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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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엔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이 일본추리소설인 줄 알았다;; 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는 그랬다는 거다. 여기저기 평들이 올라오는 데도 별 관심이 없다가 문득 으스스한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읽었는데... 그동안 너무 자극적인 스릴러에 길이 들여진 것일까? 이 책의 묘미는 봉인된 결말 부분에 있지만 그다지 썩, 감탄할 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온지 50년이 넘었다는 걸 알고선 와우~! 놀랐다는. 대단하다. 이 책이 처음 출간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사뭇 궁금해진다.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루 오스트리안, 루이슨 클락, 패트릴 패리스로도 알려진 실제로는 루이스 몬테나란 스페인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마술사와 자신의 운전기사였던 아이샴 레딕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 남자의 법적 공방이 열리고 있는 법정의 모습이다.

처음 루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말하는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라는 알 수 없는 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해준다. 그러나 저 말들이 과연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말로서 이해할 수 있는 복수,살인,살해 같은 것과 관련이 있겠구나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봉인된 결말을 넘기기 전에 어렴풋이 짐작이 가게 만든다. 그건 아마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그 이후에 많이 나왔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읽기 전에 기대했던 생각보다 그저 그런 무덤덤함을 느낀 것은 그래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라면 정말 반가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은 아직도 험난하다는 걸 알았다.;;;

스포일러?? 처음 탤리의 무거운 가방 안에 나는 시체가 들어 있는 줄 알았다. 큭! 또 탤리의 행동이 의심스러웠고 에..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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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2008-04-2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더수님처럼 추리/스릴러 장르의 초보잔데요.
<검은 선> 재밌게 봤어요. 근데 태생적으로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진 않는 듯해요.
근데 우연히 이 책이 제 서가에 들어왔거든요. 시간을 내어 읽을만할 가치가 있을까요? 이 책과 경쟁중인 도서목록은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2>에요. 부탁드려요~~^^

readersu 2008-04-28 10:45   좋아요 0 | URL
저라면 <구덩이>를 읽고(금방 읽으니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은 후(읽고 싶은데 아직 읽지도 못하고 책꽂이에 있지만!) <이와 손톱>을 읽을 래요. 근데 박노자의 책은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하기가;;; 즐거운 독서하십시오!! <금각사>리뷰 왕기대합니다.ㅎ
 
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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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였다. 배낭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그럴싸한 호텔 예약까지 한 자유여행이었다. 여자 둘이 가니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가자고 친구랑 골라 간 곳이었다. 싱가포르, 그야말로 도시의 나라다. 서울과 별다를 게 하나도 없었고 안전을 걱정하자면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곳이 아니던가. 더구나 우린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고 난 호기심이 많았다. 친구는 힘드니 택시를 타자하고, 나는 웬만하면 걸어 다녀야 한다고 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라고 이 나라 구석구석 걸어 다니면서 경험을 해야 하는 거라고 큰소리 뻥뻥 쳤다. 그런데 관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터졌다. 길 찾는 데는 어느 누구보다도 도사라고 자부하던 나는, 아침에도 걸어서 갔으니 지하철역에서 호텔까지 걸어가자고 한 것이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친구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길을 다 아니까 걱정을 말라며, 나만 따라오라고 큰소리 쳤다. 그런데 골목만 돌면 나올 것 같던 호텔이 어찌된 일이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 길이 분명 맞는데 이상하다며 돌고 돌았다. 관광하느라 종일 돌아다닌 친구는 투덜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이 급했다. 결국 헤매 다닌 지 30분 만에 호텔을 겨우 찾았지만 친구와 나는 대판 싸웠다. 무서워서 죽을 뻔! 했다는 친구와 그 정도로 죽을 것 같으면 여행 같은 것은 다시는! 다니지 말라는 나와. 그러곤 여행의 맛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그 친구랑 두 번 다시 여행 같은 것은 안 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 이후를 말하자면 우리 둘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죽이 맞아 여행을 다녔다.

