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rain or come shine'이라는 노래제목처럼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도무지 더위가 가시지 않는 작은 방에서 인간다운 삶을 생각하는 일이 쉬울까요, 혹은 습도도 온도도 모두 적당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 실크 잠옷을 입고 한 손에는 온더락 잔을 들고 야경을 내려다보며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더 쉬울까요?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지만 짧은 생각으로는 전자는 그럴 여유가, 후자는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는 누가 생각하는 걸까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폴 발레리는 말했다던데.
물론 억울하지 않은 것도 아니에요.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데,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고?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울었다. 왜 사랑하는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배수아가 말했듯이. 왜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노력이 필요한가, 라고. 우리는 분명 사람이고 또 살아가는데. 왠지 소주를 마시면서 울어야 할 것 같은 탄식이지만.
책상 앞에 놓인 책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 어쨌거나,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배는 출발합니다. (단, 밀린 업무 때문에는 출발하지 못할 수도… 오늘의 배경음악은 촌스럽고 경박하지만 그럼에도 심금을 울리는 depeche mode의 'people are people' 정도?)
* 21세기에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쑥과 마늘, 아니 책들
"가치들의 하찮음이 압도적으로 중시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여기에서 어떻게 가치들의 진지함을 사유할 것인가? 일회적인 이미지들의 정서적.지적 영향이 두드러지는 변동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어떻게 교육에 대한 중심 물음의 자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21세기는 이상한 모순에 붙들리게 될 수도 있다. 일회적인 것이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을 위한 평생교육을 더 이상 단순한 하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의 실제적 기획으로 만들 지식 사회의 출현은 진지하면서도 유희적이고 젊은 장기적 가치들을 위한 새로운 도구의 비약적 발전을 예시해주는 것 같다."
유네스코, '21세기의 대화',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폴 리쾨르, 제레미 리프킨, 줄리아 크리스테바, 에드워드 윌슨, 나딘 고디머… 이토록 거창한 이름들을 담고 있는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적인 가치'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치는 결국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조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오늘을 만든 어제, 오늘이 만들 내일을 함께 사유합니다.
위의 이름들에서도 알 수 있듯 유네스코가 마련한 '21세기의 대화' 토론을 통해 발표된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교육 등 전방위에 걸친 석학들의 글은 윤리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고 영위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윤리는 무기한 연기되는 미래에서의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윤리, 그래서 나중에도 여전히 지금과 여기가 있도록 하기 위한 윤리이다." 어때요, 동의 하시나요?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 역시 <폭력의 시대>를 통해 '역사의 종언론'이 '종언'된 21세기를 조망합니다. <Globalisation, Democracy and Terrorism>이라는 원제에서 보여지듯이 그것은 '세계화, 민주주의 그리고 테러리즘'입니다. <폭력의 시대>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시대' 시리즈에 맞춘 티는 나지만) 그리 억지스럽지 않은 것이지요.
21세기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포괄적인 문제, 세계 제국들의 과거와 미래, 민족주의의 성격과 변화, 자유 민주주의의 앞날, 정치적 폭력과 테러의 문제의 다섯 개의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는 책은 다양한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원고를 모은 것으로 무겁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노학자의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제국의 종언'을 말하는 그는, 미국의 명분 없는 제국주의, 시장자유주의의 다름 이름일 뿐인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주의와 서방적 가치, 그리고 인권은 예컨대 기술의 도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 자전거든, 인명을 살상하는 AK47 소총이든,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공항 같은 기술적인 서비스든, 기술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오며 그것을 사용할 줄 알거나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똑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만약 제도나 가치가 기술처럼 받아들이기 쉽다면 (이론상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유사한 민주 헌법 아래 살아가면서 정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비슷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에서는 지름길이 없다. 이것은 저자가 특히 지난 세기 대부분을 살아 내는 동안 반추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극단의 세기'를 살아낸 노학자의 통찰이, 어쩐지 쓸쓸하기만 합니다.
이번에는 경제 분야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책소개를 빌려 올게요.
