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와 김중혁 작가가 지난 해 씨네21에서 연재하며 주고받은 글이 책으로 묶여 드디어 나왔다. 연재할 때부터 당연히 이건 책으로 묶여나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안 나오면 섭섭했을 책이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 이름 붙은 이 책은 부제가 '대꾸 에세이'란다. 부제도 기막히지만 제목을 왜 저렇게 지었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보니 김중혁 작가의 글 중에서 '대책없이'라는 글이 나온다. 대략 이런 글이다.
(…)<락앤롤 보트>의 디제이들은 모두 어린아이들이다. 철들지 않은 사람들이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대책없는 사람들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재미있겠지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놀기도 하는 거다. 김연수군과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책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은 대책없는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난다. 가끔은 대책없는 해피엔딩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인공들은 마지막에 이렇게 외친다. "로큰롤!" 인생은, 그렇게, 또 계속 흘러가는 거다. 대책없이 흘러가는 거다. 대책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사는 건 중요하다. 나는 1년 동안 재미있었다. 혼자만 그랬나? 혹시, 내가 쓴 글 때문에 기분 나쁜 사람이 있었다면, 허술한 글 때문에 마음 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대책없는 해피엔딩으로 나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 [나의 친구 그의 영화]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난다 - 김중혁 중에서
연재를 읽으면서 이 둘의 '철딱서니'없는 행동들을 보며 남자들은 젊으나 늙으나 친구들끼리는 다 저러고 노나보다. 뭐 그런 생각을 가지게 했더랬다. 아, 물론 여자들도 그 비슷하게 놀긴 한다. 하지만 저토록 리얼하게 웃기면서 놀지는 않는다. 암튼, 이 책은 작가의 말부터 웃겨주신다. 김연수를 대신해서 김중혁 작가가 썼다는 두 작가 소개는 역시 일매 김중혁 작가의 입담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이 책을 읽기 전엔 얼굴 근육 운동 제대로 하고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와 일상, 그들만의 추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학상' 씩이나 받은 차세대 문학 판을 이끌고 갈 '무게 있는' 두 작가들의 만담과도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하다. 재밌는 작가소개는 책을 클릭하면 읽을 수 있다.^^
앗! 쓰고 보니 이 책이 무슨 개그 에세이 같은 것처럼 말을 했는데 절대적으로 그건 아님을 밝혀둔다. "서로를 향한 농담과 거침없는 입담이 어우러진 글이 경쾌하게 핑, 퐁 오가는 사이, 두 작가의 영화관람기는 취향과 세계에 대한 태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글이 씌어진 2009년 한 해 동안, 두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서거, 소통불능의 정책들,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 등 믿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먹고 자고 싸우고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두 소설가가 쓴 영화관람기는 그렇게 대책 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한순간을 붙잡아 놓았다. 상실과 아픔, 사소한 재미가 교차하는 나날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되듯, 두 작가는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야기와 감상을 모아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를 엮어낸 책이다.
키스 해링을 좋아했다. 키스 해링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림이 내 취향이었다. 단순한 선과 형태, 빨강, 노랑, 파랑과 같은 눈에 확 들어오는 경쾌한 원색과 따라 그리기 쉬워 보이는 그림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뭘 이야기하는지 단박에 알아먹을 듯한 그림. 그래서 무조건 그 그림만 보면 입을 헤~ 벌리고 들여다 봤다. 오래 전에 홈페이지 만들 때는 아예 무단 도용을 하며 키스 해링의 그림으로 배너를 만들고 별 짓을 다 했었다. 그러다가 키스 해링이 일찍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에이즈로 인해 죽은 것을.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면 깊이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단지 키스 해링이라는 사람의 그림을 찾아다니다가 그가 궁금해졌고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찾아보게 된 것이다.

그는 지하철역에 검은 종이로 가려놓은 빈 광고판을 보고, 그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건 더 많은 사람과 소통을 원하는 키스 해링의 생각과 일치하는 일이었다. 그후로 때로는 하루 40여 개의 '지하철 드로잉'을 제작하며 1980~1985년 사이에 빠르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된 수백 개의 드로잉을 완성했다고 한다.
지난 주 아침에 전시회에 관한 뉴스를 듣다가 키스 해링 전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전시회를 잘 다니지는 않지만 이 전시회만은 꼭 가고 싶다는 바램이 있었다. 매번 작은 이미지로 보던 그의 그림을 제대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데 오늘 키스 해링의 일기장으로 묶은 책을 만났다. 바로 『키스 해링 저널』이다. 이 일기장엔 "다채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반복하고, 오리고, 변형하고, 실험하고, 통합하면서 자기 내면에 자리한 소년 같은 순수함과 열정, 예술가로서의 광기와 혼란,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우울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던 솔직하고도 맹렬한 미술가 해링이 어떻게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명성을 얻게 되는지, 또 학생 시절부터 에이즈 진단 이후 사망하기까지 그 짧은 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 관심의 안테나는 온통 이 책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키스 해링이 온 세상 구석구석을 달리면서 그리고 색칠하고 사색하고, 사랑하며 써내려간 단 하나의 일기장, 『키스 해링 저널』. 당분간 나는 키스 해링에게 빠져 살아야겠다.
"예술은 삶보다 중요하다!
나는 죽어도 영원히 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테니까."
_1987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