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로포비치의 터프한 첼로의 활 시위는 마치 노련한 검객이 한을 품은 비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폐부까지 진하게 들어오는 슬픔의 이미지는 나를 완전히 휘저어 놓았다. 그때까지 대편성의 화려한 관현악곡을 주로 들었던 나에게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실내악의 진미를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다. 그동안 실내악이라면 모두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종달새>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것뿐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대의 첼로와 피아노는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호소력있게 슬픔을 드러내고, 때로는 눈물을 삼키고, 때로는 통곡하는 것이었다.-1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