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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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한 일간지의 주말 코너 "아깝다, 이책"에서 <사랑, 그 환상의 물매>를 처음 보았다. "아깝다, 이책"은 출판사 대표나 편집장이 자신의 출판사에서 발행된 수많은 책 가운데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책을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였다.
 
영화든 책이든 제목을 잘 정해야 흥행 가두에 오르기 쉬울 것이다. 물론 이 책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의 제목에 '혹'해서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었고, 기회가 왔다. 인근 도서관에는 없어서 먼 곳까지 가서 빌려온 책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읽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비로소 만나게 된 책은 정갈한 검붉은색 표지를 갖고 있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과도 같다. 다만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동생이 오늘은 무슨 책을 빌려왔느냐며 책을 살핀다. 그러면서 "<사랑, 그 환상의 몰매>?"라고 읽는 바람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몰매'라고 해도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책은 어려웠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의 저서가 등장한다. 또한 다소 딱딱한 문체여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러나 곳곳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랑의 진실들이 숨어 있었다. 총 85꼭지로 구성되어 있는 책 가운데 퍽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을 발췌해 본다.

<나도 근년 들어 산행-설악 같은 험산은 아니었지만-중에 길을 잃고 밤길을 재촉한 적이 두어 번 있었는데, 그렇게 울라가고 싶어했던 산이 그 순간은 그렇게 내려가고 싶은 것으로 바뀐 사람을 두고, 참, 여러 감상이 많았지요. 아마, '교훈'이라고 할 것들은 필시 이런 궁색한 지경에서 생산되겠지요. 그리고 그만한 반전으로 우리를 당혹게 하는 것으로는 아마도 연정의 기복 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단상이 급박한 하산 중에서 일기도 했고요, 매사-사랑이든, 공부든, 산행이든-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일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자만이요 독선일 것도 같다는 생각에 잠시 골몰하기도 했지요.> -본문 중에서

이 말은 사랑이 감정의 오르막길로 오르게 했다가는 이내 내리막길로 접에 들게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예비하자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포터 식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실연이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실연이라는 사랑의 현실뿐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랑 중의 대부분이 실수였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오류를 알기 위해서라도 그 진실이 필요하다는 식의 역공은 삶에 닿지 못하는 하급의 논리학에 불과하다. 참여하는 것은 곧 실수하는 것이긴 하지만, 실수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문턱에도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는 그의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에서 "시간은 혹독하고, 청춘은 짧다. 그게 바로 미숙한 상태의 그대가 준비도 없이 어리석은 연애에 빠져들어야 할 충분한 이유"라고 했듯이 사랑은 사랑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기실 사랑의 상처는 영혼의 성장을 가져온다.

저자는 사랑에 대해 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든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없이 살기운 기이한, 인간종에 만연한 어느 '질병'의 초기증상. 없는 질병의 초기증상. 혹은 그 질병을 알리바이 삼아 계속되는 부재의 초기증상. 사랑은 형이상학이 없는 징조의 일종으로, 오직 그 징조만으로 꾸며지는 초기증상.> - 본문 중에서

예전의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젊은이들의 공유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성찰만이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사유한다면, 사랑 때문에 괴로운 순간이 얼마 간은 줄어들지 않을까 긍정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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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18년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
어수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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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현상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어서 취할 점과 배제할 부분이 상존합니다. 사물을 통일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인생관가 세계관을 너무 한편에 치우치지 말고 폭 넓고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곳곳에서 강조했거니와 래디컬하게, 하지만 익스트림하지 않게 세상을 대할 때 그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책 본문에서-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알게된 것은 소설가 공지영을 통해서였다. 창작과 비평 123호에 수록되었던 <네게 강 같은 평화 - 베를린 사람들 2>는 어수갑의 저서와 만나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해 준 셈이다. 소설에서 임수경의 방북을 주선했던 실제 주인공이 어수갑이었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던 공지영의 소설은 2004년 10월 <별들의 들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우연의 우연이 만들어냈다고 할까. 사실 창작과 비평 123호(2004/봄호)를 사게 된 것도 부록으로 제공되는 제2회 대산 대학문학상 수상 작품이 궁금해서였는데,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까지 만나게 되다니…. 운명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어쩌면 이렇게 명명하기를 좋아하는 나의 태도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 유학했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교수가 되었거나, 기업체의 간부가 되어 사회 각층에서 저마다 주류로 활동하고 있는데, 저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그저 짝사랑하며 이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해야했다.

