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의 반대겠지요. 우리는 어떤 것을 알거나 혹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똑 부러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 혹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는 어떨까요. 둘 다 그냥 모르는 것? 전자는 아는 것이고 후자는 모르는 것? 재미 없는 문제라고요? 그렇다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어떨까요?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는 것이기도 해요. 말장난입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해요. 단지 위 문장에 '모른다'와 '안다'가 포함되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무지의 사전>
저자는 '앎'을 육지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명확하게 아는 것들로 이루어진 넓고 단단한 (물론 코페르니쿠스나 다윈 같은 '지진'의 위험에는 항상 노출되어 있는) 땅.
이때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것'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의 어둠으로 존재하는, 짐작조차 할 수도 없는 그런 지점이겠지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늘에 가려진 땅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 '앎의 육지'에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바로 육지의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앎의 끝에서, 아는 것은 여기까지이지만 분명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무언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간 알아내고 싶은, 모험을 자극하는 그런 것.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과학적 탐구가 시작됩니다!
자,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무지의 사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들을 드러냄으로써 역으로 수많은 모험가(과학자)들이 넓혀온 앎의 영토의 끝, 즉 '지식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것! 어때요, 근사한가요?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세요. 실제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과학이 이렇게 진보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잠을 자지만 잠이 정확하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술에 필수인 마취제, 하지만 마취제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지는 미지수" 어때요, 놀랍지 않으세요?
결국 독서의 의미도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흔히들 '앎의 즐거움'이라고는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즐거움이아닐까, 라고. 그것이 우리의 독서가 실생활에 무용한듯 보이는 잡다한 지식들의 축적에 그치지 않는 이유겠지요. 사실 우주가 10차원이나 11차원이나 비전공자들에게 어떤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곳으로 빛을 비추어주는,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되는 쾌감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책들이 앎의 가장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줄까요? 자, 배 출발 합니다~
1. 근대 문학, 죽었니 살았니? <역사와 반복>
<근대 문학의 종언>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셨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에 한국에도 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풍'의 열풍을 기억하시나요. 오에 겐자부로는 어떠신가요. 오에 겐자부로가 작품의 구조 속에서 싸우려고 했던 것이 미시마 유키오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자, 두서 없지만 어쨌든 가라타니 고진입니다. 제가 할 말은 페이퍼 "근대 문학의 종언, 그 이후"에 적어 놓았습니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만약 소설을 쓴다면 그의 비평을 받아보고 싶다, 정도?)
2. 탯줄로 잡아낸 인류의 문화사 <탯줄 코드>
"그는 의사로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탯줄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체험을 신화와 상징의 근원으로 끌어올린다. 그에 의해 탯줄은 뒤르켐의 집단의식, 융의 집단무의식,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에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권자에 오른다." - 조현설(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금 호들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추천사들. 하지만 현직 개업의이자 '재야 학자'인 저자의 <탯줄 코드>에 현직 교수등 제도권 학자들이 보낸 찬사를 모두 호들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저작이라면 제도권에 의해 외면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출생의 과정, 무의식에 녹아있는 그 신비한 과정이 어떻게 신화로 창안되었는지를 탯줄이라는 코드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신화, 민속, 종교를 탐색하는 저자는 '탯줄'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무시무시하게' 잡아내내요. 우리에게 신화와 상징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런 저작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3. 철학 책 3종~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빈 중심>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은 '이데아와 시뮬라크르'라는 부재에서도 알 수 있듯,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전통 존재론과('신족') 베르그송.하이데거,들뢰즈.데리다 등 니체 이후의 현대 존재론('거인족')의 투쟁을 그립니다.
투쟁이라고 하자니 어딘지 거창하지만, 서양철학사가 플라톤주의와 반플라톤주의의 대립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거창한 표현은 아니겠지요. 결국 이정우 씨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시뮬라크르의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우리의 존재론입니다.
