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플이 살해당하고 어린 딸만 남겨졌다.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 하자 백인 아버지가 흑인 아버지에게 우리가 직접 범인을 잡자고 한다. 두 아버지 모두 전과자. 흑인 아버지는 범죄에서 완전히 손을 씻고 성실하게 자기 사업을 하고 있기에 거절한다. 아들이 남긴 딸을 잘 키우는데 집중하겠다고. 하지만 아들의 묘지가 훼손된 사건이 벌어지자 분노에 찬 아버지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 이후 일어나는 사건들, 배후에 숨어있는 진짜 범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스릴러의 공식대로 진행된다. 너무 예상대로라 살짝 당황했을 정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혼자서 몇십 명을 가뿐히 처리하는 신체적 능력이 출중한 주인공이 나오고 폭력과 피가 난무한다. 중간 중간 구멍들이나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도 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고 나쁘지 않은 스릴러 정도?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스릴러 부분이 아니다.

살해당한 커플은 흑백의 게이 커플이다. 두 아버지는 아들이 결혼하여 아이까지 가졌는데도 아들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내고 아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들이 죽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사실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닌데 왜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었는지 면도날 같은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거기에 별 생각없이 농담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곤 하는 백인 아버지도 점차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배우고 고쳐나간다.


어찌 보면 스릴러의 탈을 쓴, 다 큰 어른들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아집을 깨기는 정말 어렵다. 이 아버지들처럼 자기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정도의 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그들의 뒤늦은 후회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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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2-10 0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인종 문제를 어느 정도는 다룰 것 같은데요. 한 편으로는 아들이 결혼까지 하고 애까지 있으면 받아들이기가 힘들지 싶어요. 아들이 이혼하고 애인을 선택한 거잖아요. 여자 입장에서는 화 날 것 같은. 어느 날 남편이 나 다른 사람 생겼어, 이혼 해줘!! 이런 말도 충격인데.. 상대가 남자라면.. 넘 감정이입해서 썼나요!!!

다락방 2022-02-10 11:54   좋아요 2 | URL
제 생각엔 입양이나 대리모를 통한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리고 가급적 입양이길 바랍니다.

기억의집 2022-02-10 12:0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차라리 입양이면 맘이 덜 아프겠어요!!! 남자 너무해!!!

psyche 2022-02-10 14:04   좋아요 1 | URL
앗 제가 헷갈리게 썼나요?
둘은 처음부터 연인이었고 결혼해서 대리모로 딸을 낳았습니다.
부부라고 쓰면 남자 여자 커플을 생각할 거 같아서 부부라는 말을 안 쓴 건데...

아버지들 둘 다 아들이 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그런 모습이 보일 때는 때리거나 화내고 나중에 아들들이 커서 커밍 아웃 한 것도 무시하고 화내고 그랬죠.

psyche 2022-02-10 14:05   좋아요 1 | URL
다락방 님과 기억의집 님의 바람과는 반대로 대리모였습니다.

mini74 2022-02-10 1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데 번역본이 없네요 ㅠㅠ 검은 황무지 한 권 번역되어 있군요. 스티븐 킹의 극찬이라 ~ 일단 검은 황무지라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 프쉬케님 엠군 이제 쌩쌩한가요 ~~

psyche 2022-02-10 14:07   좋아요 2 | URL
음.... 스릴러로 본다면 사실 평이한 정도입니다. 제가 스릴러에는 좀 까탈스러워서 구멍이 있거나 앞이 뻔히 보이는 상황을 무척 거슬러 하기 때문에요. 그런 부분이 좀 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건 좋았어요. 그래서 책에 대한 평가가 좀 올라갔죠, ㅎ

엠군은 격리 해제 후 연락이 없으셔서.... 엄마의 톡에 가끔 busy 라고만 남기시는 걸 보니 쌩쌩한 거 같네요.

기억의집 2022-02-10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킹옹 서평 너무 남발해서 … ㅎㅎ 미스터리 소설보면 킹옹이 다 좋다고 써 있더라구요!!!

psyche 2022-02-10 14: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스티븐 킹이 칭찬했다는 부분은 거릅니다.
본인은 그렇게 글을 잘 쓰면서 남의 글에는 한없이 관대하신지 막 다 좋다고 하더라고요. ㅎㅎ

라로 2022-02-10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면도날 눈물이라니,, 제목이 참 거시기,,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저는 요즘 주위에서 동성커플을 너무 많이 보게 되어 그런가 이런 이야기가 생경해요. 하지만, 최근에 읽고 있는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를 보니까 면도날 눈물,,,이 이해가 가요,, 평생 그에게 남은 엄마의 행동과 말이 남긴 트라우마는 분명 면도날로 찟기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었겠다고...

psyche 2022-02-11 03:29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배경이 버지니아 남쪽이라 아직도 보수적인 거 같더라고요. 아들이 죽어 이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아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고통이 면도날로 베는 아픔보다 더 하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2022-02-12 0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든 늦지 않게 알면 좋을 텐데, 사람은 어리석어서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희선

psyche 2022-02-12 08:00   좋아요 1 | URL
희선님 말씀이 맞아요. 인간이 어리석어서 항상 늦은 다음에 깨닫고 후회하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