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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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각은 이중사고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철회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에 맞서는 것)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기억에 떠올렸다가 다시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다 똑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것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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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딸
태혜숙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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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는 북해가 차가운 잿빛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수평선은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바다와 잿빛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있을 뿐이다. 그 위로 한 마리 새가 ㄴ라개를 활짝 ㅇ려고 심연을 뚫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여러 달 동안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고 한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쓰며 이 곳에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그저 한 시간 정도 즐거운 기분으로 잃도록 창조된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황량한 현실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정신을 고양시키는 그런 교향악도 아니다. 내 이야기는 절망과 불행 속에서 쓴 인생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묘한 인연으로 우연히 발붙이고 살게 된 대지에 관해 쓰려 한다. 그 중에서도 비천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슬픔,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사랑에 관해 쓰려고 한다. -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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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품절


조금은 갈색빛이 도는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니 지적인 이마가 드러났다. 넓은 이마 밑의 정열적인 눈동자는 온 세상의 빛을 빨아들였다가는 다시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나는 같은 눈동자를 훔쳐보며 한 번 더 저 눈동자에 그날과 같은 눈부신 빛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시선을 비키며 걷기 시작한 홍이는 과거를 완전히 잘라 내버린 사람 같다. 그날의 눈동자에 어렸던 빛은 거기에 없다. 그녀는 이미 다른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14쪽

눈동자 깊은 곳에서 기억의 빛이 겹겹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그녀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빛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 순간 나는 최홍의 웃는 얼굴을 떠올린다. 그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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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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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면 모처럼 푹 쉰다는 명목으로 하루 종일 잠만 쿨쿨 자고. 그러니 어디서 음악회가 있다 해도, 외국에서 정상급 음악가가 온다 해도 들으러 갈 기회가 없을 수밖에. 결국 음악이라는 어떤 아름다운 세계에는 전혀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이만큼 불쌍한 무경험은 없다고 생각해. 빵과 관련된 경험은 절실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저열한 거지. 빵을 떠나고, 물을 떠난 고상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지. 자네는 나를 아직도 철부지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살고 있는 고상한 세계에서는 자네보다 내가 훨씬 연장자라고 생각하네. -27쪽

개미가 방으로 기어드는 계절이 되었다. 다이스케는 커다란 수반에 물을 붓고 그 안에 새하얀 은방울꽃을 줄기째 담갔다. 떼지어 핀 작은 꽃들이 짙은 무늬가 있는 수반 가장자리를 뒤덮었다. 수반을 움직이면 꽃이 넘실거렸다. 다이스케는 그것을 큰 사전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그 옆에 베개를 놓고 벌렁 누웠다. 검은 머리가 수반의 그림자에 포개지니 꽃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기분 좋게 코에 스몄다. 다이스케는 그 향기를 맡으면서 선잠을 잤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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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절판


친구가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이었다. 보통의 시간에서 지워진 기간이었다. 취하거나 비몽사몽간 일 때의 시간처럼. 매 시간 뒤에 친구가 있었다. 주위에서 일이 일어나면서, 안토나포울러스와의 이 묻혀진 삶은 변했고 계속 펼쳐졌다. ... 한 가지 기억이 거듭 밀려왔다.-209쪽

지난번에 만나고 반 년만이지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깨어있는 시간 뒤에는 늘 친구가 있었다. 정말 같이 있는 것처럼 우정은 성장하고 변화했다. 그는 친구를 때로 경외하며 겸손하게, 때로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늘 비판 없는 사랑으로, 자유 의지로 받아들였다. 밤에 꿈을 꾸면, 늘 크고 상냥한 친구의 얼굴이 앞에 있었다. 깨어서 생각을 할 때면 둘은 늘 영원토록 하나였다.-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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