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브verve, 큐어cure, 오아시스oasis,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매닉 스트릿 프리쳐스manic street preachers,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 그리고 플라시보placebo 까지.
지난 9월부터 발매된 어떤 종류의 신보들 목록(* 모리씨morrissey는 부러 뺐음).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족히 10년은 거꾸로 세월을 거스른 듯한 이 모양새. 어떤 정권의 역주행에 바다 건너 건너 섬나라의 뮤지션들이 죄 고무되기라도 한 걸까? 그래, 그 와중에 개봉했던 영화 '클로저'도 빼놓을 순 없겠다. 조이 디비젼joy division 일단 추가. (트래비스travis랑 콜드플레이coldplay는 '짬'이 안된다!)
불평을 하자는 건 아니다. 차라리 "도대체 피터 훅peter hook이랑 버나드 썸너bernard sumner는 나잇살 먹고 왜 그래? 싸웠으면 화해하고 뉴 오더new order도 신보 내야되는 거 아냐?" 같은 불평이면 모를까(심지어 '클로저'에서도 피터 훅은 본명 대신 후키라는 애칭으로만 불린다)... 컷 카피cut copy, MGMT, 뱀파이어 위크엔드vampire weekend 같은 친구들 사이에 슬쩍 넣었던 블러blur의 'THINK TANK' 앨범을 들었던 게 바로 오늘 출근길이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를.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러브송은 어디로 갔을까?
죄다 우울한 사람들
만사는 꼬여 돌아가고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진 도무지 모르겠고
- blur, 'out of time' (우린 안될거야 아마... 가 제목이 아님)
언제부턴가 어떤 의무감에 mp3p를 채우게 된 신곡들 사이에 끼어있던 그 노래를, 오늘도 기어코 찾아 들었다는 이야기.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던 러브송들, 계속해서 변주되며 새롭게 흐르던 그 노래들이 요즘엔 다 어디로 갔는지가 궁금할 뿐. 진짜 놀랄 일은 따로있따.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블러가 재결성을 한다는 소식! 올 하반기엔 신보도 나올 예정이라고.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이 포함된 오리지널 멤버!)
가만 생각하니 내가 이 소식을 들은 건 사실 며칠 전이었다. 그땐 무심히 흘려 들었던 그 이야기를 오늘 다시 듣고 새삼 놀란 것.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다. 납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일들도 있다는 뜻일까. 그러니까,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콕슨이 화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과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는 너무 일찍 화해했던 셈이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와 닉 맥케이브nick mccabe의 화해는 어떨까?)
나는 문득 듀란듀란duran duran과 2000년 그들의 앨범 'poptrash'(!)를 생각했다. 그들도 나도 모두 스무살이었던 그때를(듀란듀란의 경우에는 메이저 데뷔 앨범 발매시기를 기준으로). 처음에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척 할아버지가 돌아오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왠걸. 별 두개라는 올뮤직 가이드의 냉혹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앨범은 꽤나 눈물나는 명반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꽃이 꿀벌을 사랑하듯 그 사랑이 진실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떠나 보내는 것
하지만 난 알고 있어 넌 네 스스로를 놓아 버리게 될 것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 duran duran, 'someone else not me'
스무살이란 무릇 이런 나이인 것이다. 아마 지금 스물을 맞은 이들이 보는 블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블러 역시 올해 스무살이 되었다. 이번에는 밴드 결성 시점으로. 완전 내맘) 물론 돌아온 친척 할아버지가 멋쟁이 할아버지인지 욕쟁이 할아버지인지는 앨범이 나와봐야 아는 이야기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어쩐지 나이를 엄청나게 먹어버린 기분이 들고...
블러를 처음 들은 건 13년 전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러의 앨범은 '13'. 어쨌거나,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음악을 단순히 귀로만 듣게 된 것이.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역시 백스테이지2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테니까. 사실 제대로 할 자신도 없으니까. 어둡고 습한 지하의 카페에 앉아 한쪽 벽을 채우고 있던 스크린 위로 흐르던 매닉스의 'motorcycle emptiness' 뮤직비디오를 보며 선배가 쥐어준 보급용 88 담배에 손을 뻗는 고등학생의 마음 같은 건, 십년이 훨씬 흐른 오늘도 손발이 오그라드니까.
군대 가는 순간- 이라던 선배의 말을 믿은 적은 없었다. 물론 나는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2NE1(중 1人)도 모두 좋아하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니까. 이등병 시절엔 보아의 넘버원 안무를 외웠어도, 최고참이 된 후에 신병이 들어온 날이면 취침 청소시간에 톰 웨이츠tom waits의 'a sight for sore eyes'를 틀곤 했는데. (왜 그랬을까? (왕고인 내가)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무의식의 발로?;)
나이도, 생활도, 여유도. 많은 이유가 통하겠지만 내 추리는 이렇다. 더이상 가사를 파며 노래를 듣지 않게 된 순간. 바로 그때부터 음악은 그저 'BGM'이 되고 말았다는 것. (그 순간 이후 지금까지 내가 가장 '음악적으로' 열광한 신인은 빅뱅이란 사실이 이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니까 더이상 "서로를 찾기 위해 약을 먹"지 않고, "너와 함께 빛나는 내가 되게 해줘" 같은 말을 하지 않고 "그런 경우라면 럼앤코크를 주문"하지 않을 뿐더러 '서쪽으로 튀'지도 않고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닉 혼비가 닉 혼비가 되었던 게 결국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건데, 이 마당에 모든 인간이 섬이든 아니든 도대체 내가 알게 뭐람!
