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의 근원을 알려준다는 『전설 일본』은 옛날 이야기다. 오래 전 할머니에게서 듣던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옛날옛날 한 옛날에~ 하면서 말이다. 일본 전국을 배경으로 그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우키요에의 그림과 참고 사진과 그림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책 속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전설, 신화와 같은 이야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옛날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야기 속에 그 나라의 풍속과 삶, 백성들의 생활까지 모두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전설이란 진실이 담겨져 있는 꿈과 같다. 진실은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기에, 매 세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굳게 각인된다. 꿈은 변화하는 것이기에, 시간과 장소, 구성원에 따라 부단히 새롭게 탈바꿈한다." 

아이누족과 홋카이도의 소인족, 머위 잎 아래의 신이라는 고로폿쿠루가 싸움을 하여 고로폿쿠루가 멸족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후쿠시마 현에서 내려오는 전설로 초가집에 살며 하룻밤 묵으러 오는 길손을 죽이고 그 피를 마시며 인육을 먹는다는 오니바바(귀신할멈)의 이야기는 오슈의 관광지에 진열된 오니바바의 사진과 함께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 할멈이 오니바바로 변하게 된 이유를 읽다보면 가슴 한 구석이 찡해지고 만다.  또 남편이 누명을 받고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살다가 눈이 먼 엄마 앞에 나타난 딸이 딸인줄도 모르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고만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나카타현의 이야기 등등 일본이 요즘 장르 소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그 바탕엔 이런 민간 전설들이 한 몫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고 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소설의 배경으로 이런 민간 전설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같은 저자의 『헤이안 일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에 등장한 원령이나 음양사 같은 인물이 나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일본의 전설로 알아보는 일본의 문화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재미와 함께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설 일본』를 읽고 일본의 전설에 대해 알고 나니 문득 한국에도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책은 바로 『처녀귀신』.  나온지 며칠 되지 않아 따끈따끈한 이 책은 한국의 문화를 귀신, 그것도 '처녀귀신'이라는 주제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를 담았다고 하는데 제목에 걸맞게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처녀귀신'이라는 단어는 옛 여인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따라 붙는 태그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전설 일본』이 47편의 옛이야기를 가지고 일본 서민 문화의 근원과 정수를 보여준다면 『처녀귀신』은 문헌에 나오는 30여 편의 귀신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조선시대의 마이너리티인 '처녀'들이 왜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만 했는지, 그들의 삶이 어떠했기에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되었는지 그 문제점을 들려주면서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남자 귀신은 죽어서도 존경 받는 저승의 관리가 된 데 비해, 여자 귀신은 구천을 떠도는 원귀(寃鬼)가 됐다고 분석한 시각이 새롭다. 고소설에 나타난 남녀의 자살률을 분석한 것도 흥미로우며, 남자에게 과감히 사랑을 고백하거나 대담하게 먼저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귀신이 된 이야기들(5장, ‘원혼의 저주와 복수극’)도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별성이다. 그 차별이 처녀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고 귀신이 되어서야만 할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해준다. 책은 해마다 돌아오는 귀신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인 고찰로 저자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이해하며 연민과 공감을 가지게 한다. 

우연히 비슷한 류의 책을 만나면 책읽기가 훨씬 흥미로워진다. 일본이 가진 민간 전설과 조선시대에서 벌어진 전설과도 같은 일들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일, 이런 것이 바로 책 읽기의 재미일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매지 2010-06-14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쓰려고 했던 페이퍼가 이런 거였는데 ㅎㅎㅎ
리더수님께서 발빠르게! ㅎㅎ
추천 한 방 꾸욱~

readersu 2010-06-14 19:42   좋아요 0 | URL
두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비교하기가 딱 좋습니다. 한권은 좀 소설스럽고 또 한권은 좀 인문스럽지만 두 나라의 근원문화를 알기엔 나쁘지 않은 조합.ㅎㅎ 제가 빨랐군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일본의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사람들도 참 배고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readersu 2010-06-14 19:43   좋아요 0 | URL
네, 세계 어디나 옛날 이야기는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그게 다 사람, 인간의 이야기라서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