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를 바꾸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판 미디어가 발전한 중국은 1000년경부터 머리가 좋은 서민들을 수험 경쟁에 열심히 참가시켜서 그 승자를 관료로 선발하는 채용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귀하고 인쇄기술도 없었던 동시대의 일본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섭정 · 관백을배출하는 것은 대대로 후지와라 가문‘이라는 식으로 통치기관 내부에서 상류계급의 집안끼리 직위를 나누어 가지고, 집안 내에서 후계자를 육성하는 교육시스템에 의존해서 관료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후지와라 씨를 정점으로 하는 대귀족에 의한 관위의 가직화, 가산화가 진행되어 장원제와 물납경제에 입각한 귀족정치는 쇠퇴하기는커녕 두고두고 권세를 자랑합니다. - P43
인접한 중국에서는 근세부터 즉 송나라시대부터 신분제라는 것이 폐지되었습니다. 나아가 에도시대는 잘 알려진 대로 서적 문화나 인쇄출판업이 꽃핀 시대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미디어의 측면에서도 송나라에 근접했다고 할까, 과거를 실시하려고 했다면 가능한 환경에 도달한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나라에서 600년이전에 없어진 신분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밖에 할수가 없습니다.
에도시대의 신분제를 ‘당연하다‘고 취급하는 것은 일본인이 중국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열등민족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고백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별로 상관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왜 근세의 일본인이 이 시기에 이르러 굳이 신분제 사회를 선택한 것일까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만 합니다(‘새역모‘든 일교조든 과연 몇 명의 선생님들이 설명할 수 있을지 저는걱정입니다). -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