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균등한 토지 분배가 우선인데, 그것을 위해 맹자는 정전제井田制를 대안으로 주장했고, 또 가구마다 5무畝의 집터와 100무의 논밭을 소유하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맹자는 토지의 균등한 분배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귀족의 기득권도 옹호했습니다. 맹자는 항상 대를 이어 벼슬을 하고 정치를 한 귀족, 세족世族, 거실巨室을 존중하라고 했지요. 정전제로 대변되는 토지의 균등한 분배와 귀족의 기득권 및 특권 유지는 병행될 수 없는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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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법술지사는 군주의 무위無爲를 주장합니다.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기능적 역할만 하는 군주를 생각한 것이지요. 이것이 법술지사가 주장하는 군주의 무위이고, 법치는 그러한 무위와 같아야 한다고 했지요. 상앙이 한비자만큼 철저히 군주의 무위를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군주가 사적 욕심과 의지를 배제하고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정도의 무위를 주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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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는 귀족, 지주, 관료를 인정합니다.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고 군주 앞에서 동일한 의무와 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기득권층을 인정한 채 시작하지요. 다만 신분 계층의 상위에 있는 이들이 도덕적으로 충분히 수양을 한 군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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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가 무너진 것은 가혹한 법치와 토목공사 등이 원인이 아니라, 진나라 정부가 각지에 흩어진 제, 초, 조, 연, 위, 한 등의 왕족 출신 귀족과 대상인, 지주, 호족 등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특권층과 인민을 똑같이 다루고 통치한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이 앞서 이야기한 동同의 정치 노선인데요, 그 동의 노선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지요.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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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뿐만 아니라 묵자 집단도 투신해서 만든 진나라의 통치체제는 분명 인민이 살기 좋은 민본적 요소가 상당했고, 그것이 통일전쟁 수행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진나라가 무너지고 한漢나라가 들어선 것은 역사의 반동일 수도 있다고 보고요.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ZMrvBQxHKYY42b9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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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 개념 전략

당시 지배층은 군자君子라는 말로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군君의 자子, 말 그대로 군주의 아들이고 친척이지요. 좋은 신분을 타고난 교육과 문화의 수혜자입니다. 이렇게 군자는 원래는 철저히 신분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의미를 좀 바꾸어놓았습니다. 단순히 조상을 잘 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과제에 주력하는 이상적인 인간으로 말입니다. 공부와 수양에 주력하고 안인安人을 정치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도덕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었습니다. 어쩌면 개념을 바꾸는 언어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지배자에게 강도 높은 윤리적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주문한 것이지요. ‘당신들이 아무리 잘난 조상 두고 현재 잘 먹고 잘살아도 수양하지 않고 인민을 포용할 덕이 없으면 그저 소인일 뿐이요, 그리고 소인처럼 굴다가는 당신이 다스리는 정치 공동체의 앞날은 어둡기만 할 것이오’라고요.

군자라고 목에 힘주고 다녔는데 이제 공자 때문에 잘못하면 소인 소리 듣게 생겼습니다. 군자라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소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이제 좀 달라져야 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느끼고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이게 공자의 전략입니다

(물론 아무도 경각심을 느끼지 않았고, 공자의 주장은 누구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자의 기대에 불과했지요). -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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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24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뭐라든 공부와 수양에 초점을 맞추고 싶네요.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지리상의 발견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진출로 인해 오리엔트 지역을 통한 종래의 동서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유럽인들이 동방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신항로 탐험은 오스만이 유럽으로 진출하기 훨씬 전에 이미 포르투갈인들이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튀르크인들이 유럽에 진출한 후 동서 교역로는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었다. 사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신항로 탐험에 나선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지중해-홍해-인도양 루트’를 이용하는 유럽과 동방 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외된 이베리아반도의 상인들이 지중해와 홍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서양으로 나가는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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