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람들은 다 각자 어디로 가고 있나.

잘 가고 있나.

다들 잘 가고들 있는 건가.


날이 풀려오고.

긴 겨울은 끝을 보이고 있다.


겨울은 춥고 지루했다.

어깨는 펴지지 않았고 손끝은 언 채로 녹을 줄 몰랐다.


난 생전처음 봄을 기다린다.

따뜻한 아지랑이를.

온기를 품은 바람을.


난 준비가 되어 있나.

내가 해온 준비는 어떤 것이었나.

난 어떻게 봄을 맞아 어떻게 살아낼 건가.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는데.

나는 겨울이.

지루해서 목이 꺾어질 것만 같았던 겨울이.

여기서 그만 끝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제 박자를 못 따라잡는 음치처럼

자꾸만 박자를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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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2-2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출근길은 정말 아슬아슬 묘기. 미끄덩 미끄덩 내 구두굽이 당장이라도 삐끄덕 할 거 같았어. 어쩌면 우린 겨울에 가장 그런 느낌을 갖고 살아가는 지도...
그냥 다 날씨 탓이야 ! ^-^

rainy 2005-02-2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겨울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뭐랑 싸우고 있는 심정을 은근 즐기나봐 -_-
나 sm .. 이제야 정체성이 드러나다니 .. 어케 적응하지?? ㅋㅋ
 

 

                 울음



   때로는 울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는지 잊었습


   니다 내 팔은 울고 싶어합니다 내 어깨는 울고 싶어합


   니다 하루 종일 빠져 나오지 못한 슬픔 하나 덜컥거립


   니다 한사코 그 슬픔을 밀어내려 애쓰지만 이내 포기하


   고 맙니다 그 슬픔이 당신 자신이라면 나는 또 무엇을


   밀어내야 할까요 내게서 당신이 떠나가는 날, 나는 처


   음 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성복>


저절로 눈물이 솟구쳐 오는 슬픔도 있겠지만

울음조차 먹통인 슬픔도 있겠다..

당신이 내게서 떠나가는 날.. 처음 울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비로소 내게로 오는 날.. 처음 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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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2005-04-2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종일 빠져 나오지 못한 슬픔 하나 덜컥거려 가슴언저리가 아픈 적도 있었지...

rainy 2005-04-2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어떤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도 그닥 나아질 것이 없다면
억지로 걸려있는 슬픔을 잡아 빼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생채기를 남길지도 모른다고..
차라리 그 슬픔이 편안하게 자리잡도록
슬픔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은 어떨까..
잠깐 생각해 봅니다..
 

 

      고독


 

     그대 아는가 모르겠다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



     온몸이 깨어져도


     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


     얼음 번개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문정희>

 

그대, 혹은 지나간 그대들이 아직 내 주변에서 웅웅거릴 때엔

이렇게 중얼거릴 수도 있었겠다.. 그대.. 참으로 알겠는가..라고

하나의 그대를 잃으면서 지나간 모든 그대들도 약속이나 한 듯 

내 생에서 하나하나 물러가며 퇴색되어 버린 후..

나는 고독할 자격조차 정지 당했는가..

이제야 비로소 나는 고독하지 않겠다...

시쳇말로 고독이란 단어는 이제 내겐 [생뚱맞다]..

죽어버린.. 죽어서 다시는 소생할 수 없게 된 단어가 되었다..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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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페인 새우가 참 맛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제는 요리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였는지, 한 사람씩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

그럼 내 차례군요, 하고 여자 가이드는 아우토반을 흘러가는 먼 풍경을 바라보며, 역시 수프예요, 하고 중얼거렸다.

“수프?”

“그래요, 따뜻한 수프, 마음까지 녹여버리는 수프.”

“어떤 수프?”

“마음이 든 수프.”

“어머니의 수프?”

“그래요, 헝가리의 수프는 참 맛있어요.”

그 이상, 나도 디자이너도 묻지 않았다. 우리의 뇌리에 다시금 빈의 차가운 포장도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 차가운 돌길을 걸어 집으로 갔는데, 따뜻한 빵에 따뜻한 수프가 있었다면, 그런 상상만으로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렇지만, 맛있는 수프는 좀 두려워요.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부다페스트에 돌아갔을 때 옛 친구를 만났죠. 그 친구, 망명하고 싶어했는데, 망명하지 못했지요. 지금도 망명하고 싶어 해요.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외로워지고 슬퍼지잖아요? 난 정말 복잡한 심경이었어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수프를 먹고,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서, 그만 친구의 일을 잊었죠. 일순간에, 전부 잊어버렸어요. 그 친구의 고민, 고뇌, 잊어버렸어요. 그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

 

‘무라카미 류의 요리와 여자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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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을 찬 바람이 돌아 나가는 것 같은 글이다. 짧지만 여파가 크다..

