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열한 번째 생일 파티 낮은산 키큰나무 5
라헐 판 코에이 지음, 김영진 옮김 / 낮은산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증손녀가 치매 환자인 증조할머니에게 행복한 기억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내용은 담은 작품이다. 이전에 종종 접한, 치매환자를 돌보는 어려움을 그린 책들과 달리 치매 환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그린 작품이라 인상 깊게 다가왔다. 치매를 다룬 작품이지만 내용이 가라앉아 있거나 어둡지 않으며, 노라와 카린 간호사의 갈등 구도로 작품 분위기에 긴장감을 실어 주고 있다. 노라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는 할머니와 다른 노인들에게 행복을 일깨워 주는 과정을 통해 어떤 방식의 간호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고민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이들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말하는 일종의 진실게임을 하게 된 노라는 놀이에 전혀 낄 수 없어 화가 난다. 이 날의 주제가 노라에게는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 하지만 저녁 시간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에게 증조할머니가 있음을 기억해 낸다.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간 노라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라즈베리 주스를 통해 할머니의 기억이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고는 노라 자신이 열 살 무렵의 '트라우디'의 상상 속의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솔직히 증조할머니를 집으로 모시자는 노라의 말에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반대하는 엄마의 입장에 먼저 공감이 갔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동반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카린 간호사는 노라로 인해 업무 순서도 뒤죽박죽이 되고, 병동이 무질서해졌다며 노여움을 표한다.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해 전문전인 간병 활동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간병수칙을 내세우면서 노라의 연극을 반대하고 어려움을 겪게 하기도 한다. 이런 카린 간호사가 냉정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내가 이모저모 따져보는 어른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치매 환자가 예전에 살던 집으로 찾아가거나 작품 속 노인들처럼 아이 때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부분의 파괴가 비교적 늦게 시작되기 때문에 현재보다 과거의 일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병세가 초기여서 (본 정신으로 돌아올 때마다) 자신의 증세를 자각하는 경우에는 환자 자신도 많이 두려울 것 같다. 작가는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자 가족들과 단절하고 요양원으로 들어간 세바스티안의 할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병세를 인지하고 느끼게 되는 노여움과 두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의 외할머니도 말년에 치매 증세가 깊어져 가족들이 힘들어 하다가 결국 요양원으로 모셨고 그 곳에서 임종을 맞으셨다. 요양원에 계시면서 가족들이 자신을 버렸다 싶으셨는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게 되어서인지 예전에 비해 기운없이 지내셨다고 한다. 노라가 침묵 속에 잠겨 있는 할머니에게서 조잘대며 즐거워하는 소녀 시절의 행복한 모습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며 현실에서도 치매 환자가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게 된다. 노라는 친구 다니엘, 세바스티안, 고물장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사히 증조할머니의 열한 번째 생일 파티를 연다. 그리고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고, 마침내 카린 간호사도 마음을 여는 결말이 가슴 따뜻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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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헐 판 코헤이 '바르톨로매는 개가 아니다'의 작가라서 이 책도 기대되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히 잘 읽었어요. 많이 바쁜가봐요, 잘 지내죠?

소나무집 2008-04-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아이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은데 우리 아이들은 안 읽으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