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 커버 때문에 책 사러 들어왔는데, 커버가 일시품절일세. 어젯밤에 피곤했던지 일찍 잠이 들고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잠에서 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포기하고 책을 읽었다. 머리맡에는 천명관의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그리고 안도현 쌤의 <백석 평전>과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아,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도. 하지만 내 손에 잡힌 책은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 왜, 생각하는 여자가 위험한지, 궁금해서...라는 말은 웃기고. 아웅 산 수치의 표지 사진때문이라는 것도 웃기고, 그냥, 그냥, 끌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여자니까.
정치 사회적으로 활약이 대단했던(!) 여성들을 다룬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 여성들의 경우, 시대를 잘못 태어난 탓에 고생도 많이 하지만 그들 덕분에 어쩌면 여자인, 나는 좀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 읽진 못했다. 챕터1만 읽었다. 수전 손택이나, 아룬다티 로이, 마르잔 사트라피는 알고 있는 여성들. 오리아나 팔라치와 체첸의 영웅 안나 폴릿콥스키야는 잘 몰랐다. 세상엔 대단히 멋진 여성들이 많다. 그들의 손톱만큼이라도 닮았으면, 나도 뭐가 되어도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거물들 앞에서도 결코 주눅드는 일이 없었다는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말을 했다. "인터뷰란 싸움이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와 같은 것이다. 상대를 발가벗기고 자신도 발가벗은 채 서로가 숨기는 것 없이 인격 전부를 맞서는 싸움이어야 한다." 은밀한 저항가, 뉴욕 문단의 보물인 수전 손택 여사는 "작가는 오로지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써 존재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위험을 감행하는 것이다."고 했다. 또 체첸의 영웅 안나 폴릿콥스키야는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지만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은 내게 러시아을 떠날 기회가 있는데 왜 떠나지 않는냐고 묻는다. 물론 나는 이곳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탐사보도를 위해 기자는 최후까지 취재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가 영영 떠난 체첸은 이제 미지의 땅이 되어 버렸다. 아무도 그곳에 대해 감히, 보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고 연약한 것들의 대변인 아룬다티 로이는 모습처럼 연약해보이지만 정신만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처한 상황을 괴로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 없다. 내 비밀은,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희생자 중독증'을 깨닫게 해준 작가. 그리고 마르잔 사트라피,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이 시대의 역사를 그려낸 마르잔 사트라피는 "나는 예술가이기에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들은 아주 복잡한 질문에 쉽게 대답한다. 나는 사람들이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문제들에 아주 복잡한 질문을 던지다."고 했다.
이들은 시대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당대를 증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대를 증언하고 '반항'이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세계 안에 존재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해야 했는가. 오늘 밤엔 제2장의 여성들을 만나보려 한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은,
아, 마르잔 사트라피의 <바느질 수다>를 산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 하여, 장바구니에 바로 넣었다.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읽고 나니 <작은 것들의 신>보다는 <9월이여, 오라>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 모아둔(!) 수전 손택의 글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어보고 싶으면 읽어야겠지. 그래,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