내가 이 책 『도시의 기억』에 관심이 간 것은 저자인 고종석이 ‘외국 도시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그런 교감의 기억을 서술’한 것이라는 거다. 일반적인 여행 서적처럼 어느 나라를 가면 이걸 봐야 하고 이곳은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둥 관광 코스를 미리 짜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사사로운, 편파적인 기억을 서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너무나 알려진 세계 곳곳의 관광 명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가서 느낀 그의 사적인 감상을 듣는 것. 그러니 어쩌면 그 수다에 지루함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구의 수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즐거운 거다. 더구나 일과 관련한 출장에서 느끼는 여행의 매력은 새롭다. 그래서일까? 고종석의 도시에 대한 기억들이 내게는 그 어떤 여행기보다 구석구석 제대로 된 여행의 기억을 선사하여 읽으면서 내내 그가 다녀온 그 도시들이 궁금해졌다.


난생 처음 가 보았다던 <오사카>에서 북한학자 김석형 선생을 만나기 위해 시도한 오버액션으로 제임스 본드라도 된 듯 착각하며 사건을 만들고, <교토> 금각사에선 누구나 그러하듯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다. 친구들과 떠난 이베리아 반도의 <말라가>에선 보잘것없는 피카소의 생가를 보며 피카소를 제대로 보려면 파리로 가야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또 저자 고종석은 도시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풀어 놓는다. <세비야>를 말할 때는 예술가인 벨라스케스, 극작가 보마르셰,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와 세비야의 관계에 대해 술술 이야기 하고 <알헤시라스>를 떠올리면서 알헤시라스의 역사와 무슬림, 오늘날까지 스페인에 남아 있는 아랍어 차용어를 죽 늘어놓는다. 그뿐인가? 알람브라의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에선 오래 전 펜팔을 하다가 그만 둔 수사나를 생각하며(하, 정말 미인이었단다) 추억에 잠기더니 급기야 이 책의 맨 앞 장에 ‘서른 해 전, 그 싱그러운 나이의 수사나 페레스 렌돈 게레로에게’라는 헌정사까지 바쳐 미소를 짓게 한다.


<리스본>에 가서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를 알면서도 포르투갈의 대중음악이 ‘파두’라는 것을 모른 내게 파두가 포르투갈어로 ‘숙명’이라는 뜻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으며 <빈>에는 비엔나커피라는 게 없다는 것과^^;1945년 <드레스덴>에서 있었던 미국과 영국의  대규모 민간인 살육과 파괴의 기록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콩피에뉴>의 아름다운 풍경, 저자가 가본 도시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암스테르담>,『플랜더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앤트워프>의 성모대성당 등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도시들이 내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와 가 보지도 않은 도시들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닮은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비슷한 일상 속의 도시인들, 그들의 영혼은 그 도시를 찾은 이방인들과 교감한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함을 느끼기 위해 헤매며 겪는 많은 경험들로 인해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은 내 첫 해외여행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하여 나 또한 그와 같은 아니, 그와 비슷한 도시로의 여행을 꼭 해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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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5-0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오랜만이에요.

readersu 2008-05-04 18:05   좋아요 0 | URL
와~! 리뷰 당선이라닛! 몰랐어요. 알려줘서 넘 감사해요;;
잘 지내시죠? 저도 오랜만입니다.^^

마늘빵 2008-05-0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욧. :) 오랫만이에욤.

readersu 2008-05-05 18:40   좋아요 0 | URL
아하;;감사합니다. 고종석 님의 책으로 이주의 리뷰가 되다니..영광인걸요. 덕분에 아프님이 댓글까지 달아주시고.ㅋㅋ 고종석 님 덕이에요.ㅎㅎ

