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 다니엘 포르> 유쾌한 블랙 코미디? 음...

 

 

 

 

 

  나는 항상 화제였던 소설을 뒤늦게 보곤 한다. 이 책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여러개 보다가 제목만 보고 흥미가 생겼었는데, 우연히 이웃님께 받게 되었던 책이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언뜻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소설일 것 같지만 형식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정말로, 책의 제목처럼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가 등장한다는 것. (비록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거의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를 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 번역가의 말) 참 새롭고 기발한 사실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애인에게 '겨드랑이 좀 닦아라!'는 말을 듣고 차인 후 길 위에서 사고를 목격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나서 자그마치 한 페이지에 거의 하나씩 죽음을 만나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실 말만 죽음이지, 실질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죽음의 대상들이 등장 한다. 주위의 사람들, 유명인, 가족, 동물, 망가진 전화기.. 처럼. 그러던 어느날, 유명 소설가를 꿈꾸는 이 주인공이 이렇게 죽음의 소식들로 떠들썩한 생활 속에서 역시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인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군다나 그 사건에 말려들기까지, 도대체 이 사람 어떻게 되는 걸까?

 

  현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 소설은 죽음이란 단어로 가득차있지만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 죽음의 대상들 모두가 그리 무섭고 암울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치를 이용해서 블랙 코미디적인 표현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정서상 외국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잘 이해하기 힘들긴 하다. 가끔가다 나오는 어이없는 말들에 피식하고 웃게 하는 이것들이 작가가 의도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게 현실.. 독특하고 재밌는 문장이 가득차있는데도 가끔 흐름을 잃기도 했다는 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범인의 모습은 좀 웃겼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책장을 덮었다.

 

 

  내게 친구가 있던 시절, 한 친구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난 내 주위에서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으면 불안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최근에 나를 둘러싸고 연이어 일어나는 일들과 그에 수반된 감정의 기복에 비추어 볼 때 난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내 인생에 불운이 끼어들 틈은 더이상 없을 터였다. (41p)

 

  이제 나는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다. 쿨함 그 자체였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곧 삶이고, 삶은 구속되거나 제어당하는 일 없이 우리 모두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뒷받침하는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혼돈은 삶의 원천이며 질서는 습관을 형성할 뿐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냐고? 인용문 사전을 참고하기를! (56p)

 

 "어쨌든 참 고마워!"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역정을 냈다. 마치 나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했던 것처럼.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빠른 속도로 물이 차는 욕조를 보는 듯했다. 욕조는 나를, 물은 죄의식을 의미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84p)

 

  내 삶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해체 과정이었다. 이 나이에 현실을 외면한다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 어린아이같은 순진함,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대개들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왜 "절망적으로"와 같은 진부한 문구가 슬픔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표현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런 걸 정말로 느낀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내게 속했던 그 무언가를 죽여버린 건 나일까? 혹은 내 일부분이 자살하듯 그 무엇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일까? 어느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샴고양이 시체처럼 내가 끌고 다니던 내 안에 어떤 것이 죽어버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133p)

+ 이 책은 전통 추리물 (애드거 앨런 포)을 패러디한 소설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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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로망스
김민관 지음 / 고려의학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만약'이라는 상상, 즐거운 상상 <슈퍼맨 로망스 - 김민관>

 

 

  '만약 당신이 슈퍼맨을 동경한다면'이란 물음으로 시작하는 <슈퍼맨 로망스>. 요즘 슈퍼맨이나 히어로, 동화 속 누군가를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머리 속에는 스트레스와 해야할 일들이 가득차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만약'이란 가정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게 할 것만 같다.

 

  실제로 작가는 난처한 상황이 되면 '만약에'라는 공상을 하다가 공상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될 정도로 습관이 되버렸다고.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에는 신기하고 터무니없는 상상들로 시작한 귀여운 이야기들이 많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존재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코를 자판기에서 뽑아서 붙일 수 있다면, 짝 없는 양말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한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한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따스하고 유쾌해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야기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만약'이라는 상상이 얼마나 즐거운지 생각하게 된다. 친구랑 웃기는 상상을 이야기 하면서 픽 하고 웃을때처럼 말이다.

