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류시화>

 

 

세월이 이따금 물어줄까..

부서진 인연은 그 후..

어떻게 되었냐고..

그걸로 끝이긴 하더냐고..

부서진 조각마다 칼이 되어

상처를 덧내지는 않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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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황지우>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는 것..

내 평화를 위한, 내 만족을 위한, 내가 정한 답을 위한..


나는 이 시를 여러 번 읽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었던 거다..

갑자기 나는 지금 너무도 무서워.. 온몸이 얼어붙는 듯하다..


나는 이제야 알 것만 같다..

내가 지은 집이.. 무너져버린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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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4-08-0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 안자고 이런 생각만 하고,
홍승희 나빠요 ~
^-^

사실, 누구나 그러지 않소...
꼭 언니만 그랬어서 지은 집이 무너진 것은 아니야...
나에게 맞는 옷을 입지 않고도 멋을 내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그렇게 되는 수가 있는거지 뭐...
밤늦게 오도마니 앉아 이런 시를 읽으면 자괴감이 심해진다구우 ~ 청량한 대낮에 상큼하고 맑은 생각을 많이 하자!!
 

 
  ***Konglish Dictionary : 조끼***

한때는 일본식 발음에 유사하게 '족기'라고 표기하다가
'조끼'와 '족기' 두 가지 이름이 함께 쓰이고,
이제는 '조끼'로 정착이 되어 가는 맥주 '조끼'는
대부분 영어로 'mug'라고 통하지만,
사실은 주둥이가 넓고 손잡이가 달린 술병을 뜻하는 'jug'가 어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끔 책을 읽다가 생맥주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몇 조끼를 마셨다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궁금했었다. 조끼? 족끼?
서른하고도 여덟하고도.. 몇날이 지나서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들..
때로는 세상에서 몰랐던 걸 새삼 알게 되는 일이 느닷없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이나 기억속에 왜 그래야만 했었는지
도무지 알 길 없이 넘어가 버린 일들..
그런 것들도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온다면?
좋을까? 싫을까? 이미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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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듯이...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


 

바람부는 것처럼 나즈막히 것처럼 노래하고 있으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얘기하고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이것 이상의 평화로운 관계란 더 없을 것 같다..

읽을 수록.. 생각할 수록..

이보다 더 평화로운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어려워도..  애써야지.. 그길로 방향을 잡고..

어떤 관계든.. 조금씩..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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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2004-08-04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말인데 실천이 어렵더라 이거지. 딸하고도 다른 누구하고도 거리를 둘 수 있다면.... 거리를 안 두려고 해도 거리는 존재하는 건데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으니 어려운가보다.

rainy 2004-08-05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 멀고 가까움을 재는 거리가 아니라.. 거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
그 사이에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통했으면.. 하고 바래.. 가깝다 느끼는 관계일수록..
서로 그리움이 쌓일 만큼의 거리는 꼭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 희망이 길고 강하면..
비슷하게는 되겠지.. 이건.. 꼭 해내고 싶어진다.. 너두..

루나 2004-08-1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거리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었지.
참 좋더라.
다리, 검도라는 이야기도 나누었고.
하지만 이야기 결론은 역시나 어렵더라 아니었던가?

rainy 2004-08-1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지.. 가까워지고 싶은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도 싶어..
하지만.. 진짜 관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꼭 지켜야되는 몇가지 것들..
그 중에 하나가 이 것이 아닐까 싶다..

rainy 2004-08-18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나는 한사람인데..
누군가에게는 쉽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잘 안되고..
또 어느 시기에는 조금 쉽게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도무지 너무 어렵고..
 


               반성 744



     너는 왜 그렇게 티를 내냐


     너는 왜 그렇게 기어코 티를 내야 하냐




     술 취하여 쓰러져 가는 나를


     너는 왜 연탄집게로 때려야 하냐


     왜 갈빗대를 부러뜨려야 하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밤


     너는 왜 그 순결함을 더럽히게 했냐


     왜 눈 위에 나의 핏방울로


     술 취한 나의 핏방울로


     너를 절대로 해치지 않는 나의 핏방울로




     너의 그 고운 이름을 써놓게 했느냐.



                        <김영승>


 

 

     나는 왜 이렇게 티를 내나

     나는 왜 이렇게 기어코 티를 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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