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간 토요일 오후.
사람들을 만나 음주가무에 젖어볼까도 했었으나
왠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한명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했다.
시간은 5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이젠 몇 남지 않은 술친구들에게
급연락을 취하기엔 여러 가지가 애매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1박2일의 시간.
물론 상근이도 돌아가는 카메라도 없었지만
내겐 하이네켄 다크 5병과 오래된 참이슬 두병, 저장해둔 영화들,
그리고 짧아진 봄 탓에 꺼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 악몽 같은 서너 무더기의 옷들이 있었다.
나는 시험공부 하기 전에 책상정리부터 하는 몹쓸 버릇을 재현하듯
일단 샤워를 했다. 마치 대단한 데이트라도 준비하듯.
그리고 나서 먹을 것을 찾아 냉장고를 열어 보았지만
가능한 아.점.저의 대상은 냉동군만두밖에 없었다.
아무렴 어때.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과장되게 낙척적인 마음으로
군만두를 정성스럽게 구워 하이네켄 다크 두병을 해치웠다.
슬렁슬렁 빨아서 쌓아놓은 옷가지들을 개켜 상자에 담아가며
요즘 꽂힌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반복해서 듣다보니 날이 조금씩 저물어
비로소 안전한 시간이 되었다.
왠지 안전하게 외출이 포기되고 누구에게도 되지 않는 연락을 취하지 않으며
누구로부터도 잊혀진 것만 같은.. 안심..
(이건 무슨 되지도 않는 오버냐. 넌 이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산장의 여인’이 아니더냐!)아무튼.
난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내 컴퓨터 영화폴더엔 삼십 편쯤의 영화가 있다.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스무편쯤, 누가 보라고 주니 그저 받아놓은 영화가 열편쯤.
나는 약간 설레여져서 영화들의 제목을 훑어 보았지만
곧 닥쳐온 예의 그 ‘감동저항증후군’에 시달리며
영화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30분쯤을 흘려 보냈다.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으나 나는 문득 두려웠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 채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함이 몰려온다는 것.
나는 그동안 너무 지쳤다.
영화 한편 여유 있게 즐기지 못하고 , 책 한줄 맘 편히 읽지 못했으며
글 한줄 자연스럽게 쓸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쓰고 보니 심하게 찌질하게 간다.)
나는 ‘디 아워스’를 보려다 말고
‘비커밍 제인’을 보려다 말고
‘아이리스’를 보려다 말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보려다 말고
‘시간’을 보려다 말고
‘깃’을 보려다 말았다.
그 시점에서 나는 영화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꼭 영화 한편은 봐내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무엇이 그리 어렵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을 보기로 했다.
보기로 했고 나는 그 영화를 보았다.
내가 오늘 쓸려던 건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 관한 감상이었다.
그런데 서두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렇게 앉아 몇 줄의 글이라도 써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다고.
그래서 내가 영화 한편을 마음 편히 보았던 어떤 토요일 오후에 관해
이렇게 길게 설명이 되어져 버렸던 거라고..
그래서 이 페이퍼의 제목은 ‘투스카니의 태양 1’이 되어 버렸다.
내가 정한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나는 내일이 두려우므로 자정을 맞은 신데렐라가 달리듯
침대로 기어들어 가야한다. 피로가 몰려오므로 쉽게 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