"'경제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이 전 세계를 돌며 각종 강연과 워크숍 등지에서 발표했던 글들 중 기아와 빈곤의 극복 문제 그리고 인간의 안전보장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모아서 엮은 센 경제 사상의 기본서이다."
흔히들 경제학이라고 하면 숫자로 이루어진 비인간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만 (저만 그런가요?) 그의 이름을 따 '센코노믹스'라고 불리우는 아마티아 센의 경제학은 조금 다릅니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아마티아 센, 기아와 빈곤의 극복, 인간의 안전보장을 이야기하다"라는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요.
굳이 먼 나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석훈 교수가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상세히 이야기하듯. 허울뿐인 경제대국, 그러나 내부로는 양극화와 무한경쟁으로 피폐해져 가는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왠지 어려울 것 같다고요? 걱정마세요. 저자가 각종 강연을 통해 발표한 원고들을 모은 책이니까요. 세계 어느 곳에도 이와 같은 형태로 묶인 적 없는, 센코노믹스 입문서.
그리고 지금, 바로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오늘을 담은 뜨거운 책(so hot!)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아고라 폐인들(!?)이 엮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가 그것.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그동안 답답한 시국 속에서 함께 분노하며, 함께 마음 졸이며, (재기 발랄한 촌철살인의 비평에) 함께 웃었던 바로 그곳, 아고라 토론방의 생생한 현장을 책으로 담았다는, 그 말 한마디 밖에는… 더 필요할까요?
그럼에도 굳이 덧붙이자면, 참 잘만들었다는 것. 정말로 수고하셨다는 것. 앞으로도 더많은 수고를 부탁드린다는 것. 책 표지에 써있는 이야기로 끝을 맺겠습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 - MBC 100분 토론,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 - 아고라 네티즌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법, 이런 게 아닐까요? (이런 국민들을 어떻게 바꾸겠어요?)
* 그리고…
하수상한 이 세월을 사람답게 살아내는 또 하나의 방법, 바로 놀이!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이 시국에 애들도 아니고 놀이는 무슨 놀이냐 할 일 없으면 영어 단어를 한 글자 더 외우던지 책이나 한 권 더 팔던지 이도저도 아니면 여자 친구한테나 잘해줘라 하시지 말고 한 번 읽어 보세요.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 씨는 이 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모든 천재 예술가들은 놀이를 통해 눈부신 영감의 샘으로 인도되었다. 놀이에는 두려움과 구속이 없다.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놀이는 다만 영혼의 맨살을 드러낼 뿐이다. 이 책은 우리의 어깨에 태양의 빛나는 권위에 도전했던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아준다. 나는 이 책을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와 바꾸지 않겠다."
결국, 상상력이 모두를 구원하겠죠?
어제 밤에는 한 시간 만에 얕은 잠에서 깨어나 뒤척뒤척 거리다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성경을 폈어요. 신자는 아니지만 어디선가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그것이 '맛나'인지 '만나'인지가 궁금해 편 것은 '출애굽기'.
배고픈 아이처럼 투정부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주시며, "하루에 자신이 먹을 만큼만 취하라, 내일 것을 남겨두지 말라"고 이르시지요. 내가 너희의 내일까지 걱정해 주니 나를 믿어라,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사람들은 '만나'를 챙겨요. 내일 굶으면 어떡하지, 하는 간난한 마음으로. 결국 그렇게 챙긴 '만나'는 다음 날이면 상해 먹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뿐이지만요.
저는 글쎄요, 나의 내일까지 앞서 걱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 눈물나듯이 고맙겠지만, 꼭 하나님의 '만나'가 아니더라도 내일이면 우리는 멋진 이웃을 만날 수도, 열매 가득한 나무를 만날 수도, 물고기 가득한 호수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 또한 신이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얘기는 하지 말고요) 걷는 걸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에요.
힘들어도 계속 걸어가는 것, 닿을 곳이 어딘지 몰라도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 결국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쓸데 없는 얘기가 길었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