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인생 멘토 2 -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낸 사람들의 인생 보고서
김보일 지음, 곽윤환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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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책보다 동네 돌아다니며 노느라 바빴던 나는, 남들 다 읽는 동화책조차 제대로 읽은 것이 없다. 동화나 위인전 속의 인물들보다 지금 내 곁에 있던 친구들이랑 어울려노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내게 멘토 따위가 있을 리도 없었다. 하긴 그땐 멘토가 뭔지도 몰랐을 테니 멘토가 있었다한들 친구들이랑 노는게 더 좋았을 테다.  

학교에 가고 자라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내 주변엔 믿을만한(!) 언니나 오빠가 없다는 거였다. 바쁜 부모님에겐 뭘 물어도 나중에 가르쳐준다는 말만 했다.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뭐든 혼자서 알아서 했다.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은 친구들 밖에 없었으나 그 친구들도 가끔은 조언자라기보다는 경쟁자일 경우가 많았기에 대부분의 고민들은 혼자서 처리하며 살았다.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은 달랐다. 친구의 언니는 친구에게 학교에 관해서 상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길 해주었지만 내겐 그런 얘길 해주는 언니가 없었다. 친구의 오빠는 학교에서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며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지만 내겐 그런 기둥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자라면서 젤 부러웠던 게 친구의 언니며 오빠였다. 가치와 올바른 걸 떠나서.  

아무튼 정신연령이 낮아도 낮아도 이리 낮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굉장히 공감을 했다. 만약 어린 나에게 이런 책이 있었다면(아, 있었어도 읽었을리 만무하지만;) 난 친구들의 언니나 오빠따위가 부럽지는 않았을 거다. 책 속에 나오는 그들, '인생 멘토'들에게 뭐든 물어봤을 테고 그들은 내게 삶에 대해, 앞으로 살아야 할 방법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쳐줬을 테니 말이다.  

혼자서 이겨내기 힘든 일이 생기면 빅터 프랭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을 것이다. 불우한 친구가 주변에 있으면 장기려는 '베풂의 삶'을 살라고 했겠지. 또 프리다 칼로는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문득 큰 조카 생각이 났다. 내 큰 조카도 나와 같은 맞이로 맞벌이에 바쁜 부모 밑에서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조카를 보며 난 항상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 아이의 멘토가 되어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고모를 먼저 찾아주길 바래왔는데, 언니나 오빠를 부러워하던 나완 다르게 아직까지 그 아인 씩씩하게 혼자서도 뭐든지 잘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멘토로 정하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많이 자랐지만 그럼에도 내게 힘을 주는 누군가를 멘토로 삼고 남은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누군가를 멘토로 정하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 될 테니까.  

책을 다 읽고 어린 시절 왜 나는 이런 책을 만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어릴 때 멘토 하나 정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심하게 자책을 하다가 큰 조카에게 연락을 했다. 너도 너의 멘토를 정하고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떻겠니? 뜬금없는 고모의 문자에 그 또래의 아이답게 뜨~악한 표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꼭 읽혀볼 예정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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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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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펼쳐질 때 그것은 오늘,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사진 속에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우연히 이 책을 스쳐지나 듯 본 것 같다. 비싼 가격에 제목만 기억을 해두고 잊고 있다가 백영옥 작가의 칼럼에서 다시 만났다. 내 가족의 사진도 아닌데 관심이 갔다. 흑백으로 된 사진에는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의 사진과 놀이공원 다녀오며 지쳐 잠이 든 너무나 자연스러운 가족의 모습들. 그리고 어린 윤미의 머리를 빗겨주는 사진 등등 정감이 가는 사진들이 가득이다. 책이 오던 날 전날의 피로함에 소파에 누워 책을 펼쳤다. 그러고선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간난아이 윤미를 시작으로 윤미의 어린 시절이 슬로우모션처럼 지나갔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마음 가득 감동이 차올랐다. 내가 알고 있던 누군가의 어린 시절도 아니고 내 어린 시절의 사진은 더더구나 아닌데도 얼굴 가득 미소와 마음 가득 차오르는 그리움, 이 느낌은 무얼까, 신기한 경험이었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윤미의 백일 사진 속에서, 윤미의 나들이 사진 속에서, 또 윤미가 처음 교복을 입던 날의 모습에서. 아마 그런 까닭이었을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그런 만큼 이 사진집은 귀한 사진집이다. 윤미가 태어나던 해인 1964년 12월부터 윤미가 결혼식을 올리는 1989년 6월의 모습까지 담아내고 있는 이 사진은 그 당시 일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배경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으로 개인의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역사를 보기도 한다. 