 

  마치 동화 속 이야기를 생각할 때 처럼, 우리 안에 숨겨져있던 동심을 슬쩍슬쩍 끄집어내는 책. 각각의 짧지만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들에 '어, 이런 상상도 할 수 있구나'하고 놀라게 하는 책. 한번은 생각해본 상상이 이야기로 펼쳐진 모습을 보고 흐뭇해지는 책, <슈퍼맨 로망스>. 이 책을 만들어낸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나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이유를 통해 할 일 없이 놀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이 무심코 지나쳐버린 기억들이 너무도 많아 이제는 자신들을 기억해달라며 그 주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마치 어머니의 애정을 바라는 투정 가득한 아이처럼. (36p)

 

  "이모 하늘에 달을 켜졌어요." 조카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려다. 그리고 나는 달이 켜졌다는 아이의 말이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을 하늘에 뜬 달에 갖다 붙인 표현임을 이해했다. 정확한 표현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하지만 네 살 아이의 순수한 동심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54p)

 

  혜성이 사라진다. 혜성은 그 커다란 불꽃을 몸에 휘감고 우주 너머로 빛을 내며 사라졌다. 그런데 영희의 마음에 불쑥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건 자신이 가장 처음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설레는 감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느낌. 영희는 가슴 속에 그날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132p)

 

  궁상맞은 인생.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분명 어릴 적 나는 슈퍼맨이었는데 부러울 거 하나 없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는데. 여전히 슈퍼맨인 지금 무엇이 변했기에 인생이 이토록 힘겨워졌을까. 나는 이 날도 이런저런 궁상을 떨며 슈퍼에 앉아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252p)

 

 


 

작가님에게 선물받은 사인본 <슈퍼맨 로망스>. 덕분에 읽으면서 재밌게, 휴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났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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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4월, 눈에 띄는 신간 에세이 [by.리니Rinny]

 

 

그렇게 바쁜 것 같지도 않은데 왠지 바쁘고 허하고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슬럼프의 달, 3월이 드디어 지났다! 이제 점차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길 바랄뿐... 책을 읽는 건 아직도 즐기고 있지만 쓰는 것은 조금씩 매력을 못느끼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다시 마음을 잡아야 할 시간. 이번 달의 신간 에세이는 유달리 갯수가 많아, 게다가 끌리는 것들도 많아서 뭘 골라야할지 고민하며 떨고 떨어낸 뒤에 남은 책들. 개인적인 느낌만으로 정해버렸다. (어, 좋아하는 작가에 끌리기도 했지만..^^;) 이번 달의 신간 에세이는 제목이 참, 다 좋다.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지은이) | 봄아필 | 2013-03-25 

   삶을 바꾸는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돌리다.

 

 사소한 일상, 즉 사생활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에게 다독가로 유명한 정혜윤 PD가 붙인 이름 '천재'. 일상이 변화하면 곧 인생이, 삶이 변화하게 된다. 나의 삶의 소중한 순간들에 주목하게 하는 이 책은 정혜윤 PD 혼자만이 아니라 변영주 감독, 윤태호 작가등 여러 분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삶의 천재가 되고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법, 보고 읽고 듣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읽어내보자.

 

 

 

 

 

 

<구석진 곳의 풍경> 온다 리쿠 (지은이) | 권남희 (옮긴이) | 책읽는수요일 | 2013-03-26  세계의 구석진 곳을 기록한 온다리쿠의 트래블노트

 

  사실, 나는 온다 리쿠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다. 오로지 유명세에 의해서 클릭하게 된 이 책의 페이지였는데 제목과 목차를 보고는 왠지 지나치기 힘들어지는 기대감때문에 문득 멈춰버렸다. 여행의 구석진 곳, 예를 들면 체코 만화경이라든지, 국제 도서전이라든지, 게다가 한국의 풍경도 그리고 있다니! 작가의 애정이 오롯이 들어간 그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지막히 흘러나올 것 같은 에세이. 온다 리쿠는 소설의 글감을 여행을 통해 찾는다는데, 이거 읽고 소설 한번 읽어볼까?!

 

 

 

 

 

  <문학 속에 핀 꽃들> 김민철 (지은이) | 샘터사 | 2013-03-22

  우리가 사랑한 문학 문학이 사랑한 꽃이야기

 

 우리 문학 속에 꽃들이 얼마나 많이 피어있을까? 왠지 수도 없이 많은 책들에 그려져있을 것만 같은데,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꽃'이라 지나치기가 일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니, 맙소사 이런 귀여운 이름들을 가진 꽃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런 꽃들이 내가 읽은 책에 등장했을 줄은 몰랐다... 여튼 참 예쁜 책이다. 페이지 곳곳 예쁜 꽃들이 하나하나 피어있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참, 화단 가꾸기를 좋아하는 우리엄마도 무지 좋아하겠다.

