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맬서스의 덫을 탈출한 이유

이렇게 해서 유럽에서는 가사의 시장화(집사나 가정부)에 의해 글자 그대로의 ‘독신귀족‘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귀족적인 인생설계를 가능하게 한영국, 아시아에서는 가족의 후계자를 한 사람으로 한정함으로써 역시 다산의 필요성을 줄인 일본이 최초로 ‘덫‘에서 빠져나와 근대화를 리드했다고 볼 수있습니다(Alan Macfarlane, 「ㅈㄴ日本』).

역으로 이 ‘덫‘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한 게 중국이겠죠. 중국의 혈족 네트워크는 어쨌든 낳고 낳고 또 낳아서 혈연자의 수를 늘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한사람 정도는 과거에 합격하든가 장사를 담당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나오고, 그렇게 하면 일족이 모두 기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필요한 국면(예를 들면, 시장의 확대)에는 적합하지만 억제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중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의 ‘이에‘란 것은 부계 혈연에 집착하지 않는 체계로 자식을 낳지 못하면 양자를 들이는 편법도 있기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을 양자로 들이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으며,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이상하게 여긴 관행입니다) 때문에 인구를 줄이는 데 적합합니다. 원래 대대로 정해진 가산을 상속하여 먹고 사는 세습제 사회에서 자식을 너무 많이 낳으면 집안이 파멸하기 때문에 자발적인 산이제한 관행이 보급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 P97

앞에서도 논한 것처럼 생산수단과 생산력(즉 세습된 토지)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족이 너무 많이 불어나면 아사할 뿐이므로 에도 중기 이후의 농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집안을 이을 사람‘ 이외의 남자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말로 무능하지 않다면 장남이 뒤를 잇기 때문에 차남 이하는 신부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이마무라 감독 작품에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한 리스케가 수간을 하는 장면까지 등장합니다). - P98

고도성장으로 조금씩 시대가 움직이고 있던 1957년에 발표된 <쌀*>은<푸른 산맥>으로 잘 알려진 이마이 다다시러 감독의 영화입니다. 가스미가우라 부근의 반농반어 촌락에 살고 있는 젊은남녀 청춘을 묘사하여 향수를 자아내는 영화지요. 여기에 이웃마을에 집단으로 헌팅 하러 가는 배 속에서 "장남이라고 하는 거야. 차남이라든가 삼남이라고 하면 어떤 아가씨도 상대해주지 않아"라는 충고 장면이 등장합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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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인간의 선량함,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뇌과학자의 질문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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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세 신분제의 미스테리




말투를 바꾸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판 미디어가 발전한 중국은 1000년경부터 머리가 좋은 서민들을 수험 경쟁에 열심히 참가시켜서 그 승자를 관료로 선발하는 채용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귀하고 인쇄기술도 없었던 동시대의 일본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섭정 · 관백을배출하는 것은 대대로 후지와라 가문‘이라는 식으로 통치기관 내부에서 상류계급의 집안끼리 직위를 나누어 가지고, 집안 내에서 후계자를 육성하는 교육시스템에 의존해서 관료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후지와라 씨를 정점으로 하는 대귀족에 의한 관위의 가직화, 가산화가 진행되어 장원제와 물납경제에 입각한 귀족정치는 쇠퇴하기는커녕 두고두고 권세를 자랑합니다. - P43

인접한 중국에서는 근세부터 즉 송나라시대부터 신분제라는 것이 폐지되었습니다. 나아가 에도시대는 잘 알려진 대로 서적 문화나 인쇄출판업이 꽃핀 시대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미디어의 측면에서도 송나라에 근접했다고 할까, 과거를 실시하려고 했다면 가능한 환경에 도달한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나라에서 600년이전에 없어진 신분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밖에 할수가 없습니다.

에도시대의 신분제를 ‘당연하다‘고 취급하는 것은 일본인이 중국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열등민족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고백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별로 상관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왜 근세의 일본인이 이 시기에 이르러 굳이 신분제 사회를 선택한 것일까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만 합니다(‘새역모‘든 일교조든 과연 몇 명의 선생님들이 설명할 수 있을지 저는걱정입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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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근세시스템 대 일본의 근세시스템

이 책의 독자들에게도 오해가 있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여기서 정리해두고자 합니다만, 중국의 근세 일본의 근세도 각각 완결된 정책 묶음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 우위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이 효과를 발휘하는 국면과 폐해를 가져온 국면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우선 광대한 영역의 시장권에서 자유롭게 상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중국형의 혈족 네트워크가 정보망으로써도 안전망(만일의 경우 보험으로써도 뛰어납니다). 역으로 동일한 지역의 모두가 협력하면서 농사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식의 가족제도나 촌청제가 기술 축적 면에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기초학력과 범용성이 높은 종합직generalist 을 발탁하는 데에도 일률적인 필기시험 형태인 중국의 과거제도가 적당합니다. 그러나 그 직에 고유한 특수 기능이나 지역의 실정에 특화된 전문직specialist 을 육성한다면 일본의 가격에 의한 직인훈련이 효과적입니다.

혹은 중앙 주도로 대담한 개혁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황제 집권이나 군현제가 안성맞춤이지만, 역으로 지역마다의 개별성이나 기존의 질서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감금 관행이나 봉건제가 더 안심일 것입니다. - P90

문제는 각각의 정책 묶음의 특성과 사회적 필요성이 뒤틀리게 된 경우입니다. 좀더 극단화 시키면, 중일 양국의 특징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혼합체제‘는 결과적으로 시스템의 어딘가에 결함이 발생하는 국면이 급증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 부분은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의『Systems of survival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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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이데올로기의 힘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보면 ˝차별받아온 흑인인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사실이야말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빛나는 전통이며 희망의 증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요. 이런 방법을 통해 그냥 내버려두면 자신과 대립할 것 같은(예를 들면, 보수파백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그들이 받드는 건국이념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은 ‘소수민족에 의한 다수파 통치‘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던 청나라의 옹정제도 자신을 비판한 한인 유학자를 교화하기 위해 작성한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1729)에서 오바마와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옹정제는 이 책을 통해 주류인 한민족 사람들이 제시한 이념은 전 세계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올바르게 터득한 사람이라면 천자의 자리에 올라도 좋으며, ‘오랑캐‘가 황제가 되는 것은 중화제국의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어필했습니다.

이처럼 상대가 믿고 있는 이념의 보편성을 우선 인정하고, 그렇다면 ‘외부에서 온 우리들에게도 자격이 있다‘는 형태로 권력의 정통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송나라에서 과거제도와 주자학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이후 그 나라 왕권의 핵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근세중국의 사회제도는 세계의 누구든 사용자가 될 수 있는 극히 범용성이 높은 시스템으로 설계되었으며, 중국인들은 이것을 ‘국가적 자긍심‘으로 삼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것을 자랑하는 안이한 사고‘ 방식과는 많이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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