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여, 쫄지 마, 상상해 봐!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생태요괴전>으로 돌아온
경제학자 우석훈 인터뷰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가을. 찬바람 불고 낙엽 지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우석훈 박사를 만났다. 20대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신 ‘공포 경제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명랑을 모토로 삼고, 잘난 ‘척’하지 않으며, 20대 보다 20대를 더 믿는 경제학자, 그대로였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을까?
(인터뷰 : 알라딘 금정연)
알라딘 : 지난 번 인터뷰는 5월이었죠. 그 간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우석훈 : 근황이랄 건 없고… (웃음) 다만 ‘한국경제대장정’이라고 이름 붙인 시리즈를 내기로 했으니까, 끝은 내야하니까, 그걸 붙잡고 있었죠. (‘한국경제대장정’은 기존에 ‘한국경제대안’이라는 시리즈 이름으로 출간 되었던 <88만원 세대>,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의 4권과 얼마 전 동시 출간된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의 ‘생태경제학’ 시리즈를 포괄하는 12권짜리 기획) 올해는 사실 1년 내내 슬럼프였어요. 여름방학 이후로 겨우 정리를 하고 있는 상태에요.
알라딘 : 슬럼프라고는 하시지만, 이번에 무려 세 권의 책이 한꺼번에 출간 되었습니다. 흔한 일은 아닌데, 혹 사연이 있나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출간일정을 조정하기도 하는데.
우석훈 : 원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더 늦게 나올 예정이었어요. 원고를 먼저 넘긴 것은 ‘생태경제학’ 시리즈니까. 그런데 자꾸 출간이 늦어져서 추월을 한 셈인데… 저는 상관없어요. 책 판매에 대해서는 별 관여를 하지 않으니까. 판매는 출판사 소관이죠. 저는 그냥 되는대로 하고, 안되면 말고… (웃음)
알라딘 : 2007년 <88만원 세대> 이후 모두 8권의 단행본을 출간 하셨습니다. (* 단독저작 기준. <조직의 재발견>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개정판이므로 제외) 강준만 교수를 제외하곤 국내에선 독보적인 생산성입니다. 비결이 있으세요?
우석훈 : 원래 다 머릿속에서 계획되어 있었던 책이니까요. 자료도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던 상태고. 그 전에 해놓았던 것들을 은퇴 준비하며 정리하는 건데… 사실 굉장히 느린 셈이에요. 기자가 이렇게 작업하면 아마 신문사에서 쫓겨나겠죠. (웃음) 써야할 것들, 빨리 정리해버려야 할 것들은 아직도 이만큼 쌓여있어요. 결코 빠른 게 아니에요.
알라딘 : 여러 우여곡절 끝에 출간 된 <88만원 세대> 이후,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C급 경제학자라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명실상부한 A급 저자가 되신 것 같습니다. 생산성이나 독자호응 모두에서요. <88만원 세대>는 ‘꿈의 10만부’를 넘기기도 했고요. 자평을 하자면?
우석훈 : 우여곡절이 많았죠. 이 시리즈가 재미있는 게,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거. 우스운 알, 슬픈 일… 크고 작은 사연들이 많아요. 주로 슬픈 일이지만. <88만원 세대>는 처음 표지를 바코드를 넣어 디자인했더니 ISBN 대신 그 바코드를 인식해서 표지를 엎었는데, <촌놈들의 제국주의> 할 때도 초판 인쇄가 잘못 되어서 한 쇄를 엎고 전부 다시 찍기도 하고. 시리즈 내내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게 마가 낀 건지 뭔지 정말… 지금은 다른 생각 안하고 그냥 편하게만 가자,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A급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사실 팔릴만한 것을 앞으로 배치했던 거죠. <88만원 세대>처럼 개념을 제시하는 책을. 뒤로 가면 갈수록 더 처절해지겠죠. 나는 잘하는데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는 게 힘들어요. 앞으로 남은 책들은 모두 세부 주제로 깊숙이 들어가는 책인데, 거의 안 팔릴 것 같아요. (웃음) 최대한 쉽게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알리는 일은 역시 어려워요.
알라딘 : 하지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굉장히 쉽게, 잘 읽혔어요.
우석훈 : 이 책은 정말 작정하고 쓴 거예요. 쉽게, 재미있게. 삼국지 얘기도 넣고, 공각기동대 얘기도 넣고. 그런데 자꾸 이 책을 읽은 대학생들이 울었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아니, 이렇게 재미있게 썼는데 자꾸 울면 어쩌자는 거야. (웃음) 아마 다들 자기 이야기라고 공감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에 친구들의 이야기도 있고.
