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조에서 어머니의 노동이라고 간주되는 육아와 가사는 문화적으로 비하되고 경제적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일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미숙련 노동이라는 인식은 공적 영역에도 확장되어 노동 시장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와 연결된다. 노동현장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본래 임무 외에 추가된 성역할 노동을 하면서 아니, 그러한 이중 노동을 하기 '때문에' 저임금이 합리화된다.-59쪽
삼십대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것들? 말해 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십대와 이십대엔 결코 가능하지 않는 것들. 그것은 절제, 혹은 절제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십대엔 자기 욕망이 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인정해야 할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문제들이 쓸데없이 커진다.-132쪽
무릇 소설가란 이름의 인종은, 학교 선생이나 중처럼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을 테마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홀가분함 덕분에, 즉 무절제한 사고에 브레이크를 걸 실질적인 체험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중요한 테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머지 전혀 실태를 모르는 구석이 있다. 특히 오랜 세월 작가생활을 하거나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술가라고 믿는 자들 중에 많은 것 같다.-34쪽
내게 소설이란 정말 무엇일까. 간혹 그런 물음을 받을 때면 내게 소설이란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짝사랑, 지독한 연애'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소설쓰기란 되풀이 겪어도 면역과 내성이 생기지 않는 점, 그리고 그 가슴 뜀과 온갖 갈망과 공상, 기진맥진과 지리멸렬, 이윽고 쓰디쓴 환멸에 이르기까지의 연애의 구조와 신통히도 닮아 있다. 똑같이 눈먼 열정의 소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136쪽
로스트로포비치의 터프한 첼로의 활 시위는 마치 노련한 검객이 한을 품은 비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폐부까지 진하게 들어오는 슬픔의 이미지는 나를 완전히 휘저어 놓았다. 그때까지 대편성의 화려한 관현악곡을 주로 들었던 나에게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실내악의 진미를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다. 그동안 실내악이라면 모두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종달새>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것뿐인 줄 알았다.그러나 한 대의 첼로와 피아노는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호소력있게 슬픔을 드러내고, 때로는 눈물을 삼키고, 때로는 통곡하는 것이었다.-1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