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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휘모리 장단으로 써 내려갔다는 책.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터에서의 군인의 필체로
이순신에 이입되어 써 내려간 책.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로 속도감있게 진행되는 '칼의 노래'를 요즘 붙들고 있다.
책의 앞에 나오는 장군의 붉은 옷입은 영정과 '한번 휘둘러 쓸어버린,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라는 글이 쓰여있다는 장군의 검이
소설을 접하는 독자인 나에게 경건함으로 소설에 입장케 하더라.
난중일기를 읽어본 적도 없고,
임진왜란 당시의 장군의 전쟁을 꼼꼼이 들여다 본 적도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보게 되었다.
이분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한일합방 이전에 이미 400년전 일본의 먹잇감이 되었겠지.
지금 모두 일본말 쓰고 다니고 있을 거란 생각...
'필생즉사, 생즉필사'의 휘호처럼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소설의 중반부 명량해전 이후 부분을 읽는데, 장군은 자신의 죽을 땅을 찾고 계셨다.
선조에게 죽든 적에게 죽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
책 제목이 칼의 노래이지만, 칼의 울음이 맞을 듯 싶다.
명량의 영화가 이순신의 성웅다움을 돋보여주었다면,
칼의 노래 소설은 이순신의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라님에게 바치는 충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을...
책을 보면서 김훈 작가의 필치가 돋보이는 몇몇 글이 있어서 여기에 옮겨본다.
매일 매일 밀려드는 일들 속에서
이미 했던 일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정말 장군이 싸운 싸움처럼 무효이다.
그리고 새로운 싸움만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이 속에서 나도 죽음과 가까와가고 있고, 내 근육도 단련되어 가는 듯하다.
이제 칼의 노래 후반부의 책장을 차근차근 넘겨보련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p. 26)
"나의 전쟁은 나의 죽음으로써 나의 생애에서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중략) 서울에는 봄비가 내렸고 한강 밤섬에는 안개 속에서 살구꽃이 피어 있었다." (p. 32)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p. 50)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p. 66)
"(베어야 하나?)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우는 칼의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p. 73)
"(아직은 아니다.) 내 속에서 우는 칼을 나는 달랬다. 칼은 좀처럼 달래지지 않았다." (p. 74)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그리고 나는 한 줄을 더 써서 글을 마쳤다.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p. 90)
"나의 사지(死地)는 내 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잘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어서 끝은 보이지 않았다. 물결은 우우우 울며 내달았고, 이물은 솟고 또 곤두박질쳤다." (p. 104)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철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p. 141)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p. 151)
"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아무런 은총도 없는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p. 162)
"우수영을 버려야 한다는 절박한 울림에 귀 기울이면서 나는 죽어야 할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답답함에 조바심쳤다." (p. 163)
"임진년의 싸움은 힘겨웠고 정유년의 싸움은 다급했다. (중략)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p.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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