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이층집의 창문에서 한 여자가 정원을 본다. 정원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평화롭고 향기로운 풍경이다. 오가와 이토의 『토와의 정원』의 표지가 주는 이미지다. 그 이미지와 제목이 주는 평온함 때문에 이 소설이 궁금했다. 오가와 이토의 소설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기운을 예감했다고 할까. 동화처럼 마냥 따뜻하고 예쁜 소설을 기대했다. 어떤 면에서는 기대에 부응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닿기까지의 여정이 순탄치 않았다.


작고 예쁜 집에 토와가 산다. 엄마와 단둘이 산다. 눈이 보이지 않는 토와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엄마 냄새, 엄마 느낌, 엄마가 전해주는 사랑으로 토와는 너무 행복하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아빠가 전해주는 물건으로 생활하니까 큰 문제도 없다. 토와는 그를 ‘수요일 아빠’라 부른다. 진짜 아빠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다. 엄마는 다른 가족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다. 적어도 엄마가 토와를 혼자 남겨두고 일을 하러 가기 전까지는.


토와는 엄마가 준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진다. 깨어나면 엄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날들을 보낸다. 토와는 엄마와 떨어지는 건 싫지만 엄마의 말이니 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도 엄마는 집에 오지 않았다. 토와는 온전히 혼자 남은 것이다. 아빠가 전해주는 물건으로 생활을 이어가지만 눈이 안 보이는 토와는 곧 세상과 단절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이 토와의 집을 ‘쓰레기 집’이라고 부르는 걸 알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토와는 세상과 만난다. 치료와 재활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면서 하나씩 일상을 배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엄마가 토와를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온 토와는 점자를 통해 책을 읽고 안내견 ‘조이’와 생활을 시작한다. 조이와 도서관에도 가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기억을 더듬는다.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 토와에게 이야기는 하나의 피난처였다. 정원과 함께. 계절의 변하는 모습, 아침이 오고 저녁이 되는 것들을 새소리와 꽃의 냄새로 느끼는 토와. 그 안에서 토와는 치유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토와와 하나가 되어 눈을 감는다. 토와의 정원을 걷는다. 식물이 자라는 감동과 그것들이 주는 기쁨을 느낀다.


발바닥에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눈, 코, 입, 귀가 있어서 발바닥이 직접 지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랑스러운 식물들의 가지며 잎사귀에 살포시 손바닥을 대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소리를 포착한다. 그 식물이 괜찮은 상태인지 아니면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지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이윽고 그것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는 나 자신이 안테나가 된 기분으로 식물이 보내는 메시지를 포착한다. 그런 다음 손바닥으로 흙을 만지며 식물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169쪽)


엄마와 단둘만의 세계였던 토와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사람들과 교류하고 이웃도 만났다.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고 토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동화 속 잠자는 공주가 아닌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토와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건 정말 놀랍다.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278쪽)


앞을 못 보는 나일지라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거들이 잔뜩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내 작은 손바닥으로 사랑해 주고 싶다.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니까.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밤하늘에는 나만의 별자리가 쉼 없이 생겨난다. (282~283쪽)


소설 속 토와의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알 수 없는 그녀의 감각,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 상상한다. 맨발로 정원을 거니는 토와. 그녀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생각한다. 살아 있으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 버겁게 여겨지는 날들, 주어진 하루의 소중함을. 그리고 기대하고 소망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굉장한 이야기를, 나만의 정원에서 자라날 어떤 아름다움을. 


이처럼 오가와 이토의 소설엔 치우와 회복의 시간이 있다. 유명한 다른 소설을 다 읽은 건 아니고 겨우 『마리카의 장갑』만 읽었지만 작가의 전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자명한 사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건 대단한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든 것들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안겨준다. 그 하나가 바로 자연일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사랑하는 이와의 어쩔 수 없는 이별로 감당할 수 삶과 마주하는 소설 속 마리카에게 자작나무가 주는 위안처럼. 


마당 너머로는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 너머에 치유의 땅이 있습니다. 치유의 땅은 정령들이 사는 신성한 숲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가면 호수가 나옵니다. 가진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마리카의 장갑』 중에서)


어떤 상실과 상처는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 조금씩 회복된다. 돌이켜보면 내겐 그 회복의 시간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건 책, 그리고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나무였다. 『토와의 정원』을 읽으면서 그 시간들이 포개어졌다. 그것들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고맙고 감사하다. 묵묵히 나를 견뎌준 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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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6-16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쁜 이야기네요. 순백의 자작나무는 치유와 환생을 의미하기도 한다더라고요.

자목련 2021-06-17 10:33   좋아요 2 | URL
아, 정말요?
자작나무를 더 좋아할 것 같아요^^*

scott 2021-07-07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
이책 일러스트 그리신분 책 이번 신간 주문 했놨는데
기대됩니다
이번 한주 건강하게 !

새파랑 2021-07-07 16:35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7-09 16:10   좋아요 3 | URL
스콧 님,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저도 축하드리며 신나는 주말 보내시고요^^

자목련 2021-07-09 16:11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리립니다.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9   좋아요 2 | URL
^^*

그레이스 2021-07-0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1-07-09 16:0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도 축하드려요!
건강하고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07-0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1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