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아 오늘은 이거 입구 가자.”

“싫어, 남자옷 같아.”

“남자 여자가 어딨어. 이쁜데.”

“싫어, 남자옷 같아.”

“그럼 오늘 하루만 입고 가서 친구들하구 선생님한테 물어봐.

그래서 남자 옷 같다고 밉다고 하면 다음부터 입지 마.”

“싫어.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할 거야.”

“뭐?”

“내가 남자옷 같다고 생각하니까 안 물어 본다구. 그냥 안 입을 거야.”

(잘났다. 니말이 맞다 - 속으로 -_-;)


2004년 어느 가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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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3-0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그러네.
 

"내 나이가 되면, 싫어도 진심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피곤합니다."

<알베르 카뮈 -  페스트 中> 

 

이 글에서 제일 꽂히는 부분은

피곤하다는 말이다.

진심을 말하기보다 진심을 감추는 일이

세 배쯤은 더 피곤한 일 같다..

피로해.. 피로해서..

땅 속으로 꺼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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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날



      요즈음


      사람들이 흐려보여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 그래


      배가 고파


      굶고 싶어


      문득 해가 져


      죄짓고 싶어


      죄지으면 지금 이 봄이 봄이 될까


                    <김용택>

      

 

문득 순식간에 이미 해가 져 버리고 말았다는 걸 깨달아버린 심정.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데. . 사방은 급히 어두워지고..

죄라도 짓고 싶은 마음이 되어 버리는..

이 막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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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에 슬픔과 병에 관한,

자신에게 기어코 상처를 내고야 마는 것에 관한

글을 올리고 난 후였다.

지인과 메신저로 이 얘기 저 얘기를 한가롭게 주고받고 있을 때

그로부터 배우 이은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은주.

늘 얼굴 한편에 허무함을 지워내지 않던

생긴 것이 내 타입은 아니었던

나이답지 않게 어둡고 칙칙한 느낌이

왠지 모르게 싫어서 외면하고 싶어지게 만들던..

하지만 또 왠지 아주 관심이 없게 무시되거나 하지는 않던

나에겐 묘하게 작용했던..

진지하고 길게 생각하는 건 피했지만

그건 그 여자 핏속의 어떤 성분과 내 핏속의 어떤 부분이

아주 약간이나마 일정부분 같아서 일거라고 혼자 잠깐 생각하기도 했던.

그래서 아예 관심을 끊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결코 마음편히 좋아지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녀가 자살을 했단다.

하필이면 목을 매어..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놀랍지 않았다는 것에 잠깐 당황하고

영화 주홍글씨의 한 부분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소름이 끼쳐오고

하필이면 막 내가 그런 내용의 페이퍼를 작성했었다는 것에 생각이 닿고..

창밖에 흩날리는 .. 눈이 .. 하염없고..

하늘의 두께가 어두워 숨이 막힐 듯 한 느낌..


누군가의 죽음 뒤에서

추측이나 이해.. 그런 것은 부질없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평안을 얻었길 기원한다.

그녀가 가 닿은 곳은 불안과 상처가 없는 곳이길..

평안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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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에게]


잘 가게

뒤돌아보지 말게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네


눈이 오는 날

가끔 들르게


바람도 무덤이 없고

꽃들도 무덤이 없네



[머무는 이에게]


보라

눈이 내린다

칼날과 칼날 사이로

겨울이 지나가고

개미가 지나간다

칼날 위를 맨발로 걷기 위해서는

스스로 칼날이 되는 길뿐

우리는 희망 없이도 열심히 살 수 있다.

 

 (메모 - 정호승의 시 - 아마도)

 

---------------------------------

 

눈이 내린다.

도시는 흉년.

세상은 고요하다.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지만

제자리로 돌려진 얼굴은 수만 가지 얼굴이다..

제자리로 돌려지고도 슬픈 얼굴이 늘 문제다.

슬픔은 병을 만든다.

그 병이 또 슬픔을 만든다.

슬픔과 병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사람이 늘 문제다.

무덤을 가지지 못한 것들의 슬픔이 늘 문제다.


세상과 사이좋게 살아가지 못하고

따스하고 안전한 것에는 겁을 먹는 사람들.

맨발로 칼날 위를 걷고야 마는 사람들.

스스로 칼날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그 스스로의 칼날로 타자가 아닌 자신을 베고 마는 사람들.

그렇게 흘린 피만이 온전히 따뜻하다고 안심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도 희망은 필요하다..

희망없이 열심히는.. 그런 이들에게도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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