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
션판 지음, 이상원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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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션판'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인이다. 실제로 홍위병으로 혁명에 가담했다가 이내 환멸을 느끼고 고군분투하여 비로소 자유의 땅을 밟게 된다. 선한 인상의 저자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토로해 나갈지 자못 궁금했다. 400페이지를 조금 넘긴 분량을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치 한편의 슬픈 영화를 볼 때 느낄 수 있었던 어떤 연민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 남부의 어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그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난생 처음으로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여정이 그저 개인의 역사로 치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슬픔으로 얼룩진 역사를 온몸으로 이겨낸 그를 만날 수 있음에 '자유'의 가치를 되뇌여 볼 수 있었다.

붉은색 표지가 말해주듯, 책의 내용은 암울하기만 하다. 어디에도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는 중국의 암흑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바로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살아왔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없이 희생 당했는지, 지극한 슬픔을 누르고 저자는 당시 상황과 내면 심리를 침착하게 기술해 나간다.

나는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문화혁명에는 실제로 가치 있는 목표란 없다는 것, 그리고 숨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한때 내가 그랬듯 혼란에 빠져 망치나 우리 아버지 같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도대체 자신을 신처럼 떠받드는 추종자들을 왜 희생시켜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의미 없는 혁명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여전히 열심히 혁명에 참여했고 열성적인 혁명가 노릇을 해야 했다. - 본문 중에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떤 것이 악인지, 도무지 구별할 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선이 되었다가 악이 되기도 하는 모호하고 불투명한 그 시기를 사람들이 어찌 견뎌냈는지 마음이 서늘하기만 했다.

다음은 션판이 어린 나이에 혁명 농민가 되어 시골 마을에 내려가 험란한 생활을 회고하는 글이다.

<2주 동안 나는 기계처럼 일했다. 너무도 피곤해 밤이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젖어서 냄새나는 옷도, 어깨와 등의 통증도, 물소의 코골이도, 초록 올리브의 잠꼬대도, 골초 악마의 담배 연기도 느껴지지 못했다. 단 한 가지 내 잠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새벽녘에 귀뚜라미 아저씨가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 2주가 끝나가면서 이미 나는 그 마을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하겠다가고 맹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곳에서 평생을 보낼 수는 없었다. 위대한 지도자의 명령이든 아니든 간에 나는 혁명 농민으로는 단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홍위병>은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인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이 주어져 있는 이 자유를…. 책을 읽으며 문득 조지 오웰의 <1984>가 생각나기도 했다. 누군가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해야 한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지나온 삶의 편린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고스란히 재생해 낼 수 있었을까. 아직도 가끔씩 그 시절의 악몽을 꾼다는 저자가 안쓰러우면서도 놀라울 만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우러르게 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하수구에 빠져 살지만 그래도 몇몇은 별을 올려다본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그 몇몇에 속했던 사람 가운데 한명이 션판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전해듣게 된 '문화대혁명'은 중국 역사에 다시 없을 아픔으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역사였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그 아픔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 션판이 있기에 중국의 아픈 역사를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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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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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한 일간지의 주말 코너 "아깝다, 이책"에서 <사랑, 그 환상의 물매>를 처음 보았다. "아깝다, 이책"은 출판사 대표나 편집장이 자신의 출판사에서 발행된 수많은 책 가운데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책을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였다.
 
영화든 책이든 제목을 잘 정해야 흥행 가두에 오르기 쉬울 것이다. 물론 이 책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의 제목에 '혹'해서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었고, 기회가 왔다. 인근 도서관에는 없어서 먼 곳까지 가서 빌려온 책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읽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비로소 만나게 된 책은 정갈한 검붉은색 표지를 갖고 있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과도 같다. 다만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동생이 오늘은 무슨 책을 빌려왔느냐며 책을 살핀다. 그러면서 "<사랑, 그 환상의 몰매>?"라고 읽는 바람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몰매'라고 해도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책은 어려웠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의 저서가 등장한다. 또한 다소 딱딱한 문체여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러나 곳곳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랑의 진실들이 숨어 있었다. 총 85꼭지로 구성되어 있는 책 가운데 퍽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을 발췌해 본다.