알라딘 :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에 출간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이 세 권은 모두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도저히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표지. 의도하신 바가 있나요?
우석훈 : 표지 작업에는 관여를 안 해요. 다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같은 경우에 출판사에서 시안 몇 개를 보여주셨는데, <88만원 세대> 표지를 응용한 디자인들은 제가 제외를 시켰죠. <88만원 세대>가 표지가 너무 암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이번엔 좀 밝게 가보고 싶었어요. 샤넬에 관한 이야기도 본문 중에 나오고.
<생태요괴전>과 <생태페다고지> 같은 경우에는, 사실 좀 파격적이죠. (웃음) 그래도 처음에 컴퓨터 모니터로 시안을 봤을 때보다 실물이 훨씬 낫더라고요.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꼴통 코드가 확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데, 망하려면 확실히 망하는 거지 무난하게 맞춰서 하는 걸 안 좋아해요. 만약에 누가 저한테 “황당한 거하고 무난한 게 있는데 뭘 하겠어요?”라고 물으면 전 무조건 황당한 걸 하겠다고 해요. 재밌잖아요.
알라딘 : <혁명은 이렇게>의 핵심 메시지는 쫄지 마, 상상해, 믿고 나누어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과 나눔이 시작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출간 된 로버트 액슬로드의 <협력의 진화>에서는 그 물음을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다르지 않을까요?
우석훈 : 게임이론의 틀을 가지고 말하자면, 모두가 이기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협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일단 다른 전략을 쓰는 돌연변이들이 생겨나야 해요. 이기적인 전략들이 연속성에 일단 단절, 작은 균열이 생겨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룹핑이 필요하고요. 혼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돌연변이들끼리 서로를 보호해주는 모임.
그걸 저는 ‘마을’이라고 표현해요. 그런데 요즘 20대들에게는 마을, 고향 이런 것에 대한 정서적인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책에서는 그걸 ‘진법’이라고 표현한 거죠. ‘진법’은 <삼국지>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딱 알더라고요. 아무래도 <삼국지>는 논술필독도서니… (웃음)
알라딘 : 항상 책을 읽으면 적절한 비유를 통한 개념화가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는데, 전략적으로 의도하신 건가요?
우석훈 : 독자들이 잘 알고, 공감할 수 있을만한 걸 찾는 거죠. 사실 이번엔 <삼국지>가 아니라 <수호지>를 넣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수호지를 많이 읽지 않아서. 이번 책은 <삼국지>와 [공각기동대]를 많이 참고했어요. 본문 마지막에 ‘다치코마의 노래’(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노래)를 넣은 것도,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구상은 처음부터 [공각기동대] 이야기를 많이 넣어 진행시키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 적어서 뒤로 뺐어요.
<88만원 세대>도 원래는 셜록 홈즈를 넣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이름은 많이 알아도 정작 코넌 도일이 쓴 셜록 홈즈를 생각만큼 읽지는 않아서 보류. 그래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어간 거죠. 디킨즈는 몰라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렸을 때 한 번씩은 읽잖아요. 원래 제 취향은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건데… (웃음)
20대를 대상으로는 같은 텍스트를 놓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요. 베스트셀러도, 영화도, 드라마도… 하다못해 요즘 [선덕여왕]이 인기 있지만 그걸 또 다 봤다, 이건 아니거든요. 그게 20대의 특징이에요. 다 함께 보고, 들은 경험이 없는 것. 공통의 텍스트가 없다는 거요. 오히려 30~40대 아주머니들은 공통된 텍스트가 있어요. 그 분들을 만나면 드라마 이야기나 신경숙․공지영 작가의 소설 이야기를 하죠.
알라딘 : 일단 혼자는 못하고, ‘마을’(모임)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은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마을’에 모이기만 한다면, 20대들은 아직 적절한 생산수단을 갖추지 못했는데, 결국 게토화 되고 마는 것 아닌가요?
우석훈 : 게토라도, 일단 20대 만의 게토를 만들라는 거죠. 처음엔 암울해 보일 수 있어도, 앞이 막막해 보여도, 결국 어느 순간 그곳에서 다양한 목소리, 상상력들이 나오기 시작할 거예요. 그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거죠. 지금 20대만을 위한 공간이 어디 있나요? 홍대? 홍대는 ‘(고기를) 굽고 싶은 거리’죠. (웃음) 대학로? 아니거든요. 일단 20대끼리 뭉쳐야 해요.
