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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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했다. 다물고 있을 때조차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어 만약 주름이 있거나 색이 나쁘면 불결하게 보일 텐데 그렇진 않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지도 처지지도 않아 일부러 곧게 그린 듯한 눈은 뭔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짧은 털이 가득 돋아난 흘러내리는 눈썹이 이를 알맞게 감싸 주고 있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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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 이명원의 한국문학 탐사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5년 10월
품절


그날, 나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다. 속절없이 내리는 여름밤의 폭우를 바라보면서, 작가와 함께 투명하기 그지없는 소주를 마셨다. 다소간 술에 취해 버렸던 나는 인터뷰와는 전혀 무관하게, 내 안의 슬픔을 얼마간 공선옥에게 털어놨던 것도 같다. 그런 말을 하면서 아마도 나는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타인의 슬픔을 뻔뻔하게 드러내라고 추궁하는 인터뷰어의 역할이나 그것을 글로 옮기는 일 따위는 아무래도 나에겐 적당한 것이 아닌 듯하다.'-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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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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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오스트리아 태생인 영국 철학자-옮긴이)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 마찬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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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구판절판


'만남'이란 무엇일까. 거리에서 어떤 이와 잠시 스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만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부딪침을 만남으로 규정한다면,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만남에 직면해 있어 사실상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익숙하게 명함을 교환하고, 바로 그 사람과 밤새도록 술을 퍼마신다고 해도 '내면의 교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진정한 만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남'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의 마음에 설명하기 힘든 서늘함을 불러 일으키고, 터질 듯한 설렘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에 휩싸이게 만드는, 그 눈부신 만남이란 무엇일까.-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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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사랑한걸까 - 마음을 다스리는 책 3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미토스 / 2005년 10월
절판


보다 많이 사랑하는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방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이미 패자다. 보다 적게 사랑하는 자는, 상대방을 언제 잃어도 상관없다는 점에서 이미 명백한 승리자다. 전자는 그 때문에 온갖 계략을 짜낸다. 그리고 그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그러나 후자는 원칙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다. 상대를 잃어도, 잃지 않아도 괜찮다. 기분이 좋으면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기분이 나쁘면 상대에게 냉정하게 군다.-74쪽

연애는 종종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부추긴다. 그 이유는 우리네 인생이 한없이 지루하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1623~1662)이 말했듯 처절할 정도로 '허무'하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람,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도 연애를 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그것은 자기로부터의 해방임과 동시에, 사랑에 대한 자기 주술이다.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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