<나도 근년 들어 산행-설악 같은 험산은 아니었지만-중에 길을 잃고 밤길을 재촉한 적이 두어 번 있었는데, 그렇게 울라가고 싶어했던 산이 그 순간은 그렇게 내려가고 싶은 것으로 바뀐 사람을 두고, 참, 여러 감상이 많았지요. 아마, '교훈'이라고 할 것들은 필시 이런 궁색한 지경에서 생산되겠지요. 그리고 그만한 반전으로 우리를 당혹게 하는 것으로는 아마도 연정의 기복 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단상이 급박한 하산 중에서 일기도 했고요, 매사-사랑이든, 공부든, 산행이든-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일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자만이요 독선일 것도 같다는 생각에 잠시 골몰하기도 했지요.> -본문 중에서

이 말은 사랑이 감정의 오르막길로 오르게 했다가는 이내 내리막길로 접에 들게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예비하자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포터 식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실연이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실연이라는 사랑의 현실뿐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랑 중의 대부분이 실수였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오류를 알기 위해서라도 그 진실이 필요하다는 식의 역공은 삶에 닿지 못하는 하급의 논리학에 불과하다. 참여하는 것은 곧 실수하는 것이긴 하지만, 실수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문턱에도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는 그의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에서 "시간은 혹독하고, 청춘은 짧다. 그게 바로 미숙한 상태의 그대가 준비도 없이 어리석은 연애에 빠져들어야 할 충분한 이유"라고 했듯이 사랑은 사랑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기실 사랑의 상처는 영혼의 성장을 가져온다.

저자는 사랑에 대해 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든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없이 살기운 기이한, 인간종에 만연한 어느 '질병'의 초기증상. 없는 질병의 초기증상. 혹은 그 질병을 알리바이 삼아 계속되는 부재의 초기증상. 사랑은 형이상학이 없는 징조의 일종으로, 오직 그 징조만으로 꾸며지는 초기증상.> - 본문 중에서

예전의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젊은이들의 공유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성찰만이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사유한다면, 사랑 때문에 괴로운 순간이 얼마 간은 줄어들지 않을까 긍정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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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18년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
어수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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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현상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어서 취할 점과 배제할 부분이 상존합니다. 사물을 통일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인생관가 세계관을 너무 한편에 치우치지 말고 폭 넓고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곳곳에서 강조했거니와 래디컬하게, 하지만 익스트림하지 않게 세상을 대할 때 그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책 본문에서-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알게된 것은 소설가 공지영을 통해서였다. 창작과 비평 123호에 수록되었던 <네게 강 같은 평화 - 베를린 사람들 2>는 어수갑의 저서와 만나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해 준 셈이다. 소설에서 임수경의 방북을 주선했던 실제 주인공이 어수갑이었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던 공지영의 소설은 2004년 10월 <별들의 들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우연의 우연이 만들어냈다고 할까. 사실 창작과 비평 123호(2004/봄호)를 사게 된 것도 부록으로 제공되는 제2회 대산 대학문학상 수상 작품이 궁금해서였는데,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까지 만나게 되다니…. 운명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어쩌면 이렇게 명명하기를 좋아하는 나의 태도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 유학했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교수가 되었거나, 기업체의 간부가 되어 사회 각층에서 저마다 주류로 활동하고 있는데, 저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그저 짝사랑하며 이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해야했다.

그 가운데 6년 동안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았다는데 이 부분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아릿해왔다. 저자는 동양인에다가 남자여서 그 일을 하는데 무척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스스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나라에 들어와 산업 연수생이라 불리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러 그들은 가족을 떠나 먼 곳까지 왔는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지난 겨울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밤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주 노동자에 관심이 많은 후배를 따라 그곳에 가게 되었는데, 공간에 비해 사람수가 훨씬 많아서 제대로 공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들이 손수 만든 모국의 다양한 음식들.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들의 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했다. 모임을 다녀오면서 아무쪼록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법철학을 전공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몇 년 후 공부를 마치는 대로 다시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18년이 지나서야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마음 속에 담긴 회한을 무엇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자는 스스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성공을 위한 경영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패를 곱씹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에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나는 저자를 '살아있는 역사'라 부르고 싶다.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지만,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따라야 했고, 그 당사자 가운데 저자도 포함되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부채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독일에서의 생활, 대학시절의 생활 등이 기술되어 있는 이 책에는 불온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그대로 배어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 사랑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힘이라는 저자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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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 통신
요시토모 나라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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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표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표지에 있는 여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캐릭터는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다만 눈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이 캐릭터들은 귀엽지만, 그 느낌을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한순간 떠오르는 감상보다는 지속적인 감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미술에 문외한인 나의 눈을 통해서는 말이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미술 작품들과 글이 반반 정도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 요시토모의 글이 미술 작품에 밀리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라 요시토모는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저자가 살아온 도시의 지도는 물론이고, 장난기 넘치는 저자의 사진들, 그의 방을 그려놓은 평면도 또는 입체 도는 연필 자욱 그득하게 수작업을 해놓았는데, 그 정감 있는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나라 요시토모는 대학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다음 학기 학비를 유럽 여행에 투자한다. 1980년 스무 살 청년은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당시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향했는데,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첫 서양의 풍경에 가슴이 쿵쿵거리도록 흥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거리와 집과 거대한 빌보드 광고에 나그네의 마음은 뛰었다. 당연한 일인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모두 프랑스인에 프랑스 말로 얘기한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그러고 보니까 처음 도쿄에 왔을 때도 모두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표준말로 얘기하네! 하고 기가 죽은 기억이 있다. 하기야 시골 촌뜨기였으니까). 나는 파리 거리를 정처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지금은 죽고 없는 화가들을 생각했다. - 본문 중에서

