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취향은 쉬운 책들이지만 가끔은 어려운(^^) 책도 읽기는 합니다. 그동안 인문학 쪽으론 눈을 잘 안 돌렸는데 이번 주엔 어째 인문학 돋게(!) 만드는 몇 권의 책을 만나게 되어 한번 올려봅니다. 소설이나 다른 책에 비해 가격이 좀 쎈 편이라 인문 도서들은 주로 생일 선물로 잘 받습니다. 선물로 받아 놓고선 책꽂이에 폼나게 꽂아두고 소설이 지겨울 때나 혹은 괜히 뭔가 지식을 쌓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꺼내서 한 장씩 읽어보죠. 그때의 쾌감이란 뭐랄까,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느낌? 아하하;;; 네네, 제가 좀 아는 척, 잘난 척, 잘합니다. 얕은 지식으로^^; 뭐 나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문 도서 안 읽는 분들, 이런 책들도 한번 읽어보아요. 저처럼 어딘가에 가서 잘난 척! 할 수 있어요^^;
이슬람에 관한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언제일까, 항상 그 '첫'이라는 게 놀라운 일일 수 있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하지만 항상 이슬람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책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악마의 시』, 살만 루시디의 책이다. 아마도 그 책이 출간된 당시 이슬람 나라에서 살만 루시디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그는 대외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슬람에 대해 어떤 이야길 풀었기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일까? 그 궁금증이 두 권의 두꺼운 책을 읽게 만들었다. 근데 의외였다. 생각보다 재미있었기 때문(-.-) 내 기준에서 재미있음은 이슬람 종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건 일종의 환상 소설일 뿐인데 왜 그들은 그렇게 흥분 난리였을까. 물론 '예언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그의 열두 아내를 창녀에 비유하면서,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라고 언급' 했으니 이슬람을 믿는 그들에겐 모독이 될 수도 있는.
아무튼 그 책을 읽은 후부터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언젠가 읽었던 또 다른 이슬람에 관한 책(주로 여성들의 이야기)들에서 억압(그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오래전부터 내려온 일종의 관습일테니까)받는 이슬람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선시대의 여성들조차도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도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구나 와 같은 좀 어처구니없는(-.-) 착각도 했으니까. 그래서『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의 표지를 처음 본 순간, 아니 제목에서 '이슬람 여성'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부터 이 책은 이미 내 맘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실렸을지, 저자는 이슬람 여성에 대해 어떤 이야길 풀어놓을지 궁금했기에. 책소개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할례, 조혼, 은둔생활, 명예살인…. 대다수 현대인에게 이슬람 여성의 삶은‘타인의 고통’일 뿐이다." 어쩌면 나도 '타인'이기 때문에 그냥 궁금해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비교하며 그래도 내 삶은 행복하구나 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타인'의 고통이니까.
프롤로그를 읽는 동안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이슬람이 처음부터 '할례나 은둔생활을 여성의 의무로 삼지 않으며,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남녀 구분을 두지 않음을 지적한' 점에 대해 공감이 갔고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이들이 현재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어떤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가? 당장 읽고 싶지만 주말내내 이 책을 탐독할 생각이다. 믿음에 갇힌 이슬람 여성들의 숨겨진 욕망이 과연 무엇인지 기대를 하면서. 참, 이 책의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더니 『피플 오브 더 북』을 쓴 사람이다. 책을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잡아야겠다. 퓰리처상 수상자!
명품, 제목에서 이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이건 또 어떤 명품에 관한 책이야? 했다. '판타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단어 '명품'에만 눈이 갔으니까. 부제에 적힌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를 보면서도 명품에 관한 그렇고 그런 책이거니 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달랐다. 『명품 판타지』, 이 제목에서 중요한 것은 '판타지'였다. 우린 지금 '판타지'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 목차에서 보이는 소제목들은 궁금함을 유도 했고, 하나의 주제에 맞는 길지 않은 글들은 편하게 읽기 쉬워보였다. 또 분명 사회과학 책임에도 곳곳에 들어 있는 일러스트는 독특하고 예뻤다(예쁜 것 참 좋아해요; 어쩌면 이 그림 때문에 나처럼 문학 좋아하는 사람이 사회과학책을 탐독하게 되는지도 몰라-.-;). 제목과 표지에서 보이던 딱딱함은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졌고, 독서의 유혹이 확! 밀려왔다.
저자인 김윤성은 사회과학 책임에도 일러스트를 넣은 이유는 제목에 들어간 판타지 때문이라고 했다. 판타지에 관한 책이니 그림을 보면서 더욱더 상상력을 키우라고. 그건 맞는 소리다. 그림으로 인해 우린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그 그림을 그린 류미연이 뒷부분에 풀어놓은 작업노트도 이 책의 독특한 구성 중에 하나.