섬. 섬 얘긴 그만하자. 그러니까 꼭, 영국음악이 아니어도 좋다.
섬의 세련된 버전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쓰인 단어는 '인공위성'이다. 'satellite'이라고 해야 느낌이 산다. 바슐라르가 말한 문화적 컴플렉스. satellite 이라고 하면 루 리드lou reed의 'satellite of love'가, 인공위성 이라고 하면 "니가 좋아 너무 좋아"가 생각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 이건 '일기예보'고 '인공위성'은 아카펠라 그룹이었던가? 아무튼 루 리드가 "오, 사랑의 인공위성 오, 사랑의 인공위성, 이인고옹위이서엉"이라고 부르면 좀 웃기잖는가?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선 고유명사가 쓰였다. 같은 고유명사가 쓰인 델리스파이스의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란 제목은 너무 직접적이다. 가끔은 궁금하다. 우습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게- 그냥 무덤덤한 수준에서 'high and dry' 같은 제목의 한글 번역은 가능할까?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fast as you can'은? 결국 운문의 번역 문제. 지금껏 맘에 쏙들게 번역된 엘리어트의 시구를 본적은 없으니까.
we have lingered in the chambers of the sea
by sea-girls wreathed with seaweed red and brown
till human voices wake us, and we drown
아마도 그건 어떤 갈증 혹은 스스로가 글을 잘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겠다. 엄청난 비약이겠지만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라고 쓰고 '풍화작용'이란 단어를 못내 고민하던 시인의 마음이 비슷했을까? 실은 문화사대주의에 훨씬 더 가깝겠지만.
U2의 'stay(far away so close!)' 가사에도 인공위성이 나온다. "멀리 그렇게 가까이 / 움직이지 않고도 / 라디오 그리고 위성 텔레비전과 함께"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찌나 빔 벤더스와 잘 어울리는 가사인지(가끔씩 그가 펼쳐보이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 이 노래가 쓰인 '베를린 천사의 시' 속편이라는 그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땅으로 떨어진 천사가 고속도로를 걷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과 더불어 내가 이 노래에서 잊지 못하는 건 한 줄의 가사다. "그가 너를 상처내도 / 너는 상관하지 않지 / 그가 너를 때릴 때 / 비로소 넌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재미있게도 '베를린 천사의 시'의 헐리우드 판인 '씨티 오브 엔젤'에 삽입된 구구돌스goo goo dolls의 노래, 'iris'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너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you bleed just to know you're alive"
그냥 단순한 우연인가. is that what it is? 이렇게 써놓고 보니 스트록스strokes를 떠올리게 되고야 마는 것 같은. is this it?
스트록스를 보던 날, 2006년의 여름이 떠오른다.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는 후배의 남자친구에게 얻은 1일권으로 갔었던 그곳에서. 스노 패트롤snow patrol 라이브는 앨범 보다 백배 좋고,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는 참말로 귀여운 친구라는 걸 깨달았던 그날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대했던 건 역시 스트록스였는데. 'new york city cops'를 부르며 뛰던 그 밤. 진흙범벅이 되어서 부평에서 총알택시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던.
무려 직장인이 되어 3일권을 끊어갔던 작년의 펜타포트는 어쩐지 트래비스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땡볕과 맥주도. 그러니까, 물에 적신 빨간 펜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맥주에 칵테일에 흐느적 돌아다니다가 목청껏 불렀던. "만약 우리가 턴, 턴, 턴, 턴, 턴, 턴, 턴, 턴, 터어어언, 터언 한다면 우리는 배울 수 있겠지?" 라던.
그러니까 나는 아마 노래를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훈련소 시절, 길고 길던 행군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그 노래들.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던 그 노래들. 그 노래들은 정말 어디로 갔을까?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내 노래를
내가 어울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아남을 거야
아마 길진 않을거야
만약 우리가 턴, 턴, 턴, 턴, 턴 한다면
그러고보니 디바인 코미디divine comedy의 새앨범도 연내에 릴리스될 예정이라던데. 결국 돌고 돌고 돌아오는 걸까? 해체 이후 줄기차게 NME 등에 "다시 밴드를 하고 싶습니다!" 따위의 구인광고를 냈던 스매슁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빌리 코건billy corgan 처럼, 아무리 살아도 놓아버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들이. 참고로 블러의 '아웃 오브 타임'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꿈꾸는 게 아니라고 말해줘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다고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어
시간 너머로
우린 안될 거야 아마... 로 끝나지 않아서 참 다행. 그리고 도무지 맥락 없는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렇게-
난 그냥 오랫된 이야기 책을 펴고 자리에 앉을래
옛날옛날에 꼭 나같은 애가 있었어
만물과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지
얘, 너 정말 순진하다!
결국 불보듯 뻔하니까
그런 애들은 딱한 최후를 맞기 마련이니까
엄숙하게 책장을 넘기며 나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멋진 미소를 한 그 불쌍한 꼬마가
그 순진함으로 마침내 성공한 거야!
난 울어버렸어
마지막 장면에서 난 맨날 울거든
- belle and sebastian, 'get me away from here i'm dying'
* 이 글은 이른바 '의식의 flow' 기법 혹은 '무통증 알코올 요법'으로 낯뜨거운지 모르고 씌여졌음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실은 신간소개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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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언급된 밴드들의 최고작 (내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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