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 통신
요시토모 나라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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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표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표지에 있는 여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캐릭터는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다만 눈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이 캐릭터들은 귀엽지만, 그 느낌을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한순간 떠오르는 감상보다는 지속적인 감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미술에 문외한인 나의 눈을 통해서는 말이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미술 작품들과 글이 반반 정도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 요시토모의 글이 미술 작품에 밀리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라 요시토모는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저자가 살아온 도시의 지도는 물론이고, 장난기 넘치는 저자의 사진들, 그의 방을 그려놓은 평면도 또는 입체 도는 연필 자욱 그득하게 수작업을 해놓았는데, 그 정감 있는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나라 요시토모는 대학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다음 학기 학비를 유럽 여행에 투자한다. 1980년 스무 살 청년은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당시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향했는데,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첫 서양의 풍경에 가슴이 쿵쿵거리도록 흥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거리와 집과 거대한 빌보드 광고에 나그네의 마음은 뛰었다. 당연한 일인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모두 프랑스인에 프랑스 말로 얘기한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그러고 보니까 처음 도쿄에 왔을 때도 모두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표준말로 얘기하네! 하고 기가 죽은 기억이 있다. 하기야 시골 촌뜨기였으니까). 나는 파리 거리를 정처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지금은 죽고 없는 화가들을 생각했다. - 본문 중에서

그 후 저자는 유럽으로 여행을 몇 번 더 다녀온 후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오랜 유학 생활이 시작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만큼 그림을 그렸고,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애쓴 것 같다'는 저자는 그로부터 12년 후 순조로운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귀국하여 처음으로 가진 본격적인 전시회의 타이틀은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라고 지었다.

미술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마음의 기저에 바로 이러한 마음이 집약되어 있음을 독자들은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잊어도 나는 상관없다'는 말은 '당신과 나는 서로 잊을 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 말은 또 내가 지금까지 제작한 모든 작품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였으며, 반대로 작품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 작품이란 말을 지금까지의 체험이나 추억, 만난 사람들과 바꿔놓을 수도 있다. 꿈과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것이라는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태어난 것이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란 작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본문 중에서

미술관에 온 듯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저자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듣는 일도 매우 기꺼운 일이었다. 마치 더운 여름날 우연히 만난 소나기처럼 <작은별 통신>은 그렇게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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