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커다란 책이 보기에도 좋으니 더 좋은 책일까요, 작은 책이 들고 다니기 좋으니 더 좋은 책일까요. 책이 무슨 고질라도 아니고 "크기가 문제다!"라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쎄요. 결국엔 취향의 문제겠지만,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큰 책은 좋은 책이기 쉽다"라고. 어쩐지 말장난 같기는 하지만.
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연장'의 속성을 갖고 있는(!) 물질로서의 책,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인 책이라면 그 외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은 그대로 '보기 좋은 책이 읽기에도 좋다'라고 쓰일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책의 크기는 생각보다 미묘한 요소들을 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작비(따라서 가격)-보관상의 난점-오프라인 서점에서 진열-온라인 서점에서 배송 같은 것들. 그럼에도 '큰 책'을 내기로 결정했다면, 출판사 측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책'이란 야심찬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나 이건 저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제 앞에서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세 권의 '커다란 책'은 좋은 책이라는 것.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일반화에도 불구하고…)
* 크기 두 배, 기쁨은 서너 배?
일반 단행본(신국판) 대비 2.6배 2.4배 2.3배
이 책들이 커다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같은 문외한도 절로 감탄하게 되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사진들 때문. 하지만 이 책들이 좋은 이유는 비단 그것만은 아니에요. 사진과 어우러지는 글 역시 보는 우리의 마음을 좋게 하니까요. 아름다운 사진과, 재미있는 글, 그것을 받치고 있는 만족스러운 하드웨어까지. "지·덕·체"를 겸비했다고 할까요? (하하;)
<세상에서 가장 큰 중국책>은 사진집도, 여행 가이드도 그렇다고 여행 에세이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난 서양 친구들에게 내가 태어난 곳을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책으로 가능해졌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지만 그들은 내 조국의 정수를 잘 잡아냈다"는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민안치의 말이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 같네요.
풍경, 역사, 인간, 문화, 건축이라는 5개의 키워드로 각각의 상황에 맞는 사진과 글을 담아낸 책은, 중국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중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신 분, 혹은 중국을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바로 제목. 이미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라는, 이 책보다 손톱만큼 더 큰 책이 나와 있어요)
많은 분들이 넋을 놓고 보았던 동명의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살아 있는 지구>가 마음에 드신다면 아마 <한국 곤충기>도 마음에 드실 듯 합니다. 제목 그대로, 표지 그대로 한국에 살고 있는 곤충들을 다룬 자연 도감입니다. 도감이라면 아이들만 보는 것 아니냐고요? 에이 설마요.
각 계절별로 정리된 곤충들의 사진은 25년 동안 곤충을 연구하신 저자 김정환 선생께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직접 찍은 것이라고 해요(마지막의 인덱스에서 해당 곤충을 찍은 시기와 장소를 적어 두는 꼼꼼함까지). 그야말로 곤충의 달인. 또한 '곤충기'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단순한 도감을 넘어 한국 곤충의 생활사를 담고 있습니다. (방바닥을 기어가는 이름 모를 벌레에게도 나름의 인생 아니 충생이 있다는… 먹고 살기 참 힘들겠죠)
* 역시 커다란 책이 좋으시다고요? 그런 분들을 위한 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는 과거 오늘의책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출간한 책인데요, 화려한 도판들과 함께 '모세와 출애굽 : 신화인가, 사실인가',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는 어떻게 세웠을까?'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브라이언 M. 페이건의 팬이시거나, 절판되었던 책을 찾아 다니셨던 분들은 이번 기회에 장만하시면 될 듯.
* 커다란 책은 잘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권해 드립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상인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한 교양 과학서로, 생명과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스릴과 절망 그리고 꿈과 희망과 반역이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책" 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추천사가 눈에 띄네요)
* 크기보단 두께로 승부한다!
587쪽 598쪽 578쪽 463쪽
두께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책의 두께라는 '외향적 결과'는 순전히 '내용'에서 비롯하는 것. 하여 두꺼운 책들이 뿜어 내는 포스는 이렇습니다. "어때, 읽을 수 있겠어?" 그렇지만 그런 책은 또한 젖과 꿀이 흐르는 피안을 약속하니, 다 읽어 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그것이 바로 독서의 묘미!
<지젝이 만난 레닌>은 2006년 출간된 <혁명이 다가온다>의 일종의 완역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 부분 중 레닌의 텍스트에 기반을 둔 지젝의 사유만을 엮은 것이 <혁명이 다가온다>라면, 지젝이 직접 편집한 레닌의 텍스트까지 포함한 것이 바로 <지젝이 만난 레닌>인 것. '좀 더 부자'가 되고픈 개인의 욕망에 밀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모두의 꿈이 사라진 지금, 많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만물의 척도>는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한 미터법 혁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계의 발명이 근대 이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듯, '절대공간'의 개념을 인식시켜준 미터법 혁명이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지, 과학이 세상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추적합니다.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하다라, 조금 과장된 듯하지만 실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는지도… ("정복은 순간이지만, 미터법은 영원하리라!" - 나폴레옹)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라는 책,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테지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왕이 직접 내는 '책문'과 그에 대한 선비들의 답인 '대책'을 담고 있었습니다. <율곡문답>에는 바로 그런 책문과 대책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 조선유학의 최고봉,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에 대한 율곡의 17가지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신 지식의 최전선>은 다른 세 책에 비해 조금 빈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각각 평균 이상의 몸집을 가진 시리즈가 4권까지 함께 출간 되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지식의 최전선>(700여 쪽)이란 제목으로 과거 출간 되었던 책이, 변화된 세상에 걸맞는 새로운 지식들로 무장한 채 돌아 왔습니다. 각각 인문, 문화, 사회, 과학 분야를 다루는 네 권의 책은, 모두 21세기 현대학문의 최신 화두를 품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이번 주도 역시, 참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심리학의 고전 <마음의 해부학>이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나를 찾는 셀프 심리학>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왜 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남이 바라는 대로 사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삶을 찾을 것을 요구하네요. <경성상계>, <한국사傳 2> 등 다채로운 역사 신간들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크고 두꺼운 책들을 너무 많이 담았더니 벌써 배가 꽉 찬 걸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