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페인 새우가 참 맛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제는 요리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였는지, 한 사람씩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
그럼 내 차례군요, 하고 여자 가이드는 아우토반을 흘러가는 먼 풍경을 바라보며, 역시 수프예요, 하고 중얼거렸다.
“수프?”
“그래요, 따뜻한 수프, 마음까지 녹여버리는 수프.”
“어떤 수프?”
“마음이 든 수프.”
“어머니의 수프?”
“그래요, 헝가리의 수프는 참 맛있어요.”
그 이상, 나도 디자이너도 묻지 않았다. 우리의 뇌리에 다시금 빈의 차가운 포장도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 차가운 돌길을 걸어 집으로 갔는데, 따뜻한 빵에 따뜻한 수프가 있었다면, 그런 상상만으로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렇지만, 맛있는 수프는 좀 두려워요.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부다페스트에 돌아갔을 때 옛 친구를 만났죠. 그 친구, 망명하고 싶어했는데, 망명하지 못했지요. 지금도 망명하고 싶어 해요.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외로워지고 슬퍼지잖아요? 난 정말 복잡한 심경이었어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수프를 먹고,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서, 그만 친구의 일을 잊었죠. 일순간에, 전부 잊어버렸어요. 그 친구의 고민, 고뇌, 잊어버렸어요. 그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
‘무라카미 류의 요리와 여자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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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을 찬 바람이 돌아 나가는 것 같은 글이다. 짧지만 여파가 크다..
‘그건 좀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라는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
친구들 중 누군가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쯤 오만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을 나눈 기억이 있다.
“남편이 너무 잘해줘서 그래, 세상이 다 발 아래지? ^^”라고..
사람은 오히려 극도로 춥고 외로울 때, 겸허해지는 것 같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런 느낌 때문이다.
춥고 외로워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갈 때는 적어도 오만불손을 떨지 않는 것이다.
사랑을 얻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외로운 기억이 언제였나 싶을 때,
문득 자기도 모르게 오만해지는 것.. 그건 참 두려운 일이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행복은 혼자만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진데..
사람들은 그럴 때 종종 잊는다..
지금의 따듯함이 오로지 자기 힘으로 된 것 같은 오만한 착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면, 꼭 서로에게 말을 해주자’는 당부를 나누었었다..
알고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란 전제 하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을 때 꼭 서로에게 일침을 가하자고..
두려워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이 내가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까봐..
지금은 외롭고 힘든 시기이니 당분간은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