가 낙엽 태우는 냄새도 날 것 같다. 가을의 끝을 알리려는 걸까. 이렇게 급하게 떠나는 가을이라니. 매년 가을에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그제가 입동이었으니 이제 겨울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 편의점 입구에 놓인 호빵 기계가 생각나는 걸 오면 겨울을 기대하는 것까. 때마침 며칠 전부터 맑은등뼈탕을 끓이는 내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맑게 끓어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남은 2021년을 저렇게 보내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내게 남은 불순물은 무엇일까. 끊어 오르면 사라지는 것일까. 그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뜨겁고 따뜻한 온기를 찾는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에도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내가 채울 수 있는 온기는 어떤 형태일까. 비 오고 쓸쓸한 가을, 두 팔로 팔뚝을 감싸는 시간, 외로움이 찾아든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모두 외롭고 때마침 낙엽 지는 가을이니까. 뭐, 조금 더 씩씩해질 필요가 있다.
지난 주일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었다. 좋은 일은 나쁜 일에 비해 너무 작아서 실감을 하기 어려웠다. 나쁜 일은 강도가 너무 세어 나는 무릎이 꺾이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해 11월의 무너짐과 같은 기분이라 참담했다.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말하고 표정을 숨겼지만 무언가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였다. 내가 세심하게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쁜 일이 일어난 원인과 배경을 생각하고 지혜롭게 풀어가려고 해도 선뜻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답이 있기는 할까. 일어난 일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 순간을 지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러니 그날의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 아주 작은 좋은 일이지만 그 쪽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11월의 소설이 될 소설을 통해 좋은 기운을 얻는다. 김연수가 추천했다는 문구에 더욱 궁금해진 『아파트먼트』,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안겨줄 『일몰의 저편』, 프랑스와즈 사강의 미발표작으로 마음을 쏟는다. 3권의 소설은 표지도 마음에 든다.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11월이다. 남은 11월에는 조금 더 예민하고 부드러운 시간들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나쁜 기운을 감지할 수 있도록 잠자고 있는 감각들을 일깨워야 한다. 좋은 소식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은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버티고 견딜 수 있다. 힘든 날들을 건너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