그 가운데 6년 동안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았다는데 이 부분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아릿해왔다. 저자는 동양인에다가 남자여서 그 일을 하는데 무척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스스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나라에 들어와 산업 연수생이라 불리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러 그들은 가족을 떠나 먼 곳까지 왔는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지난 겨울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밤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주 노동자에 관심이 많은 후배를 따라 그곳에 가게 되었는데, 공간에 비해 사람수가 훨씬 많아서 제대로 공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들이 손수 만든 모국의 다양한 음식들.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들의 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했다. 모임을 다녀오면서 아무쪼록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법철학을 전공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몇 년 후 공부를 마치는 대로 다시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18년이 지나서야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마음 속에 담긴 회한을 무엇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자는 스스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성공을 위한 경영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패를 곱씹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에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나는 저자를 '살아있는 역사'라 부르고 싶다.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지만,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따라야 했고, 그 당사자 가운데 저자도 포함되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부채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독일에서의 생활, 대학시절의 생활 등이 기술되어 있는 이 책에는 불온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그대로 배어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 사랑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힘이라는 저자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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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 통신
요시토모 나라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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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표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표지에 있는 여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캐릭터는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다만 눈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이 캐릭터들은 귀엽지만, 그 느낌을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한순간 떠오르는 감상보다는 지속적인 감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미술에 문외한인 나의 눈을 통해서는 말이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미술 작품들과 글이 반반 정도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 요시토모의 글이 미술 작품에 밀리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라 요시토모는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저자가 살아온 도시의 지도는 물론이고, 장난기 넘치는 저자의 사진들, 그의 방을 그려놓은 평면도 또는 입체 도는 연필 자욱 그득하게 수작업을 해놓았는데, 그 정감 있는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나라 요시토모는 대학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다음 학기 학비를 유럽 여행에 투자한다. 1980년 스무 살 청년은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당시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향했는데,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첫 서양의 풍경에 가슴이 쿵쿵거리도록 흥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거리와 집과 거대한 빌보드 광고에 나그네의 마음은 뛰었다. 당연한 일인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모두 프랑스인에 프랑스 말로 얘기한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그러고 보니까 처음 도쿄에 왔을 때도 모두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표준말로 얘기하네! 하고 기가 죽은 기억이 있다. 하기야 시골 촌뜨기였으니까). 나는 파리 거리를 정처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지금은 죽고 없는 화가들을 생각했다. - 본문 중에서

그 후 저자는 유럽으로 여행을 몇 번 더 다녀온 후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오랜 유학 생활이 시작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만큼 그림을 그렸고,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애쓴 것 같다'는 저자는 그로부터 12년 후 순조로운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귀국하여 처음으로 가진 본격적인 전시회의 타이틀은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라고 지었다.

미술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마음의 기저에 바로 이러한 마음이 집약되어 있음을 독자들은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잊어도 나는 상관없다'는 말은 '당신과 나는 서로 잊을 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 말은 또 내가 지금까지 제작한 모든 작품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였으며, 반대로 작품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 작품이란 말을 지금까지의 체험이나 추억, 만난 사람들과 바꿔놓을 수도 있다. 꿈과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것이라는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태어난 것이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란 작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본문 중에서

미술관에 온 듯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저자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듣는 일도 매우 기꺼운 일이었다. 마치 더운 여름날 우연히 만난 소나기처럼 <작은별 통신>은 그렇게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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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선집 1
김종철 엮음 / 녹색평론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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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사람을 둘로 나누면 <녹색평론>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환경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음에 마음 든든하기도 했고, 나와 주위 사람들의 의식 세계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녹색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녹색평론선집1>은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재생지를 사용해서 너무나 가벼웠고, 표지에는 밑동이 잘린 고목에서 새싹이 돋는 그림이 실려 있었다. 표지 하나도 그냥 선택하지 않은 편집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창간호부터 통권 제6호까지 1년 동안 격월간 <녹색평론>에 수록된 글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선집으로 엮은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바쓸라프 하벨, 제레미 리프킨의 글이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역시 독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심어주고 있었다.

"라다크로 가기 전에 나는 진보의 방향은 어떻든 불가피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 결과, 나는 공원 한가운데로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2백 년이나 넘게 교회가 서 있던 자리에 강철과 유리로 된 은행건물이 세워지고, 구멍가게 대신 슈퍼마켓이 들어서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다크에서 얻은 나의 경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확신시켜 주었고, 나에게 엄청난 힘과 희망을 주었다." - <녹색평론선집1> 가운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글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다크로 가기 전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진보의 방향을 어떻든 불가피하다'는 생각 말이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우리가 소비하는 것 중 대부분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개인용 자동차 같은 것이다. 취직을 하면 으레 이동의 수단으로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동안 대중교통을 잘 이용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마당에 우리는 더 편리한 삶을 위해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등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하다.