 

 저자가 신접살림을 차린 8평짜리 마포아파트의 모습, 궁색하고 조촐한 밥상과 마포나루터의 옛모습, 숭인동 시장을 다녀오는 엄마와 윤미의 모습 뒤로 보이는 골목길에 보이는 사람들의 차림새 등등 그 시대의 모습들이 모두 찍혀 있다. 살펴보면 1960년대 중산층의 살림이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을 배경으로 찍힌 윤미와 엄마와 동생들의 모습은 세상 그 어떤 사진 속의 모습보다 행복해보인다. 사진을 찍는 아버지 또한 행복했을 거다.  

 

그리고 윤미가 결혼식을 하고 마침내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의 그 공허함이 사진집을 낫게 했다. 이건 윤미에게 베푸는 아버지의 또다른 선물이다. 애정 가득한 사진들, 그래서 이 사진집이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찾을 만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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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와 김중혁 작가가 지난 해 씨네21에서 연재하며 주고받은 글이 책으로 묶여 드디어 나왔다. 연재할 때부터 당연히 이건 책으로 묶여나올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안 나오면 섭섭했을 책이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 이름 붙은 이 책은 부제가 '대꾸 에세이'란다. 부제도 기막히지만 제목을 왜 저렇게 지었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보니 김중혁 작가의 글 중에서 '대책없이'라는 글이 나온다. 대략 이런 글이다.

(…)<락앤롤 보트>의 디제이들은 모두 어린아이들이다. 철들지 않은 사람들이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대책없는 사람들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재미있겠지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놀기도 하는 거다. 김연수군과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책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은 대책없는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난다. 가끔은 대책없는 해피엔딩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인공들은 마지막에 이렇게 외친다. "로큰롤!" 인생은, 그렇게, 또 계속 흘러가는 거다. 대책없이 흘러가는 거다. 대책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사는 건 중요하다. 나는 1년 동안 재미있었다. 혼자만 그랬나? 혹시, 내가 쓴 글 때문에 기분 나쁜 사람이 있었다면, 허술한 글 때문에 마음 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대책없는 해피엔딩으로 나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 [나의 친구 그의 영화]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난다 - 김중혁 중에서  

연재를 읽으면서 이 둘의 '철딱서니'없는 행동들을 보며 남자들은 젊으나 늙으나 친구들끼리는 다 저러고 노나보다. 뭐 그런 생각을 가지게 했더랬다. 아, 물론 여자들도 그 비슷하게 놀긴 한다. 하지만 저토록 리얼하게 웃기면서 놀지는 않는다. 암튼, 이 책은 작가의 말부터 웃겨주신다. 김연수를 대신해서 김중혁 작가가 썼다는 두 작가 소개는 역시 일매 김중혁 작가의 입담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이 책을 읽기 전엔 얼굴 근육 운동 제대로 하고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영화와 일상, 그들만의 추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학상' 씩이나 받은 차세대 문학 판을 이끌고 갈 '무게 있는' 두 작가들의 만담과도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하다. 재밌는 작가소개는 책을 클릭하면 읽을 수 있다.^^   