‘그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라는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

친구들 중 누군가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쯤 오만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을 나눈 기억이 있다.

“남편이 너무 잘해줘서 그래, 세상이 다 발 아래지? ^^”라고..


사람은 오히려 극도로 춥고 외로울 때, 겸허해지는 것 같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런 느낌 때문이다.

춥고 외로워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갈 때는 적어도 오만불손을 떨지 않는 것이다.


사랑을 얻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외로운 기억이 언제였나 싶을 때,

문득 자기도 모르게 오만해지는 것.. 그건 참 두려운 일이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행복은 혼자만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진데..

사람들은 그럴 때 종종 잊는다..

지금의 따듯함이 오로지 자기 힘으로 된 것 같은 오만한 착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면, 꼭 서로에게 말을 해주자’는 당부를 나누었었다..

알고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란 전제 하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을 때 꼭 서로에게 일침을 가하자고..

두려워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이 내가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까봐..


지금은 외롭고 힘든 시기이니 당분간은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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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1-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요즘 정말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

우리... 나이 탓일까?

rainy 2005-01-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좀 이것 저것 겪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
겪으면서 '어떤 확신'들이 자꾸 금 갈때마다..
당연히 그럴 거라 믿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을 볼 때마다..
두려워 지는 건가봐..
 

 

곽재구시인의 <새벽편지>에 댓글을 귓속말로 달아주신 분에게..

귓속말 하신 분.. 우리는 어떤 단어를 쓸 때.. 조심하고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제가 알라딘에 올리는 글들은 제 일방적인 글들로써

'나는 이렇다, 나는 이렇게 생각 한다' 류의 글이기 때문에

읽으시는 분들은 '아 그럴 수 있겠구나' 또는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데..'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류의 글들이지요.

어떤 논쟁의 소지가 있는 글들은 조금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상대의 생각 - 나와 같거나 혹은 다른 - 을 읽는 것이지요.

그것이 내 생각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책임이

온전히 저에게 속해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구요..


하지만 님의 글은 특정한 누군가에게 뜻을, 글을 전달하는 것이므로

그 이전에 충분히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떠한 단어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역사 속에 그것들은 녹아 있겠지요.

똑같이 '파랑색'을 얘기하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와 얘기할 때 '파랑색'은 '슬픔'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 얘기할 때 '파랑색'은 '희망'을 뜻하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사랑'이란 말이나 ‘우리’라는 단어를 전달할 때는

두 사람이 그 단어에 대해 똑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느낌은 어떤 경우는 신념, 가치관, 두 사람의 역사를 포함에

아주 강경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헤어지기 일보직전의 남녀가 있다고 할 때

한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에 속한 쪽이고

한 사람은 ‘사랑한다면 절대로 헤어질수 없다’라는 속한 쪽이라면

그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해도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글을 쓰다보니 너무 멀리 돌아왔다 싶습니다.

말이나 글이 길어지면 처음에 하고 싶었던 말은 급히 건너뛰고

다른 얘기를 하고 있을 때가 종종 생기기도 하지요.


제가 처음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 어떤 것이었나 되짚어 보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후의 햇살은 너무 강력해서.. 눈앞을 너무 부시게 해서

지금 쓰는 이 글의 마무리를 저녁으로 미룰까도 생각하지만

그저,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마음을 개운히 비우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말이나 글.. 그 이전에 어떤 마음의 진정성..

그것이야말로 내가 굳이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어떤 절실함, 어떤 결백함.. 그런 것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그건 꼭 말로, 글로 표현되지 않아도 이미 그것으로 충분한 것들이기도 하지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글이나 말은 그 다음에 서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절실함과 결백함을 오래 내 것으로 지켜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지요.

자기가 쓰는 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한번도 그것에 대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거듭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가져본 적 없으면서

그저 입 밖으로 내 뱉는 말들은 공허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들은 재활용조차 할 수 없이 망가진.. 쓰레기 같다고.. 감히..


처음 하려던 말은 간단하고도 짧은 것이었는데

쓰다보니 길어져서 페이퍼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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