"제3세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곡물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는 동안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심장마비와 뇌졸중과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질병들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쇠고기의 과잉소비에 있는 것이다. 해마다 동물성 지방의 소비에 관련된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최소한의 시간 안에 최적의 몸무게를 얻기 위해서 사육 관리자들은 성장촉진 호르몬과 사료첨가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약제들을 소들에게 투여한다. 단백동화 스테로이드제가 조그만 시한탄환의 형태로 동물들의 귀에 박힌다. 그러면 그 호르몬은 서서히 혈류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 간격으로 호르몬 수준을 증가시킨다. … 사육장에서 기르는 미국의 소 전체의 95퍼센트가 현재 성장촉진 호르몬을 투여 받고 있다." - <녹색평론선집1> 가운데 제레미 리프킨의 글 중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는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생활에서 환경을 위한 노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개개인의 잣대는 모두 다르겠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실천하고 하지 못하고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우리 세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 그 다음 위해서라도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평론선집1>과 같은 책은 소중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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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내 발바닥 - 김곰치 르포. 산문집
김곰치 지음 / 녹색평론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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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내 발바닥>은 르포, 산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도 밝혔듯이 르포가 알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실린 모든 장르의 글이 다 알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르포는 르포대로 산문은 산문대로 모두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광촌 카지노에서,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도로 공사현장에서, 새만금 공사 현장에서 쓴 르포 4편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내가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처음 알게된 것은 정호승의 산문집 <위안>에서였다. '땅 위의 직업' 이라는 소제목의 글은 저자가 잡지사 기자 시절, 취재를 위해 강원도 탄광 마을인 고한에서 만난 광원 한 사람을 떠올리며 쓴 글이었다.

막장 안은 지열 때문에 몹시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도 없는 땅속 저 깊은 곳. 어딘지 모르는 한 지점에 작은 한 마리 벌레처럼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 나는 곡괭이질을 하는 중간중간에 한마디씩 던지는 김장순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를 취재한다는 일이 나로서는 너무 건방지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 정호승의 <위안>중에서

순박하고 순연한 그 광원의 소원은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라고 했다. '땅 위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광부들이 80년 사북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80년 사북의 광부들이 폭력적이면 폭력적일수록 , 난동이면 난동일수록, 하룻밤새 누구도 믿기 어려울 만큼 그들의 변화가 돌발적이면 돌발적일수록, 그들 분노의 몸짓이 광기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 모든 건 그들이 얼마나 오래 참고 살아왔나를 말해줄 뿐인 것이다.

... 산업전사라는 미명하에 노동의 시간 그 자체가 인간성을 파멸시키는, 자기자신에 대한 모멸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그러다 죽음의 병을 얻게 될 뿐인, 거의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삶인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벼랑 끝에 처해 있던 그들 생존의 숨막히는 긴장이 한순간 무너지며 그들 속에도 존재하는 진정한 생명이고자 하는 어떤 근원적 삶의 욕망이 왜곡될 대로 왜곡된 참혹한 모습 그대로 일거에 폭발한 것이 80년 사북사태이자 그때 광부들의 파괴적이고 집단적인 광란인 것이다. - <발바닥 내 발바닥> 중에서

저자는 80년 사북사태가 '노동운동도 민주화운동도 아니라 전율스런 생명운동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산업화의 자본주의가 가속화될수록 그 폐해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현상들은 사실 전달 만이 아니라, 진실을 목도하게 한다.

어떤 부모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야, 어떤 훈육을 받으며 자랐어야, 청소년기에는 어떤 책을 읽었어야, 어떤 친구와 우정을 나누었어야, 어떤 훌륭한 스승을 만나 무슨 귀한 가르침을 받아야, 어느 누구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읽고 지독하게 마음 아팠어야, 하여 자신의 마음을 궁극까지 탐구하겠다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얻어 가는 피 흘리는 정신의 수련을 해야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제 판단과 의지를 믿고 온몸을 던지는 그런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요량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은 도롱뇽 소송 재판부에 올리는 탄원문에서 발췌한 글이다.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걱정하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편지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준다.

<발바닥 내 발바닥>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발로 뛰며 온몸으로 쓴 글들을 한데 묶어 놓은 책이다. '탐욕으로 일그러진 이 어리석은 시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문학적 증언의 하나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김종철 선생의 말씀처럼 이 책의 진면목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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