릴리 2008-05-0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readersu 2008-05-06 13:49   좋아요 0 | URL
릴리 님 감사합니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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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이라도 세월이 거꾸로 간다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도 기억해보면 아무 것도 몰랐던 철부지 시절이 그저 막연히 그리워서 일 테고 막상 그렇게 거꾸로 산다고 한다면 생각만큼 행복해할 수 있을까?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읽으면서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히는 일들이 벌어지는 요지경과 같은 곳이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 상상을 글로 옮긴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태어나면서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가 자라면서 점점 그 모습이 어려지는 희귀한 병을 가지고 태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만난 한 여자, 앨리스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고백 형식으로 풀어냈다. 존 업다이크는 이 소설을 읽고 나보코프가 연상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열네 살의 앨리스를 처음 본 막스의 외모 나이가 마흔을 넘은 아버지 나이를 하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막스는 어리다. 겨우 열일곱 살의 소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앨리스를 향한 그의 마음 어디라도 또래의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청소년의 첫사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앨리스도, 앨리스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막스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사람들 앞에선 어머니를 형수라고 부르며 살아야 하고 자신은 점점 젊어지고 있으며 사랑하는 앨리스는 오해만 남기고 떠나가 버렸다. 친구인 휴이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어느 날 운명의 장난처럼 앨리스가 나타난다. 시간조차도 그 누구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던 메리의 말과는 다르게 이제 세월이 흘러 비슷한 나이가 되어 만난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불행의 예고편일 뿐이었다. 평생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앨리스가 자신을 그 옛날 막스 티볼리로 알아채면 어떡하나? 불안함을 느끼며 살긴 했어도 그 시간이 그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사랑은 늘 그렇다. 한 사람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기도 전에 끝이 나버린다. 채워지지 않았음에 이렇게 고백이라도 하고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누구에게든 비밀을 털어놓으면 그 모든 갈망이 해결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겐 시작인 그 모습이 끝이 되어 버린 막스, 마지막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놀랍다. 오로지 앨리스만을 사랑했던 막스, 앨리스의 사랑을 받았던 단 한 사람의 남자, 그리고 휴이가 평생을 사랑한 오직 그 한 사람. 평생 마주할 수 없으므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작가는 묘하게 풀어내며 끝을 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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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마녀
마이굴 악셀손 지음, 박현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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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좋았던 일들도 가슴 아팠던 일들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법이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가끔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들에 아픈 상처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동안 그 상처와 아픔들이 세월에 희석되어 버린 듯하다. 그 당시엔 그토록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른들이 늘 그렇게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는 약이 되지 못하는 세월도 있게 마련이다. 이 책에 나오는 네 자매와 엄마들, 그들에게 추억은 슬픔과 증오가 가득한 잿빛투성이의 삶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버림받아 임대주택 공동세탁실에서 발견되어 엘렌의 집으로 오게 된 마르가레타, 생모에게 심한 학대를 받다가 엘렌의 집으로 오게 되지만 엘렌이 죽자 생모에게 돌아가 살면서 오로지 벗어날 궁리를 하며 살았던 크리스티나, 또 외할머니와 같이 살다가 입학할 나이가 되어 생모랑 같이 살게 된 비르지타는 무능력하고 알코올중독자인 엄마로 인해 엄마와 떨어져 엘렌의 집으로 온다. 그리고 이 모든 아픔들의 원초가 된 엘렌의 딸 '사월의 마녀' 데시레, 얽히고설킨 이들 네 자매들의 과거와 현재가 그들의 추억으로 재생되면서 엄마와 딸의 질투와 원한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마르가레타의 상처는 실력 있는 물리학자가 되어 명예를 얻지만 자신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매번 관계이탈을 시도하고 생모에 대한 수치심으로 사회적 성공을 통해 그 수치심을 극복하고자 했던 크리스티나는 교수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미지만 그 내면에는 그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 완벽과 냉소 가득한 인물로 살아간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힘든 인생을 살아가며 엄마인 게르트루드의 삶을 그대로 밟은 비르지타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평생을 시설에서 산 데시레보다도 많은 아픔을 간직한 채 헛된 세월을 보낸다. 또 그 아무리 반 강제적으로 그런 결정이 내려졌다고 하더라도 딸인 자신은 시설에 맡겨져 엄마의 품을 떠나 사는데 그 엄마는 다른 집의 자식들이 학대 받는다고 데리고 와 키워주는 것을 보아야 했던 데시레의 분노는 결국 자신이 가진 남다른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가져간 자매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엄마와 딸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중년이 되어 회상을 하는 그들의 과거를 통해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스웨덴에서 그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주지 않고 공공의 이익만을 위한 제도라면 오히려 그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의 손을 빌어 섬세하게 묘사한다.

