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 남한산성, pp 31-32>

 

 

1636년 12월 말의 병자호란으로 인해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그날의 겨울도

무지 추웠나보다.

 

김훈의 필치로 그려낸 그날의 추위가 가슴으로 느껴지네.

일본에 일사늑약을 했던 굴욕의 날처럼,

민족적 수치의 삼전도의 굴욕의 날이 되었던 당시의 얘기를 그려낸

소설 '남한산성'의 첫장을 펼쳐서

아내에게 읽어주다가 들고 나왔는데,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책장을 넘겨본다.

 

김훈의 책은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봐야하는 책이네.

 

아래 사진은 삼전도에 세워진 '대청황제공덕비'와 눈내린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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