알라딘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중 ‘68혁명과 차티스트 운동’, ‘아직 씌어지지 못한 권리선언문’이란 제목의 장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하자”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래알처럼 쪼개지고 분화된 욕망들 사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우석훈 : 기본권이죠.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지금의 20대들에겐 그게 정말 필요해요. 만약 10대한테 물어본다면, 그 친구들은 아마 ‘생리권’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잠을 못 자게 하잖아요.
사실 제가 가장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은 보건권이에요.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는,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20대가 의외로 많아요. 이런 것들이 무너지면 국가가 있을 이유가 없는 거죠. 무엇 때문에 세금을 내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명색이 국가라면 국민들을 좀 챙기라고, 밥은 먹이라는 거죠 밥은! (웃음)
알라딘 : 지난 인터뷰를 했던 때가 마침 재보궐선거 5-0 스코어를 기록한 직후였지요. 그때 말씀으로는 “일종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 지지도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우석훈 : 한마디로 대안세력이 망한 거죠. 사람들이 현 정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대세가 그대로 유지되는 거죠. 다시 ‘대세론’의 시대가… (웃음)
사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요. 경제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이고, 이런저런 변수들을 고려하면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죠. 집권 여당이 생각하는 건 일본의 자민당 같은 장기 집권인 것 같은데, 그렇지만 어딘가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석훈의 대안’이 궁금한 분들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를…)
알라딘 : 함께 일하는 동료의 질문입니다. 만약 촛불집회나 다른 시위 상황에서 ‘실력행사’를 해야 할 경우, 폭력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석훈 : 쉽지 않은 이야기죠. 제 생각은 일단,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방화는 진짜 나쁜 거고. 유리창에 돌 던지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결국 거대한 권력 구조 앞에서, 어떻게 최대한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수 있냐는 문제에요. 일종의 쇼가 필요한 거죠.
돌을 던진다고 할 때, 전경을 향해 던져야겠다면 맞지 않게 던져야죠. 정조준 해서 맞출 의도로 던지는 건 반칙이에요. 그러니 유리창을 향해 던지는 건, 사람도 다치지 않고 시각적인 자극이 크죠. 이런 퍼포먼스 형태의 폭력까지 다 막아버리는 건 너무하는 거죠. 핸드마이크를 허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들 모여서 손에 핸드마이크 하나씩 들고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떠들면, 그것 자체로 굉장한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저런 것들을 다 막아버리면… 던질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떻게든 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폭력으로 폭력을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에요. 어떤 경우라도.
알라딘 : 10년 전 상상하던 자신의 모습이 있으세요? 아니면 10년 후 자신의 모습이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우석훈 : 10년 전이면 제가 서른둘인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언제나 내 인생은 마흔 살까지 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이후는 생각도 안 해본 거죠. 그냥 지금 제 모습을 본다면… 글쎄요. 10대에서 20대, 20대에서 30대가 될 때는 굉장히 싫었어요. 그런데 서른다섯이 되니까 아… 그냥 모르겠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흰머리가 자꾸 나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 너무 늙었다, 이런 생각만. (웃음)
그런데 신기한 건, 마흔 넘으니 많은 게 바뀌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느새 중요하지 않게 되고, 기호나 취향도 바뀌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신기해요. 하나 바뀌지 않은 건 만화책은 여전히 재밌다는 거. 정말 좋아했던 책이나 영화도 지금 다시 보면 싫어지는데, 집에 있는 <미스터 초밥왕>은 언제 봐도 재밌더라고요. (웃음) 만화가 진짜 예술이에요.
사회에 대해서는 5년 전쯤에, 한국이 앞으로 힘들 것 같다 생각한 적이 있긴 해요. 지금 보면, 그때 그 생각이 거의 맞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10년 후라고 하면 정말 모르겠어요. 한국은 너무 빠른 사회잖아요. 당장 다음 대선에 누가 여당 후보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다만, 나쁜 미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알라딘 : 20대들을 위해 책을 추천하신다면.