 

학대하거나 능력 없는 생모의 곁을 떠나 좀더 안정된 가정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으며 산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기를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생모에게서 아이를 떼어 놓는 것 역시 그다지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나쁜 환경에서도 스스로 곧으면 잘 자랄 거라는 사람들도 있고 물론 그런 아이들도 있지만 어쨌든 그 근본적인 것의 상황은 어른들이 만든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가지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는 없으니 이 소설이 비록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쓰인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나는 스웨덴의 작가이지만 이 시대에서 '사랑'과 '믿음'이 왜 중요한 것인지 엄마라는 존재가 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떤 식으로 딸의 인생에 관여하는지 네 자매와 그 엄마들을 통해 제대로 보여준다. 

 

첫 데이트를 위해 처녀성을 찢어버리는 크리스티나를 보며 경악스러웠지만 그들이 회상하는 장밋빛 청춘은 어쨌든 그 청춘을 지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비르지타는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열다섯 살, 모탈라의 우윳빛 메릴린 먼로였던 그 시절을(…)드디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차에서 내려 문을 쾅 닫고 주위를 둘러보는 도게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휴대용 레코드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클리프 리처드의 노랫소리를 제외하면 주차장은 아주 조용하다. 모든 시선이 도게에게 쏠린다. 여자애들의 열망은 나비처럼 그를 향해 날아가고, 사내녀석들의 무력감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그가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그녀 앞에 선 도게는 차 문을 열고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다.

"지금부터 넌 내 여자야."

더이상 아무 말도 없다. 단지 그 한마디뿐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어. 비르지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천 번도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정말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영화는 계속 이어진다. 그가 그녀를 보닛 위에 눕히고 첫 키스를 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자 합창과 현악연주가 빈 공간을 가득 채운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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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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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이름만 익히 듣고 이 대단한 러시아 문호의 작품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돈'이라는 단어에 한정이 되어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놀라워라!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해 ‘돈’이라는 가장 속물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의 작품도 못 읽어보았으니 그가 지주의 자식인지 가난뱅이의 자식인지도 몰랐던 터라 책을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제일 관심이 많았던 것이 돈이라는 것과 죽어라 글을 써댔지만 빚만 늘어났으며,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일곱 권의 책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중 도스토예프스키가 투르네게프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쓴 편지는 정말 처량하다. 그러고도 돈을 갚을 때는 치사하다는 듯이 남을 통해 그것도 11년 만에 갚았고 『악령』에서는 투르네케프가 틀림없는 작가를 등장시켜 온갖 추악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하니 돈이란 아무리 재능 있는 작가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다. 또한 「도박꾼」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허황된 생각으로 인생역전, 한방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을 빚더미 속에서 살았다. 돈을 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끊임없이 글을 써야만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돈'과 '빚' 때문에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위대한 문호를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풍족한 생활에 있었다면 이런 멋진 글들을 쓸 수 있었을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건 저자 석영중 교수의 힘이 아닌가 싶다. 어렵다고 생각한 대문호의 작품을 이렇듯 재미나게 분석하고 또 흥미롭게 풀어내 낭비가로 태어나 문학이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돈이 자유와 평등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돈으로 생기는 범죄와의 관계를 파헤치고 결국은 그 빚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밝혀냈으니 도스토예프스키 못지않게 석영중 교수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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