앗! 쓰고 보니 이 책이 무슨 개그 에세이 같은 것처럼 말을 했는데 절대적으로 그건 아님을 밝혀둔다. "서로를 향한 농담과 거침없는 입담이 어우러진 글이 경쾌하게 핑, 퐁 오가는 사이, 두 작가의 영화관람기는 취향과 세계에 대한 태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글이 씌어진 2009년 한 해 동안, 두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서거, 소통불능의 정책들,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 등 믿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먹고 자고 싸우고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두 소설가가 쓴 영화관람기는 그렇게 대책 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한순간을 붙잡아 놓았다. 상실과 아픔, 사소한 재미가 교차하는 나날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되듯, 두 작가는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야기와 감상을 모아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를 엮어낸 책이다.

키스 해링을 좋아했다. 키스 해링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림이 내 취향이었다. 단순한 선과 형태, 빨강, 노랑, 파랑과 같은 눈에 확 들어오는 경쾌한 원색과 따라 그리기 쉬워 보이는 그림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뭘 이야기하는지 단박에 알아먹을 듯한 그림. 그래서 무조건 그 그림만 보면 입을 헤~ 벌리고 들여다 봤다. 오래 전에 홈페이지 만들 때는 아예 무단 도용을 하며 키스 해링의 그림으로 배너를 만들고 별 짓을 다 했었다. 그러다가 키스 해링이 일찍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에이즈로 인해 죽은 것을.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면 깊이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단지 키스 해링이라는 사람의 그림을 찾아다니다가 그가 궁금해졌고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찾아보게 된 것이다.  
 


그는 지하철역에 검은 종이로 가려놓은 빈 광고판을 보고, 그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건 더 많은 사람과 소통을 원하는 키스 해링의 생각과 일치하는 일이었다. 그후로 때로는 하루 40여 개의 '지하철 드로잉'을 제작하며 1980~1985년 사이에 빠르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된 수백 개의 드로잉을 완성했다고 한다. 

지난 주 아침에 전시회에 관한 뉴스를 듣다가 키스 해링 전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전시회를 잘 다니지는 않지만 이 전시회만은 꼭 가고 싶다는 바램이 있었다. 매번 작은 이미지로 보던 그의 그림을 제대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데 오늘 키스 해링의 일기장으로 묶은 책을 만났다. 바로 『키스 해링 저널』이다. 이 일기장엔 "다채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반복하고, 오리고, 변형하고, 실험하고, 통합하면서 자기 내면에 자리한 소년 같은 순수함과 열정, 예술가로서의 광기와 혼란,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우울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던 솔직하고도 맹렬한 미술가 해링이 어떻게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명성을 얻게 되는지, 또 학생 시절부터 에이즈 진단 이후 사망하기까지 그 짧은 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 관심의 안테나는 온통 이 책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키스 해링이 온 세상 구석구석을 달리면서 그리고 색칠하고 사색하고, 사랑하며 써내려간 단 하나의 일기장, 『키스 해링 저널』. 당분간 나는 키스 해링에게 빠져 살아야겠다. 

"예술은 삶보다 중요하다! 
나는 죽어도 영원히 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테니까." 
_1987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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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0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마음에 들어요.^^

readersu 2010-07-02 12:11   좋아요 0 | URL
해피엔딩? 아님 키스 해링?ㅎㅎ
대책 없이 ~표지가 넘 시원하죠? 저런 표지 넘 좋으네요.^^
아, 스텔라님도 파란색을 좋아한댔죠? ㅎㅎ맞아 저도 그래서 저 표지가 더 맘에 드는지도^^
 
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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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었던 작가다. 사실 에로티시즘이니 뭐니 광고를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근데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다. 너무나 사랑스런 의붓아들 알폰소의 편지, "새엄마는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가장 예쁜 사람이고요." 어쩐지 찐득거린다. 새엄마에 대한 사랑이 왠지 가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데 두어 장 넘어가니 "많이많이 사랑해요, 새엄마"란다. 허걱! 뭘 그런 말에 놀라냐고? (읽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   

