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사회계약


안셀의 설명에 따르면, 주택 가격이라는 숫자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토록 큰 무게를 갖는 이유는 주택 가격이 선진국에서 사회계약의 토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중동에서는 빵이 많은 역할을 한다. 중동에서 빵은 가장 중요한 영양공급원이자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처럼 더 부유한 지역에서는 주택 소유가 이와 비슷하게 안정을 주는 원천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집을 살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한 최후의 보험이자 연금이자 저축으로 여긴다. 

또한 안셀은 사람들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복지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복지 제도를 덜 지지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2016년 영국의 유권자들은 집값 상승과 복지 축소라는 두 압력에 짓눌려 있었다. 정부의 긴축으로 무주택자들이 의지하던 사회안전망이 축소되면서 복지 제도는 껍데기만 남았다. 그리고 집값이 날로 오른다는 사실은 무주택자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자가 소유라는 보험)이 손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사회계약이 깨진 것으로 보였다. 이제 혁명이 필요한 때였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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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는 유전을 파괴하지 않는다. 중동의 내전은 석유 공급에 아무 영향을 주지않는다.


자원의 저주는 혼돈을 증폭하는 또 다른 장치다. 투기자들이 작은 사건을 거대한 가격 충격으로 바꾸고 뉴스 미디어와 포퓰리스트들이 수천 명의 난민을 ‘침략‘으로 부풀리듯, 자원의 저주는 한 지역의 위기를 세계적인 재난으로 바꿀 수 있다. 

자원의 저주라는 장치는 원자재 시장과 국가 권력의 결탁, 손쉽게 벌어들인 돈으로 인해 만연하는 부정부패,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이든 기꺼이 용인하는사람들을 결합해 혼돈을 증폭한다. 

유전 지대가 있으면, 정부는 원유를 판 돈으로 군사력을 키워 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 반대로 과격분자들이 유전 지대를 장악하면 그들은 나라 경제를 거덜 내고 원유 수익을 전쟁으로 탕진할 수 있다. 원유 수출국에서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두 배 가량 높은데다 전쟁이 벌어지면 더 오래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30

나는 전쟁과 석유에 얽힌 이 이야기에서 또 하나의 반전을 마주했다. 알고리즘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원유 공급이 줄면서 유가가 상승한다는 일반적 통념에 따라 매매한다. 

그러나 라이스대학의 석유경제학자 마흐무드 엘가마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원유를 더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공급을 실제로 줄이는 일은 기반시설과 교역로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뿐이에요."

유전지대를 장악한 새 정부나 무장 조직에게는 그들의 이념이 무엇이든 그곳을 파괴하려 들 이유가 없었다.

"IS는 국가를 세우려 했고, 원유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들은 유전지대를 점령하더라도 원유 생산을 멈추지 않겠죠. IS가 원유 생산을 중단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였어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두고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실제로 알바그다디는 원유를 튀르키예로 빼돌려 세계 시장에 팔기 위해 이라크의 원유 기반시설을 장악하려 했다. 따라서 아즈완과 페슈메르가 군대가 IS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칼락의 정유소를 빼앗겼다 해도 전 세계 원유 공급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을 공산이 크다. 차이가 있다면 오일달러가 이라크의 쿠르디스탄이 아니라 IS로 흘러간다는 점뿐이었을 것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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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심장부


1998년 그린스펀이 브룩슬리 본 앞에서 가르치듯 설명한 대로 파생상품 가격은 본래 ‘기초자산 시장‘의 가격에 대응해야 했다. 모기지 보험 파생상품은 실제 주택을 사고파는 현실의 부동산 사업에 관한 정보를 종합해야 했다. 그러나 2000년 상품선물 현대화법이 통과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관계가 역전되었다. 

퀀트 공식은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주택 소유자들의 부도 위험이 줄어든다고 계산했고, 이에 따라 신용파생상품의 가격도 낮아졌다. 그러자 은행은 이를 모기지를 더 발행해도 문제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퀀트 공식은 주택시장 전체를 고려해 위험을 계산했으므로 은행과 신용평가기관들은 AAA등급으로 평가되는 모기지 묶음에 구체적으로 어떤 모기지가 들어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혹은 그렇게 믿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지름길을 앞에 둔 은행들이 그 ‘정보‘에 의문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은행이 버는 수익 대부분이 모기지를 발행하고 이를 유가증권으로 묶어 연기금과 다른 은행에 판매하는 데서 나왔다. 그리고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빌려줄수록 주택 가격이 상승했고, 퀀트 모형은 사람들이 모기지를 상환하지 못할 위험이 낮아진다고 평가했다. 

퀀트들이 사용한 모형은 부정확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위험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시장에 모기지가 더 안전해진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퀀트 모형이 보낸 신호는 주택 시장을 조정해 거품을 키우는 되먹임 고리를 만들었고, 부동산 건설업계는 호황을 맞았다.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고, 마법이 현실 세계를 지배하고 재정리했다. 모두 정보 비대칭과 기만적인 가격을 만든 잘못된 공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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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선물시장의 등장과 규제


마법 경제는 곧 실물 경제를 훌쩍 넘어섰다. 1875년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은 시카고 곡물 산업의 실물 시장 규모를 2억 달러로 파생상품 시장 규모를 그 열 배에 달하는 20억 달러로 추산했다. 투기자들은 위험 프리미엄에 만족하지 않고 선물 가격에 막대한 금액을 베팅했다. 파생상품이라는 마법의 서류가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밀이나 돼지고기에 투기하기란 엄두도 못 낼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실물 상품을 투기하려면 창고를 빌리고 상품을 인도받아 저장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투기자는 선물을 매입하기만 하면 되었다. 실물경제와 마법경제를 나누는 벽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투기자들은 밀, 귀리, 돼지고기 등의 공급을 독점해 실물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선물 가격을 조작하려 했다. 파생상품시장에서 벌어지는 투기가 실물 시장을 바꾸고있었다.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것이다. **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출렁였고, 시장은 다시 혼돈에 빠졌다. 결국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이 시장을 규제하고 투기를 제한하자 비로소 질서가 찾아왔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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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과 물가 정보

신뢰할 수 있는 전신 서비스가 미국 유럽 인도 호주 및 일본을 연결한 것은 1860년대 1870년대가 되어서였다 전시는 실시간으로 다른 나라의 물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수출 업자들은 더 이상 불확실한 상태로 상품을 선적할 필요가 없었다. 수출할 물건을 실을 선박이 닻을올리기 직전까지 수출업자는 선적 목적지를 변경하거나, 해외 고객에게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거나, 가격이 오르기를 희망하며 상품을창고로 다시 옮길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수입업자는 가격과 공급동향에 대한 최신 정보를 기반으로 약정을 하고 앤트워프에서 판매할 밀을 러시아, 호주, 아르헨티나 또는 북미 가운데 어느 곳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지를 마지막 순간에 결정할 수 있게 됐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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