이정우 씨를 이야기하자니 어쩐지 이진경 씨가 떠오르네요. (제가 이 두 분을 함께 생각하게 된 것은 몇 해 전 있었던 노마디즘 관련 논쟁 때문인 것 같아요) 마침 책이 나와 함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기회에…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의 개정판입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당시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거의 필독서처럼 읽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 개-개정판에는 모두 10편의 영화가 들어 있습니다. (<친구들>도 10편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제목의 책이에요. (이를테면 켄 윌버의 <무경계>처럼) 그리고 또한 제가 전형적으로 "재미있는 것 같은데 조금 어렵네"라고 생각하는 류의 책이기도 합니다. 하여 책소개의 한 문구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
"예술과 타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러한 ‘관계의 사건’, ‘빈 중심’에 다다르고자 했던 과정의 궤적이다. 니체, 데리다, 메를로-퐁티, 블랑쇼, 바타유, 레비나스 등의 철학자와 말라르메, 사드, 소포클레스 같은 문학가의 예술에 대한 사유를 오가면서, 예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타자의 목소리'를 살핀다." 어떠세요?
4. 한국에서 살아남기! <주권 혁명> <시대와 소통>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손석춘 씨의 <신문 읽기의 혁명> 또한 대학 시절 선배들이 권해주는 (<필로시네마>와는 다른 의미에서) 필독 도서였어요. 표지의 촛불이 앙증맞으면서도 시의적절한 <주권 혁명>의 부제는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그렇습니다. '민주주의' 이야기이지요.
민주주의를 조명하며 시작하는 책은 한국 민주주의를 분석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을 해방하는 주권혁명의 철학과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시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시대와 소통>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월례회 강연을 엮은 책입니다. 최장집, 백낙청, 한홍구, 정수일, 김민웅, 이영미, 오한숙희 등 강연자들의 면면을 보자면 어떤 책인지 감이 오실 것 같은데요.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으로부터 되돌아보게 되는 것', '시민참여형 통일운동 제안',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문명은 충돌하는가', '법의 세계, 상상력은 유효한가', '대중예술 속에 나타난 법', '섹스로 풀어보는 부부 이야기' 등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였던 저자가 어느날 대학에 사표를 던진 후 5년 간 미국 전역의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노동 계급과 함께 생활하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의 이면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영원한 '워너비' 미국의 실태는 결국 우리의 내일을 위한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요? 미국 아마존 서평에도 간혹 '여행 정보는 하나도 없다'는 별 하나짜리 리뷰가 보이는데요, 당연하겠지만 '미국 싸게 여행하기' 같은 책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곤란하실듯.
* 그리고… <촌놈들의 제국주의>
오늘의 마지막 책이자, 바로 오늘 들어온 우석훈 교수의 신작입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니, 어쩐지 벌써부터 웃음이 나오지 않으세요? 너무 뜨거워서 오늘은 일단 소개만 드리고 말겠습니다. 노란 뒷표지에 써있는 말을 가져올게요.
"이제 한국 자본주의는 내적 불균형과 모순의 악화로 필히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DJ노믹스에서 씨앗이 뿌려지고 노무현 정권에서 싹이 틔워졌다. 북한을 일종의 내부식민지화하면서 대외적으로 제국주의 팽창의 길로 들어서는 한국은 중국의 제국화 및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조짐의 현실적 근거들을 경제학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보여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적어도 30년 안에 한.중.일 3국 사이에 전쟁이 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방지할 동북아 평화체제를 지금부터라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중.일 각국의 국민경제에서 생태적 전환이 시도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건설자본형 제국주의에 국민경제를 맡겨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책은, 이를 도모할 평화경제 세력을 지금부터 공동으로 가꾸어 가지 않으면 전쟁은 필연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담고 있다!"
유후, <무지의 사전>에서 <촌놈들의 제국주의>까지 오늘도 쉴틈 없이 달려 보았네요. 역시나 오늘도 배가 꽉 찬 걸요.
아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도 출간되었습니다. 아직 웹상에 등록이 되지 않아 소개는 다음 기회로 연기 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