자, 그 이후부터 내가 두손으로 눈을 가리고 어머낫! 하고 얼굴 빨개졌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얼굴 빨개질 장면이 그 이후부터 줄줄 나오더라는 사실. 광고에서 분명 '에로티시즘'으로만 보지말라고 했지만 어째 자꾸만 에로(!)로 보이는 걸 난들 어쩌라는 건가!(-.-) 뭐 암튼 '에로' 때문인지 알폰소의 끈적지근한 말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펼치자마자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음은 인정하겠다. 사실, 궁금했거든!!! 도대체 새엄마와 의붓아들의 관계가 뭔지, 또 뭔일이 일어날지. 핫! 근데 새엄마와 의붓아들은 둘째이고 으아~ 한 장이 끝날 무렵 이 무슨 에로틱한 대사들!!! 책을 놓을 수 없음이다. 켁!  

'요사'라는 이름도 요상한(이거 남의 이름 가지고 놀면 안 되는데;;)  마리오 바르가사 요사는 매우 독특한 소설의 구성을 보여준다. 표면상으로 나오는 네 명의 인물, 아버지 리고베르토, 새엄마 루크레시아, 의붓아들 '앙팡테리블' 알폰소, 그리고 하녀 후스티니아나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림을 보며 관련된 이야길 들려주는 글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첫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루크레시아와 리고베르토가 던지는 에로틱한 대사와 함께 나타나는 그림, 야코프 요르단스의 <심복 기게스에게 아내를 보여주는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는 확실하게 몰입의 가속도를 높여준다. 이 펑퍼짐한(내 눈에는) 궁둥이를 두고 책 속의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는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산도 양치기도 아닌 아내 루크레시아의 궁둥이라고 처음부터 루크레시아의 궁둥이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그러니 어찌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 뒷이야기는 책으로 읽어보시고^^;; (말하고나면 재미없어진다^^)   

간단한 결론은 이렇다. 사춘기 아들을 둔 남자와 결혼을 한 루크레시아, 첫 번째 결혼을 일종의 재앙이라 치부했고 사개월 전에 한 재혼에서 의붓아들과의 관계(새엄마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지만 "어쨌거나 마흔 살이 된다는 것이 아주 끔찍한 일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젊고 아름다우며 행복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천사와도 같은'(아, 이 깜찍한 알폰소의 능청스러움이라닛!) 알폰소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 마지막에 알폰소가 하녀 후스티니아나에게 내뱉는 말에는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너를 위해 그런 거야, 후스티타." 윽!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 라는 말은 후스티타 뿐 아니라 내 입에서도 나왔다.  

인간의 욕망엔 남녀노소가 없는 가보다. 어리다고 놀리지마라는 노래도 있듯이 어리다고 생각한 그 '어린' 아이, 알폰소가 가진 천사와 악마의 공존함을 보면서 그 정교함(!)에 치가 떨리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작가인 바르가스 요사가 보여주는 신화와 명화, 추상화까지 연결지어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엔 감탄사가 나온다. 깊이를 따지자면 관음증에, 허구와 현실, 금기와 허용 등등 복잡한 연결고리가 많지만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에로틱할 수도 있는(진짜 에로틱하게만 보면 절대로 안 되는) 소설을 그것만이 아닌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수많은 에로틱 장면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능력에 감탄사 절로 나온다. 그리고 내린 나의 결론은 이 작가의 책을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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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6-2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를 먹는지 예전엔 조신해서 이런 책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막 끌려요.ㅋㅋ
함 읽어보고 싶어요.^^

readersu 2010-06-23 14:44   좋아요 0 | URL
ㅋㅋ나이가 들면 좋아하게 되는 책??ㅋㅋ
재밌었어요. 독특한 구성이 정말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어요^^
꼭 읽어보세요^^

2010-06-23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3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본문화의 근원을 알려준다는 『전설 일본』은 옛날 이야기다. 오래 전 할머니에게서 듣던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옛날옛날 한 옛날에~ 하면서 말이다. 일본 전국을 배경으로 그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우키요에의 그림과 참고 사진과 그림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책 속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전설, 신화와 같은 이야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옛날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야기 속에 그 나라의 풍속과 삶, 백성들의 생활까지 모두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전설이란 진실이 담겨져 있는 꿈과 같다. 진실은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기에, 매 세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굳게 각인된다. 꿈은 변화하는 것이기에, 시간과 장소, 구성원에 따라 부단히 새롭게 탈바꿈한다." 

