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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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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 민족정신은 문명의 상태를, 군중의 정신은 야만의 상태를 나타낸다.

군중이 익명성을 띄느냐 비익명성을 띄느냐에 따라 느끼는 책임감은 천지차이다. 익명이 주는 무책임은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터넷 댓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재판의 배심원단만은 이성적일거라고 여겼는데 배심원단도 이성적이 아닌 감정적이라는데서 약간 충격 아닌 충격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배심원단의 지적 수준과 구성은 평결에 차이가 없다.

"유권자 군중" 부분이 나오자 국민을 개, 돼지로 표현했던 한 국회의원이 생각났다.
유권자로서의 군중. 이성적인 논리와 신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 1800년대에 씌여진 이 책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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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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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무슨 교육을 받는지 보면, 훗날 그 나라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와 군중심리의 연관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대를 변화시키려는 교육을 하고 있기 보다는 변화된 시대를 뒤쫒아가기 바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군중은 환상을 쫒는다. 진실을 믿기보다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큰소리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에게 쉽게 현혹되고 따른다. 환상에 호소하는 지배자의 논리가 이성적일 수가 없다. 감정적인 연설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의 지도자는 행동파가 많다.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강한 지도자들은 대부분 행동파였다. 그러나 이런 지도자들은 일시적이다. 사상과 신념을 가진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큰 영향력을 가진다. 심지어 죽음이후까지도 말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백범 김구 선생이 떠올랐다. 너무 뜬금 없었나 싶지만 정신적 지도자로 거론되는 김구 선생이기에 무의식에서도 깊이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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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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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개인이 모인다고 군중이 되는 건 아니다.
군중은 항상 무의식에 지배된다.            

군중이라고 해서 꼭 엄청난 인원이 한 장소에 모여 있을 필요는 없다. 따로 떨어져 있더라도 특정한 순간,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면 군중의 성격을 띨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추운 겨울의 촛불 집회가 연상되었다. 광화문 현장에 가지 않았더라도 마음 속으로 촛불을 함께 밝혔을 많은 국민들이 그 적절한 예가 되지 않을까.
군중 안에서의 개인은 일종의 집단 심리를 갖게 된다. 혼자였다면 하게 되었을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 대신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적인 판단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군중이 주는 익명성은 책임감을 지우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 쉽게 만든다. 많은 폭동과 시위 현장에서 동반되는 약탈과 폭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군중의 충동성과 변덕, 과민성은 민족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저명한 학자나 전문가들이라도 군중의 일원이 되면 다른 군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군중이 무의식에 지배된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뉴스나 역사적인 사건들 중에 사이비 종교의 집회 등을 통해 집단 환각, 암시, 최면이 주위에 쉽게 전염되는 것을 보아왔다. 군중을 선동하고 지도하는 리더의 중요성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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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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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러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때와 장소에 따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한결같은 모습인 사람도 있지만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매 순간의 자아도 틀림없는 자신이다.
사람이 주고 만드는 환경에는 거절과 소속감이라는 무형의 환경도 포함된다. 여기에서 발생되는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 고통에 못지않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경험이 재활성되어 함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공감이라고 부른다.

개인주의의 확대는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완벽함에 가깝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은 것도 아니고,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서 자존감이 낮은 것도 아니다. 자아의 직시와 자아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은 높은 자존감은 주위에 피해를 줄 뿐이다. 예를 든다는게 무의미할 정도로 그 예는 넘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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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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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자아를 결정하고 정의하는데 환경과 유전자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왔다. 이를 밝히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의 추적 조사 등을 통한 연구도 있어왔다. 하지만 환경과 유전자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별개로 떨어뜨려 생각해 볼 수 없다. 두 관계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공생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은연중에 개인에게 전달되는 환경이며 환경이라는 조건에는 개인의 경험도 포함된다. 문화의 차이는 자아를 규정짓는 기준점이 달라지게도 한다. 미의 기준이나 학습의 방향과 영역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개인의 경험과 유전자의 차이는 각각의 개성과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런 점들이 스스로를 전체의 일부로 보기보다 개인으로 보는 시각의 시작일 것이다.
개인주의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양과 관계주의가 더 중요시되는 동양을 비교해볼때 자존감이 서양에서 더 높게 나온다. 자존감은 개인주의와도 연관이 있을까?

서양의 영웅은 악에 맞서 싸우는 정복자의 이미지이고 동양의 영웅은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이다. 자살을 실패자로 보는 시각과 모든 것을 떠안고 책임지는 방법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문화의 차이로만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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