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서계인 옮김 / 도서출판 오상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추리소설 작가인 애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며, 추리소설이 아닌 로맨스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녀의 작품- 추리소설이든 아니든-에는 살인과 목숨을 위협당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사랑, 로맨스 등이 녹아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이지 않나 싶다.

그녀가 쓴 몇 권의 로맨스 소설 중에서 처음으로 접해 본 책인데 출판사에서 이 책에 로맨스 특선이라는 타이틀을 단 것은 조금 어색하지 않나 싶다. 한 중년 여성이 여행 중에 차량 고장으로 한 마을에 고립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같데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인데, 크리스티가 쓴 것인만큼 특히 심리적인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조안은 막내딸의 병간호를 끝내고 바그다드에서 돌아오던 중, 한 숙박소에서 고등학교때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다. 나이에 비해 늙고 추해보이는 친구를 보면서 호리호리한 중년여성의 모습을 지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되고, 조안은 예정된 기차가 오지 않아 사막이 펼쳐져 있는 한 마을에 며칠간 머물게 되면서 이상적이라고 믿어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삼남매의 엄마이자, 성공한 변호사의 아내인 자신의 모습에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조안. 그녀는 언제나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숙박소에서 머무르는 며칠동안 기억속에 묻어 두었던 몇가지 사건들을 떠올리면서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자신이 믿고 행하여 왔던 모든 것이 실제로는 잘못된 것이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 것이다.

농장을 경영하고 싶어하던 남편을 변호사로 성공시킨 아내, 학교, 친구 등 아이들을 위하여 최고의 것만 고르며, 나쁜 친구는 사귀지 말라고 하던 엄마인 조안은 과연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을까? 구멍에서 얼굴을 내미는 초록색 뱀처럼 기억속에서 진상이 조금씩 도마뱀처럼 꿈실꿈실 나타나는 경험을 하는 조안이 얻은 결론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그녀가 취한 행동은 과연 어떠했을까?

한 여성이 자신의 잣대로 평가해 온 삶을 뜨거운 사막을 배경으로 적나라하게 파헤쳐낸 크리스티의 글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녀는 모친의 사망에 이어 남편의 외도로 정신적인 동요를 일으켜 행방을 감추었다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요양 호텔에서 발견된 일이 있다고 한다. 이 책에도 조안의 남편이 다른 여성을 사랑한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애써 부인하는 조안의 마음이 바로 크리스티 자신의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로맨스 소설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인생 체험이 깃들어 있다고 하니 크리스티의 팬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