그 후 저자는 유럽으로 여행을 몇 번 더 다녀온 후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오랜 유학 생활이 시작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만큼 그림을 그렸고,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애쓴 것 같다'는 저자는 그로부터 12년 후 순조로운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귀국하여 처음으로 가진 본격적인 전시회의 타이틀은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라고 지었다.

미술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마음의 기저에 바로 이러한 마음이 집약되어 있음을 독자들은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잊어도 나는 상관없다'는 말은 '당신과 나는 서로 잊을 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 말은 또 내가 지금까지 제작한 모든 작품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였으며, 반대로 작품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 작품이란 말을 지금까지의 체험이나 추억, 만난 사람들과 바꿔놓을 수도 있다. 꿈과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것이라는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태어난 것이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란 작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본문 중에서

미술관에 온 듯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저자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듣는 일도 매우 기꺼운 일이었다. 마치 더운 여름날 우연히 만난 소나기처럼 <작은별 통신>은 그렇게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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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선집 1
김종철 엮음 / 녹색평론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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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사람을 둘로 나누면 <녹색평론>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환경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음에 마음 든든하기도 했고, 나와 주위 사람들의 의식 세계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녹색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녹색평론선집1>은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재생지를 사용해서 너무나 가벼웠고, 표지에는 밑동이 잘린 고목에서 새싹이 돋는 그림이 실려 있었다. 표지 하나도 그냥 선택하지 않은 편집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창간호부터 통권 제6호까지 1년 동안 격월간 <녹색평론>에 수록된 글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선집으로 엮은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바쓸라프 하벨, 제레미 리프킨의 글이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역시 독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심어주고 있었다.

"라다크로 가기 전에 나는 진보의 방향은 어떻든 불가피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 결과, 나는 공원 한가운데로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2백 년이나 넘게 교회가 서 있던 자리에 강철과 유리로 된 은행건물이 세워지고, 구멍가게 대신 슈퍼마켓이 들어서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다크에서 얻은 나의 경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확신시켜 주었고, 나에게 엄청난 힘과 희망을 주었다." - <녹색평론선집1> 가운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글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다크로 가기 전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진보의 방향을 어떻든 불가피하다'는 생각 말이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우리가 소비하는 것 중 대부분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개인용 자동차 같은 것이다. 취직을 하면 으레 이동의 수단으로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동안 대중교통을 잘 이용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마당에 우리는 더 편리한 삶을 위해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등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하다.

"제3세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곡물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는 동안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심장마비와 뇌졸중과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질병들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쇠고기의 과잉소비에 있는 것이다. 해마다 동물성 지방의 소비에 관련된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최소한의 시간 안에 최적의 몸무게를 얻기 위해서 사육 관리자들은 성장촉진 호르몬과 사료첨가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약제들을 소들에게 투여한다. 단백동화 스테로이드제가 조그만 시한탄환의 형태로 동물들의 귀에 박힌다. 그러면 그 호르몬은 서서히 혈류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 간격으로 호르몬 수준을 증가시킨다. … 사육장에서 기르는 미국의 소 전체의 95퍼센트가 현재 성장촉진 호르몬을 투여 받고 있다." - <녹색평론선집1> 가운데 제레미 리프킨의 글 중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는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생활에서 환경을 위한 노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개개인의 잣대는 모두 다르겠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실천하고 하지 못하고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우리 세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 그 다음 위해서라도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평론선집1>과 같은 책은 소중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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