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에는 이토의 명복을 빌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사찰 박문사博文寺가 서울 장충단공원 동쪽 언덕에 세워졌다. 장충단은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때 순직한 무관들을 제사하는 자리였다.

박문사 건립 운동은 조선총독부의 제창으로 시작되었고 조선과 일본에서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조선의 모금 목표는 이십만 엔이었고 이 액수는 각 도에 할당되었다. 조선 왕궁인 경희궁의 흥화문을 옮겨서 박문사의 정문으로 삼았다. 1973년에 박문사 부지는 삼성 재벌에 매각되었고, 이 자리에 1979년에 신라호텔이 건립되었다. - < 하얼빈, 김훈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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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전기차의 싸움이 끝난 후에 전기차와 휘발유차의 대결이 벌어진다. 

만약 말과 휘발유차의 대결이 먼저였다면 자동차가 지배자로 올라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살라의 기술의 진화에는 전기차와 휘발유차의 대결만 서술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하이스몸의 주장이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했다. 


기술사학자 하이스몸이 말했듯이, 말을 이긴 이동수단은 휘발유차가 아닌 전기차였다. 당시의 휘발유차는 기술이 너무 뒤떨어졌다. 그러나 일단 말이 사라지자 휘발유차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몸은 휘발유차가 성장한 것이 결코생산 비용이 더 저렴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휘발유차의 생산 비용이 저렴해진 것은 전기차를 시장에서 어느 정도 몰아내고 난 뒤의 일이었다. 즉 휘발유차의 승리를 이끈 것은 가격이 아닌 다른 요인이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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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는 이기적인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하여, 자기 몸의 한 오라기 털을 잃는 것만으로 공공에 이익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각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보전하려고 하여 공적인 일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한다. - <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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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맹자는 지성至聖인 공자의 뒤를 이은 아성亞聖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 역할로 보자면 맹자와 공자 사이에는 이미 지대한 차이가 있지요. 맹자는 전국 시대에 공자처럼 교육자의 신분으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맹자가 공자로부터 계승한 부분은 공교롭게도 공자가 일생 중 가장 쓰라린 패배를 맛봤던 부분, 즉 군주에게 이념을 전달하고자 정치 유세를 펼친 부분입니다. 공자는 정신없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군주에게 수많은 도리를 얘기했지만, 결국 그 어떤 군주에게서도 신임을 받아 중용되지 못했지요.

바로 이 점에서 맹자는 공자와 닮았고, 심지어 다소 비극적인 좌절이라는 결과조차도 비슷합니다. 비록 당시 최고의 논변술을 지녔고 명석한 두뇌로 굳건한 신념을 견지했지만,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하고도 맹자는 앞에서 언급된 양 혜왕과 제 선왕을 포함해서 단 한 명의 군주도 진실로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 인정을 베풀도록 설복하지 못했습니다.

- <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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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 진상이 펼친 논리의 모순이 명확해집니다. 맹자는 재차 묻지요. “그렇다면 유독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이 경작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대는 각각 다른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각자 다른 일을 맡는다는 걸 모르십니까?” 맹자는 분담하고 협력하는 사회 원칙을 일깨웁니다. “우리 개인 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수의 각각 다른 장인에게 의지해야만 구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물건을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을 분주하게 뛰어다니게 하여 쉴 새 없이 바쁘게 하겠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쓰고 어떤 사람은 힘을 쓴다. 마음을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솔하고 관리하며, 힘을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통솔되고 관리된다. 통솔되고 관리되는 사람은 먹을 것을 제공하고, 통솔하고 관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먹고산다’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천하의 공통 법칙이지요.” - <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결 옮김 > 중에서

우임금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먹고사는 것’을 그가 농부를 착취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우임금이 이렇게 고생하며 어렵사리 물길을 터놓은 후에야 범람하는 홍수가 물러가고 물에 잠겼던 토지가 드러나 경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임금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먹고살지’ 않았다면, 누가 이런 일을 나서서 할 것이며 농부는 어디에서 경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 <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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