 

 

 

 

 

  <책인시공> 정수복 (지은이) | 문학동네 | 2013-03-08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책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독서의 시간, 독서의 공간, 그리고 어떤 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언제나 책과 함께 산책하는 작가 정수복은 '책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책과 관계된, 책이 도우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펴낸다. 세상에 있는 책들을 센다면 몇권이나 될까? 아마 지구에 있는 사람들 수의 몇백배는 될까? 그 무수한 갯수의 책들과 함께 하는 일상은 상상만해도 다양하고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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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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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밀란 쿤데라 파헤치기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이라는 제목과 작가인 밀란 쿤데라를 매치해보았을 때 떠올랐던 것은 이 책이 그가 소설을 어떻게 구성해나가는지, 즉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 하지만 이 에세이는 어떻게 쓰는가보다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에 초점을 깊숙이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도 이런 착각에 있어서는 제목의 '기술'이란 단어에 내가 얽매여 상상의 나래를 펼친것일지도.

 

   <소설의 기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들은 문학작품이나 이 시대의 소설들에 대한 그의 견해와 쿤데라의 어시스턴트이자 평론가인 살몽과의 대담, 그리고 소설에 관한 쿤데라의 미학의 열쇠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 속에는 쿤데라 자신의 작품의 언급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문학작품들도 줄곧 등장하는데 그것들을 통해 쿤데라가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가 선호하는 작가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있으며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헤르만 브로흐 이 세 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광적일 정도로 몰두해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에 대한 단상의 챕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쿤데라 마니아라면 그의 소설을 다시금 하나씩 떠올려 행복을 맛볼 정도로 중요한 그의 키워드가 나열되어있다. 가벼움, 소설, 소설가, 키치, 젊음.. 등.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쿤데라의 문학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는 책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을 읽지 못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사전지식이 없는데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단지 많지 않았을뿐.... ^^; 만약 그의 작품을 기억속에 진하게 남겨둔 독자라면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아주 감사한 부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에 있어서 그 작가의 작품에의 언급은 독자들에게는 통쾌한 즐거움이 되는 법이니까.) 책 소개에 의하면 '쿤데라의 소설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이 책을 정의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쿤데라의 소설을 모두 읽고 마지막에 펼쳐볼 '쿤데라 문학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식을 먼저 얻길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겠다.) 그러나 만약 소설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작가의 견해가 궁금하다면, 혹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는 기술'이 필요하다면 순서는 굳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정신은 복잡함의 정신이다. 모든 소설은 독자들에게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라고 말한다. 소설의 영원한 진실은 이것이지만, 묻기도 전에 존재하면서 물음 자체를 없애 버리는 단순하고 성급한 대답들의 시끄러움때문에 점점 들리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정신에서 옳은 것은 안나나 카레리나 중 한 사람 뿐이다. 앎의 어려움과 잡을 수 없는 진실의 어려움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하는 세르반테스의 원숙한 지혜는 거추장스럽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34p)

 

  모든 시대의 모든 소설은 자아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당신이 어떤 상상의 존재, 인물을 창조해내는 순간부터 당신은 저절로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의해 포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죠. 소설 자체가 지닌 근본적인 물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소설의 역사에서 상이한 경향과 상이한 시대가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이 물음에 대한 상이한 대답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p)

 

  소설의 인물은 살아 있는 존재의 모방이 아니에요. 상상적 존재지요. 실험적 자아고요. 이렇게 하여 소설은 그 시작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돈키호테를 실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는 무척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 기억에서 그보다 더 생생한 인물이 누가 있습니까? 제 말뜻을 잘 이해하세요. 저는 독자와 그들이 지닌 욕망, 즉 소설의 상상적 세계에 실려 간혹 그것을 실제와 혼동하고 싶은, 소박한 만큼이나 정당한 욕망을 비웃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에 심리적 리얼리즘의 기법이 필수불가결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54p)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즉 소설의 몸으로 들어오면 성찰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소설 바깥에서 사람들은 확인의 영역에 있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 확신합니다. 경찰이건 철학자건 수위건 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놀이와 가설의 영역이거든요. 그러니까 소설적 성찰이란 본질적이고 의문적이고 가설적인 겁니다. (116p)

 

