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도 아닌 데 주말이라도 된 듯 늦잠을 자고 있을 때, 눈이 내렸단다. 3월의 첫 날에. 늦잠을 잔 주제에 졸린 눈을 비비며 트윗을 훑어보니 은희경 쌤의 멘션이 눈에 들어왔다. "first of march. 쏟아지거나 쌓일 힘은 없고, 지난 겨울의 기억 속으로 잠시 다녀가기만 하라는 3월의 눈. 소리 없이 아프지 않게" 어찌나 공감이 되는 말이던지... 

지난 주 일요일, 고인이 된 이석주의 사진 전시회(라고 생각하고 갔으나 전시회라기보다는...딱히 표현 할 말이 없네. 암튼)를 다녀오며 눈, 겨울, 여행, 이런 것과 관련한 책을 몇 권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랬다(아래와 같은 것들. 물론 이석주의 책도 포함이다. 어제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여러 권의 책을 올릴 생각이었으나). 그런 맘을 먹은 차에 은희경 쌤의 멘션은 참, 좋았다. 또 3월의 첫 날에 내린 눈은 내 포스팅의 문장 하나를 추가할 수 있게 되어 고마운 소재(3월 첫날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난 필시 '지난 겨울 지긋지긋한 눈~'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을 것)였던 것. 사실, 지난 겨울에(그래, 오늘 좀 춥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봄이다) 그렇게 눈이 내렸어도 눈이 내린다고 하면 그래도 조금은 설레인다. 새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 그냥 푸근해진다(물론 녹은 눈을 보면 푸근했던 마음이 이내 사라지고 말지만, 눈의 장점만 생각해보자).  

이석주의 사진집 『넌 혼자 올 수 있니』를 볼 때도 그랬다. 시를 읽을 땐 조금 어려웠던 강성은의 짧은 글들도 난해하지만 나쁘지 않았고, 온통 새하얀 이석주의 사진들도 너무 좋았다. 당장이라도 눈이 쌓인 그곳으로 가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다고 모두 실행에 옮길 수는 없는 일.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은 맘이 들었다.  

이석주의 사진집에는 홋카이도의 겨울이 담겨 있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그 겨울의 풍경을 담기 위해 혼자 떠났단다. 그래서일까, 사진에 담긴 풍경들이 쓸쓸하다. 진짜, 겨울 같은 풍경이다. 눈, 눈, 눈. 오로지 눈들로 가득하다. 진짜 같은 겨울의 풍경이니 추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이석주의 사진들은 따뜻함이 전해온다. 눈 속에 폭 파묻히고 싶은 마음,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 위를 걸으면 세상에 그 어떤 눈들보다도 다정하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갔을까, 그랬다면 그 여행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외로웠을까, 무섭진 않았을까. 사진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는 행복했을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어느 누구의 만류에도 주저하지 않고 떠난 일, 사진으로 남아 그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석주의 사진집을 보니 또 다른 겨울이 생각났다. 겨울이라면 눈 말고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곳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도 모르면서 눈이 많다 라는 이유 하나로 그곳이 가고 싶었다.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이 나라들을 통틀어 스칸디나비아 반도라고 하던가? 아이슬란드와 핀란드의 겨울 풍경은 생선 김동영 작가의 『나만 위로할 것』을 통해 조금이라도 보았지만 다른 세 곳의 풍경은 잘 몰랐다. 표지에서 보여주는 황량한 자작나무의 풍경이 스웬덴 감독의 영화 <렛미인>에 나오는 한 장면을 닮아서 그 영화가 떠오르고 영화 속 황량한 겨울 풍경들이 같이 떠올랐을 것이다. 아무튼, 

백야보다 매혹적인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을 담은 윤창호의 『윈터홀릭』은 북유럽에 막연한 동경을 가진 저자의 마음처럼, 겨울을 좋아하는 겨울 여행자답게 스칸디나비아 반도라 불리는 다섯 나라의 겨울 풍경들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표지의 사진처럼 그 나라들의 풍경이 겨울스럽지 않다는 점. 내가 생각했던 겨울은 뭘까, 바라보기만 해도 코가 빨개지거나 눈이 시큰거려지는 쓸쓸함이랄까, 아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함이랄까, 어쩌면 그런 것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그런 느낌보다 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하는 북유럽의 풍경들은 겨울의 나라, 동토의 땅이지만 쓸쓸함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따뜻함이 훨씬 더 많이 보이는… 그렇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저자인 윤창호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북유럽의 겨울을 외롭게 걷고, 걸으며 몸과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 사진과 글이라면 겨울을 온몸으로 느꼈을 테지. 언젠가는 나도 그가 느낀 그 겨울을 꼭 한번(아, 여행 책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등장하는 말=.=) 가보고 말 테다.  

추운 것이 딱 질색인 나는 겨울이 싫다. 목이 사라질 정도로 어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는 이토록 나태해질 수 있나 싶게 한없이 게으름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추웠던 '지난 겨울'(어제보다 오늘이 더 춥다고 했으나 내 느낌엔 저 햇살이 오늘의 추위를 우습게 보는 듯하다. 그렇다! 이제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해도 보오옴은 오고야 만다. 그러므로 이젠 지난 겨울!)을 생각하면 동면이라도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한데 이제 겨울의 끝에 서서 보니 그 알싸한 차가운 공기와 쓸쓸한 거리의 황량함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 올해의 겨울과는 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련가? 어쨌든 눈이 내린 3월이었으나 이젠 봄! 떠나는 겨울에게 잘 가라는 안부의 인사를 보내는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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