『명품 판타지』의 저자 김윤성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판타지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화려한 옷과 반짝이는 보석, 잘 빠진 자동차와 금칠한 그릇이 나오는 판타지를 아주 좋아한다. 이런 판타지를 패션, 우리말로는 유행이라고 하는데 특히나 옷이 만드는 판타지가 가장 인기 있었기에 패션 그 자체가 옷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나는 럭셔리Luxury가 주인공인 화려한 판타지를 올리는 무대와 수많은 장치들이 촘촘하게 돌아가는 무대 뒤를 꼼꼼히 뜯어보고 있다."며 제목처럼 명품에 갖고 있는 우리들의 환상에 대해 풀어 놓았다. 명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샤넬을 기본으로 모더니즘, 매혹, 영리함, 스타일까지 사회과학과 명품을 적절히 비유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흥미롭다. 그는 앞으로 '아파트'와 '대학'에 갖는 판타지에 대해서도 풀어볼 생각이란다.
고고학을 생각하면 항상 인디아나 존스가 생각났는데, 허수경 시인을 알고부터는 고고학하면 허수경 시인이 떠오른다. 어쩐지 인디아나 존스처럼 멋진 모험을 즐기며 살 것 같기도 한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단다. 그럼에도 고고학은 흥미롭다. 그 흥미로움을 배가시켜줄 고고학에 관한 책 한 권이 나왔다. 예전에 고고학 관련한 책을 두 권이나 구입을 하고도 아직 읽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주제를 가진 책이 또 나오면 눈이 저절로 가고 만다는. 이번에 나온 고고학 책『인류의 위대한 여행』은 저자가 '직접 전 세계를 누비며 고고학 및 고인류학 유적지와 박물관을 답사하고 현지 주민을 만나 함께 생활하는 여행기가 고인류학의 학문적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BBC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책은 TV에서 다루지 못한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담고 있어 다큐멘터리보다도 재미있는 책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하버드 대학 교수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 세상에서 도시, 마을, 논밭이 없어진다면 어떨까요? 우리들이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물건이나 건축물도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각종 도구나 무기, 옷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 어떨까요? 먹을거리를 가게에서 사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아 자연 속을 누비며 식물을 채집하고 동물을 사냥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전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인간이니까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고고학에서는 인간은 언제 어디서 처음 생겨났는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징은 무엇인지, 어떻게 전 세계로 인간은 퍼져 나갔는지 과학적으로 밝혀준다. 이런 궁금증을 떠올리니까 어제 들었던 철학 강연이 생각나고 인간의 시초에 대해 말할 때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당연 그 종교에 어울리는 답변을 했겠지만 무신론자에 철학 같은 것은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그 시작이 궁금할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고고학이니 인류학이 궁금할지도 모른다. 만약 종교와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그런 것은 궁금하지도 않았을 것. 아무튼 이 책은 '고고학, 고인류학 초심독자들 뿐만 아니라 여행 마니아들에게까지도 의미 있는 고인류학답사'가 될 것이라는 책소개에 동감!!
인류학에 관한 책을 소개하고 나니 한 나라의 소수민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책도 어떻게 보면 인류학에 속하는 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소수민족. 지금도 이렇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몇 백년이 지나면 분명 누군가는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겠지 않겠는가.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 '소수'와 '눈물'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이 책도 다른 소수 민족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그곳을 다녀온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통해 이젠 알만큼은 다 알아버렸으니 이 책 역시 기존의 여행서와 같은 것이라고 치부했을 터.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단다.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은 중국 소수민족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람'을 통해 읽어냈다는 점에서 그런 책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첫 이야기에 나오는 <바스-같은 씨족 내에서 서로 사랑하는 지눠족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에 관한 것은 오직 하나의 씨족만 사는 마을에서 종족 보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통혼을 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뤘다. 지눠족 사람들은 같은 씨족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혼인할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에서 근친혼이 가져온 인구감소는 깊은 산림에서 외따로 살아가는 힘없는 민족에게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같은 씨족 내에서는 혼인을 엄격히 금한다"는 금기가 생겨났단다. 하지만 외딴 곳에서, 그들만 살아가는 그곳에서 매일 부딪히며 살다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테고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종족의 보존을 위해 다른 씨족의 사람과 결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겐 슬픈 현실일 터. 그런 바스들을 위해 지눠족 사람들은 '관습법'이라는 미명하에 일 년에 한번 모든 부부가 자신들의 아내나 남편이 결혼 전에 사랑했던 연인과 회포를 풀 수 있게 해 주었단다. 그때 서로 사랑하면서도 혼인할 수 없었던 연인들이 서로 기대 앉아 함게 불렀던 노래가 <바스>라는 노래였다. 가사 중엔 이런 가사가(-.-;)
이 즐거운 잔칫날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질투해서는 안 되지
이 장엄한 의식에서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손을 잡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되지
그렇지 않으면
채로께서 가시 돋친 넝쿨로 너의 입을 꿰매 버릴 거야
채로께서 바늘로 너의 입술을 바느질해 버릴 거야
무시무시하지만 <바스>에 관한 이야기도 요즘 신세대들에겐 전설일 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