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에게]
잘 가게
뒤돌아보지 말게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네
눈이 오는 날
가끔 들르게
바람도 무덤이 없고
꽃들도 무덤이 없네
[머무는 이에게]
보라
눈이 내린다
칼날과 칼날 사이로
겨울이 지나가고
개미가 지나간다
칼날 위를 맨발로 걷기 위해서는
스스로 칼날이 되는 길뿐
우리는 희망 없이도 열심히 살 수 있다.
(메모 - 정호승의 시 - 아마도)
---------------------------------
눈이 내린다.
도시는 흉년.
세상은 고요하다.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지만
제자리로 돌려진 얼굴은 수만 가지 얼굴이다..
제자리로 돌려지고도 슬픈 얼굴이 늘 문제다.
슬픔은 병을 만든다.
그 병이 또 슬픔을 만든다.
슬픔과 병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사람이 늘 문제다.
무덤을 가지지 못한 것들의 슬픔이 늘 문제다.
세상과 사이좋게 살아가지 못하고
따스하고 안전한 것에는 겁을 먹는 사람들.
맨발로 칼날 위를 걷고야 마는 사람들.
스스로 칼날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그 스스로의 칼날로 타자가 아닌 자신을 베고 마는 사람들.
그렇게 흘린 피만이 온전히 따뜻하다고 안심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도 희망은 필요하다..
희망없이 열심히는.. 그런 이들에게도 너무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