아이누족과 홋카이도의 소인족, 머위 잎 아래의 신이라는 고로폿쿠루가 싸움을 하여 고로폿쿠루가 멸족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후쿠시마 현에서 내려오는 전설로 초가집에 살며 하룻밤 묵으러 오는 길손을 죽이고 그 피를 마시며 인육을 먹는다는 오니바바(귀신할멈)의 이야기는 오슈의 관광지에 진열된 오니바바의 사진과 함께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 할멈이 오니바바로 변하게 된 이유를 읽다보면 가슴 한 구석이 찡해지고 만다.  또 남편이 누명을 받고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살다가 눈이 먼 엄마 앞에 나타난 딸이 딸인줄도 모르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고만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나카타현의 이야기 등등 일본이 요즘 장르 소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그 바탕엔 이런 민간 전설들이 한 몫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고 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소설의 배경으로 이런 민간 전설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같은 저자의 『헤이안 일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에 등장한 원령이나 음양사 같은 인물이 나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일본의 전설로 알아보는 일본의 문화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재미와 함께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설 일본』를 읽고 일본의 전설에 대해 알고 나니 문득 한국에도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책은 바로 『처녀귀신』.  나온지 며칠 되지 않아 따끈따끈한 이 책은 한국의 문화를 귀신, 그것도 '처녀귀신'이라는 주제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를 담았다고 하는데 제목에 걸맞게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처녀귀신'이라는 단어는 옛 여인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따라 붙는 태그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전설 일본』이 47편의 옛이야기를 가지고 일본 서민 문화의 근원과 정수를 보여준다면 『처녀귀신』은 문헌에 나오는 30여 편의 귀신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조선시대의 마이너리티인 '처녀'들이 왜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만 했는지, 그들의 삶이 어떠했기에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되었는지 그 문제점을 들려주면서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남자 귀신은 죽어서도 존경 받는 저승의 관리가 된 데 비해, 여자 귀신은 구천을 떠도는 원귀(寃鬼)가 됐다고 분석한 시각이 새롭다. 고소설에 나타난 남녀의 자살률을 분석한 것도 흥미로우며, 남자에게 과감히 사랑을 고백하거나 대담하게 먼저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귀신이 된 이야기들(5장, ‘원혼의 저주와 복수극’)도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별성이다. 그 차별이 처녀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고 귀신이 되어서야만 할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해준다. 책은 해마다 돌아오는 귀신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인 고찰로 저자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이해하며 연민과 공감을 가지게 한다. 

우연히 비슷한 류의 책을 만나면 책읽기가 훨씬 흥미로워진다. 일본이 가진 민간 전설과 조선시대에서 벌어진 전설과도 같은 일들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일, 이런 것이 바로 책 읽기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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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0-06-14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쓰려고 했던 페이퍼가 이런 거였는데 ㅎㅎㅎ
리더수님께서 발빠르게! ㅎㅎ
추천 한 방 꾸욱~

readersu 2010-06-14 19:42   좋아요 0 | URL
두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비교하기가 딱 좋습니다. 한권은 좀 소설스럽고 또 한권은 좀 인문스럽지만 두 나라의 근원문화를 알기엔 나쁘지 않은 조합.ㅎㅎ 제가 빨랐군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일본의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사람들도 참 배고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readersu 2010-06-14 19:43   좋아요 0 | URL
네, 세계 어디나 옛날 이야기는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그게 다 사람, 인간의 이야기라서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