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캐스트로노바 Edward Castronova는 그저 그런 경제학자였다. 주류 경제학자를 꿈꿨으나 현실은 그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1991년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 후 10년 동안대학의 조교수로 지내면서 남들이 인용해주지 않는 논문을 몇편 발표했을 뿐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부인은 다른 도시에서일하고 있었기에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몇 시간씩 게임을 즐기곤 했다. - P4

이 연구는 사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캐스트로노바는 이 논문을 SSRN에 공개할 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그저조회 수가 수십 회 정도 될 것이라 예상했고, 그 정도만 되어도멋지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번에도 현실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그의 논문이 공개되자 처음에는 <에버퀘스트>를 좋아하는 마니아를 통해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 소개되며 회자하기 시작했다. <에버퀘스트> 사용자들은 이 논문을 공유하며 열렬하게 토론했다. 곧이어 유명블로그 사이트에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특이한 자료를 좋아하는 언론의 관심을끌었다. 이렇게 언론과 커뮤니티를 통해 그의 연구가 소개되기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논문은 SSRN에서 가장 많은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마침내 다른 사회과학 연구자부터 정부의 경제 관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그가 연구한가상 세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그는 각종 미디어나학술회의의 초청을 받는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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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캠핑장에 이런 고사가....


1778년 가을에는 부친을 문안하려고 네 형제가 모두 화순에 내려와 있었다. 형제는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인근 동복현의 물염정勿染亭과 적벽赤壁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이곳은 적벽강 30리 물길이 붉은 기운을 띤 절벽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면서 도처에 절경을 빚어놓은 곳이었다 - < 파란 1, 정민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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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아들이 1816년 4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님, 한 번만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셔서 석방을 빌어보시지요.



다산의 답장은 이랬다. 조금 풀어서 쓴다.



세상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시비是非와 이해利害가 그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롭게 되는 것이 가장 좋고, 옳은 일을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른 일을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 세 번째고, 그른 일을 하다가 해를 보는 것은 네 번째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를 하려다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너는 내게 그들에게 항복하고 애걸하라고 하는구나. 이는 세 번째를 구하려다 네 번째가 되라는 말과 같다. 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하리. 이는 그들이 쳐놓은 덫에 내 발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냐? 나도 너희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견주면 가고 안 가고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찮은 일로 아양 떨며 동정을 애걸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다산은 아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18년간의 유배를 견디면서 살려달라는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 - < 파란 1, 정민 지음 > 중에서


관련하여 시비에 대한 좀더 세부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윤리학Ethics(좀 더 구체적으로는 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은 것’은 무엇인가?What is Good?, ‘옳은 것’은 무엇인가?What is Right?에 대한 체계적인 답변을 구하려고 시도하는 철학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두 가지 층위에서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거나 옳은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사회적 체제 혹은 제도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도덕 혹은 정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거나 옳은가 하는 것이다. 후자의 질문에 집중을 하는 철학 분야를 우리는 흔히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정치철학은 넓게 보아서 윤리학의 한 하위 분야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 < 처음 읽는 윤리학,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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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의 대학원에서는 2년의 석사 과정을 끝내면 석사 학위를 받고, 그 후 3년의 박사 과정을 소화하면 자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는다. 미국은 앞서 말한 대로 학문으로서의 당연한 룰로 박사 논문의 주제를 정하고 논문이 통과되지 않으면 박사가 되지 못한다. 즉, 일본의 박사 학위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매우 가벼운 것이다. - < 숫자 없이 모든 문제가 풀리는 수학책, 도마베치히데토 지음, 한진아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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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암살사건은 노투사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이것은 분명히 이승만의 짓이다. 함께 고생하며 독립운동을 한 처지에 정적이라고 죽이다니 그냥 놔두지 않겠다”며 ‘이승만 응징’을 선언했다. 김시현은 그때 이미 나이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정만큼은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1952년 6월 25일 김시현은 의열단 후배 유시태와 함께 임시수도 부산에서 열린 ‘6・25 2주년 기념 및 북진촉구 시민대회’에 참석, 연단에 있던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해 체포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김시현 일행의 권총이 불발되는 바람에 겨우 죽음을 면했다.

김시현은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나중에 무기형으로 감형돼 복역하던 중 4・19혁명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그는 친일파로 구성된 장면 정부의 국무위원회에 들어가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채 1966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이승만 암살미수 사건 때문에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김동진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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