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들려온 소식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이후 출판사 편집장 님의 글을 옮깁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이후 출판사에 감사 드립니다.

 



2007년 1월, 그러니까 꼭 3년 전이네요.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가 쿠데타로 쫓겨난 뒤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자기 국민들을 향해 쓴 편지글을 모은 책 <가난한 휴머니즘>을 편집하고 있었던 것이 말입니다.

절망하지 말라고,

우리의 가난은 부끄럽지 않다고,

'존엄한 가난'임을 잊지 말자고

분노와 슬픔, 온화함과 사랑으로 가득한 이 책을 만드는 동안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이 작은 나라가 제 심장 가까이에 살아 숨쉬기 시작했더랍니다.

 



 

아이티는 카리브 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북아메리카를 통틀어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며, 면적 27,750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900여만 명에 이릅니다.

1인당 국민총생산액은 1,600불(2005년 기준)에 불과하지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 대다수(80퍼센트)가 로마 가톨릭교회에 다닙니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이고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대부분의 아이티 민중들은 크리올 어를 씁니다.

문맹률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19세기, 서반구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했고,

1492년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프랑스 식민지가 된 뒤

사탕수수 농장 운영을 위해 수많은 흑인 노예가 수입되기도 했습니다.

1804년 독립 선언 뒤에도 내란과 독재에 시달렸고,

1915년부터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나라입니다.

1991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네 명이 대통령이 됐다가 쫓겨나는 등

정치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나라입니다.

 



 

바로 그 아이티에 강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희생당한 사람이 수십만 명이라고도 하고, 수천 명이라고 합니다.

언론 보도가 이렇게 어이없이 다른 것은 그쪽 상황이 파악조차 힘들 정도라는 것으로 읽힙니다.

리히터 7.0의 강진이었다고 하는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겨우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어른이 장난 삼아

"얘야, 넌 술이 좋으니, 아니면 콜라가 좋으니?"

하고 묻자

"나는 주스가 좋아요."

라고 단호하게 말할 줄 알았던 포르토프랭스 거리의 아이들도 그 지진으로 다치거나 죽거나 했겠지요.

소용없는 일일 줄 알면서도,

그곳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 봅니다.

수십만 명이 아니라, 그저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 희생당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휴머니즘>을 읽은 제 친구의 신랑은

이 책을 거래처 사장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FTA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그 사장의 생각이 바뀔 거라고요.

 

"그래서 어른들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놀 수 있는 하루를 만든 겁니다.

넌 가난하니까 물놀이할 자격도 없다고,

누가 감히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제 친구는 이 대목에서 엉엉 울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뱃속에 아기가 들어 있는 때여서 더 마음이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아이가 나와 살아야 하는 세상이

가난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있는 세상이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이 답답한 나라의 운명에 한숨만 쉬었던 저는

책이 나오고 한참 지난 뒤에,  

제 친구가 엉엉 울었다는 대목을 다시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슬픔의 전염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희망이 있기도 했습니다.

1953년 7월, 아이티의 항구도시 포르트살루에서 태어난 아리스티드는

1980년대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가장 큰 빈민가에서

정치적으로 바른 소리를 잘하는 신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30년 동안 아이티 민중을 괴롭히던 뒤발리에의 독재 정치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

아이티 민중의 희망을 담고 있는 메시지,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확실한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아리스티드의 교회로 이끌었다지요.

아리스티드는 1990년, 아이티 최초의 민주적 대통령 선거에서

67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가 군사 쿠데타로 강제로 실각,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1994년 10월 15일에야 유엔의 도움을 받아 16개월 남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위해

아이티에 돌아왔고, 2000년 선거에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2003년 2월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세력이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관저를 무단 점거한 뒤,

납치당해 중앙아프리카로 가야 했습니다.

부시 정부는 아리스티드를 속죄양으로 삼아,

아이티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몰았습니다.

아리스티드는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인상시켰고,

정부 보조금을 지급해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으며,

학교 건립과 문맹률 저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2007년 현재, 아리스티드는 아직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지구화에 맞서

아이티의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아리스티드 재단’과

‘라팡미 셀라비’를 통해 가난한 민중을 돕고 있습니다.

아리스티드가 쫓겨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지진에 아이티 정부가 좀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이티 지원을 위해 사람도, 물품도 마구 보낸다는데

이미 미국이 과거에 아이티에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 건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이티 사람들이 얼른 이 지진을 딛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난 주스가 더 좋아요."

했던 그 아이들이 힘을 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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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6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10-01-17 22:1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ㅜ_ㅜ
저는 사실... 게으름뱅이로 소문난 사람인 걸요.

중국산팬더 2010-01-2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활자유랑자 2010-02-08 02:2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그동안 좋은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