우석훈 : 문화를 생산하거나,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움베르토 에코를 꼭 읽어야 해요. 인문서라고 하면, <로마인 이야기>말고도 로마에 대해 다루는 책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 중에서도 로마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를 다루는 책들을 읽으면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지영 작가나 신경숙 작가의 책도 읽어야겠죠. 한국인이 말하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텍스트를 통해 분석해 봐야 해요. 생산자․기획자의 눈으로. 문학계에서 한국을 이끌어가는 두 사람이잖아요. 베스트셀러는 안 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웃음)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결국 대중과의 대화에 성공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어떻게 가능할까? 그 텍스트들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는 거예요. 이 두 사람을 보면 여전히 책의 힘은 강력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문화생산자 혹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바로 지금, 자기가 누구한테 이야기할 건지를 분명히 알아야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 성공한 텍스트를 일종의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거죠. 문화를 생산하고 기획하는 일은 지금 이 사회에서 충분히 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물론 모두가 구원받을 수는 없겠지만.
알라딘 : 앞으로의 집필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우석훈 : 일단 12권짜리 ‘경제대장정’ 시리즈가 있죠. 이제 반 왔는데… 그게 본 시리즈이고, 그밖에 번외 편들이 있어요. 밀려있는 것만 해도 ‘인민노련’에 관련한 일종의 운동사가 있고,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한 책이 있고, 화폐론에 관한 책이 있어요. 우리는 신자유주의만 이야기했지, 그 안의 화폐정책 이런 건 이야기 안했잖아요. 어쨌거나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두 가지는 돈과 말인데.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의 경제학> 이라는 책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일종의 드라마 감성이죠. 제가 아침 드라마까지 즐겨보는 드라마 광이거든요. (웃음) 이 책들도 지금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년 여름쯤이면 어떻게든 일단락이 될 것 같아요. 물론 밀릴 수도 있지만. (웃음)
알라딘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이후로는, ‘88만원 세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책을 더 쓸 생각은 없으신가요?
우석훈 : 일단은 계획이 없어요. 할 이야긴 이미 다 한 것 같고. 어쨌거나 저는 지금의 20대들과 좋든 싫든 함께 가야만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10년 후에, 지금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조명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긴 해요. 10년 전에 ‘88만원 세대’라 불리던 이들이 30대가 되어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요.
알라딘 : 자, 마지막은 공식질문입니다. 우리사회를 살고 있는 20대들에게 한 마디!
우석훈 : 저는 대학생들에게, F학점 한 번 맞는다고 죽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죽기는커녕 사실 아무 일도 없잖아요?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재수강하거나, 지우면 되고. (웃음) 그러니 한 번 F학점도 받아보고 시험거부 같은 것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럼 세상이 달라져 보일 거예요. 아, 별일 안 생기는 구나 깨닫는 것만으로도.
알라딘 : 네, 대학생 및 직장인 여러분, 고과평가 F 맞아도 이렇게 월급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 약간의 뒷 이야기 ***
- 인터뷰에 이어 진행된 강연회에는 쌀쌀한 날씨, 인문대 가을축제 기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대학생 분들 뿐 아니라, 교복을 입은 학생도 학부모 님들도 모두 모인 훈훈한 자리였다는…
- "같은 글 안쓰고, 같은 강연 안한다"를 모토로 삼으신다는 달인(?) 우석훈 박사가 잡은 이번 강연회의 키워드는 바로 "쯤, 불완전, 호구, 진법"
-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날 Y대 캠퍼스에서 담배를 피다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 "나쯤 되면" "Y대 쯤 다니면" "공대생 쯤 되면" "키도 이 쯤 되면" "얼굴도 이 쯤 되면" "옷도 이 쯤" 처음 부터 끝까지 '쯤'으로… 이것이 바로 지금 평범한 대학생들의 자기 인식이 아닐까?
- 하지만 그 '쯤'들을 다 모은대도 결국 불완전 할 뿐이다. 결국 쯤일 뿐이 아닌가. 그 쯤은(?) 우리도 안다. 2% 모자람을 인식하고, 그렇기에 자신을 완벽하게 해줄 2%를 찾는다. 이런 욕망을 유혹하는 것이 바로 명품 마케팅. 이 가방 하나면, 이 옷 하나면 나도 완벽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 그런 이들을 가리켜 전문 용어로는 '엔트리', 일반적으로는 '호구'라고 한다는…
- 그리하여 그런 20대들이 소비 문화 속에서 소비 되지 않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진법'이 필요한 것이니- (이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참고)
-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참 많은 책을 내셨는데, 그 중 어떤 책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 우문이지만, 물었다. 흔쾌히 대답하는 우석훈 박사. 그 책은 바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조직의 재발견>의 구판. 표지와 제목, 서문이 다름)
- 그 난해하기로 '소문났던' 서문이 실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의 정수라고 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의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그 책의 서문 만은 구할 길이 없다. 이런 아이러니가!
-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