  저는 항상 소설을 두가지 차원에서 구성합니다. 첫 번째 차원에서는 소설적 이야기를 구성하죠. 저는 그 위에다 주제를 전개합니다. 주제는 소설적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에 의해 끊임없이 가공됩니다. 소설이 주제를 버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만족해 버리면 싱거워지고 맙니다. 반대로 어떤 주제는 이야기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어요. 이러한 주제의 취급 방식을 저는 일탈이라고 부릅니다. 이 일탈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잠깐 동안 소설의 이야기를 포기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에 대한 생각은 모두 일탈이죠. 소설의 이야기를 버리고 주제(키치)를 직접 공략하는 겁니다. (123p)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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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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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물결을 일으켜라 <하워드의 선물 - 에릭 시노웨이, 메릴 미도우>

 

 

 

 

 

 

   '너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단다. 단, 한번에 되지는 않을거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최고의 교수라고 불리우는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의 어머니가 그에게 한 말이다. '당장의 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어느 곳에 쏟아야할지 판단하며 살아가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하워드의 인생철학과 가장 맞아떨어지는 말이라고 느꼈던 부분이다. 단순한 희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무턱대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워드의 선물>은 저자인 에릭 시노웨이가 스승인 '하워드'에게 자기 혹은 주변 사람들의 고민들을 그에게 털어놓으면서 고민상담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워드 교수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인해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우연히, 정말 운좋게 가까이 있던 제세동기를 통해 깨어날 수 있었다. 제자인 에릭은 묻는다. "쓰러지셨을 때 아무런 후회도 들지 않으셨나요? 살아난다면 이런 것들은 완전히 바꿔서 살아봐야지 하는 것들 말이에요." 그리고 하워드 교수는 대답한다. '내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내가 했던 일이 후회되는 게 한 가지도 없다'고. 그리고 에릭은 깨닫는다. 정작 후회되는 인생을 살았던 건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하워드의 지혜를 간직하기 위한 <하워드의 선물>집필을 시작한다. 에릭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고민들의 해결책을 하워드에게 묻는다. 그 고민들은 모두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고민들, 그리고 더 좁게 들어간다면 대체적으로 미래를 위한 일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워드 교수가 책의 첫 머리에서 전환점을 맞았듯, 그가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 또한 전환점이다. 전환점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의미없는 직선에서 생동감있는 곡선으로 진행되게 된다. 이 전환점은 인생 곳곳에 숨겨져있다.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선 삶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에 확실한 성공이나 실패는 없다. 성공과 실패, 그것은 그들을 인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 전환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직접 조각할 수 있는 인생의 지혜가 <하워드의 선물>에 담겨져 있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 때문에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가는 것과 같아. 그럼 어떻게 해야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다행히 세상은 구석구석에 전환점이라는 의미 있는 지표들을 숨겨놨어. 다만 사람들이 그걸 못 보고 지나쳐서 문제지. 심지어 자신이 전환점에 서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해. 설령 알아챈다 하더라도 건설적인 고민 없이 단순하게 반응할 뿐이고. 이게 다 전환점을 단지 '우연히 일어난 일'로만 여기기 때문이야. 그러니 자기 인생인데도 마치 구경꾼처럼 행동할 수밖에. (31p)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네.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나? (56p)

 

  성공한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그들의 실패담에 대해서 물어보게. 그러면 다들 이렇게 대답할 거야. '그건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실패였다'라고. 똑같은 실패라도 쓸모 있는 실패가 있고 쓸모없는 실패가 있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오직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에게만 달려 있지. (102p) 

가득 채워진 상태가 궁극적인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돼. 세상만사는 항상 밀물과 썰물이 있는 법이니까. 꽃이 피면 반드시 지는 것처럼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가득 찬 항아리가 아니라 그 속의 비어 있는 여백이라고 봐야 해. 그래서 훌륭한 건축가는 여백에 대한 계획부터 세우고, 작곡가는 쉼표의 쓰임새를 먼저 고민하는 거야. 나 역시 항상 100퍼센트 행복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 다만 매일매일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행복하길 바랄 뿐이지. (117p)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엄청난 시간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 노력의 오류에 빠지게 되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아주 높게 잡아놓고는 "이거야말로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야"라고 외치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를 '불가능은 없다, 할 수 있다'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물론 근면하고 성실한 정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핵심역량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일반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눈을 크게 뜨고 다각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62p)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라네. 오늘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전진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92p)

 

이제 삶의 물결을 일으켜보자,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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