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MD란 참 고민 많은 직업이 아닐수 없다. '뭐(M)든지 다(D)한다'의 약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업계 농담이 있을 정도다. 딱히 불평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 <고민하는 힘>도 많은 고민을 안겨준 책이었다. 출판사에선 많은 판매를 기대하는데, 솔직히 긴가민가 한 경우 나는 고민한다. 물론 그것은 책의 작품성,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모든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려고 한다. MD는 좋은 책을 많이 팔려고 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경우에는 표지 탓이 컸다. 인문학 분야 베스트 1위를 당당히 달리고 있는 지금은 그런 고민이야 깨끗하게 사라졌지만, 그래도 턱을 괴고 어딘가를(설마 나를?) 보고 있는 강상중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조금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주 신간메일 제목엔 '김상중 교수'라고 오타를 내기도 했다. 물론 강상중 교수 탓은 아니다)

고민이란 말은 내게 싱크대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방치된 집안일이 그렇듯, 그릇으로 가득 찬 싱크대는 묘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말이면 남아있는 밥공기가 없어 큰 맘 먹고 설거지를 해보지만, 이런. 분명히 10분 전에 설거지를 한 것 같은데 이내 싱크대에는 그릇들이 놓인다. 물론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설거지를 해냈으므로 곧바로 설거지를 할 마음은 없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설거지가 쌓이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셈이다.  

사무실 책상위의 전화기는 또 어떤지. 딱히 수화기를 빙빙 돌리거나 하는 것도 아니건만, 내가 모르는 종류의 자연법칙이라도 작용하고 있다는 듯 전화선은 언제나 꼬여있다. 전화를 받다가 함께 딸려오는 전화기에 당황해본 사람은 안다. 마치 계단을 헛딛은 것처럼, 매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사무실로 전화를 거셨다가 받자마자 "여보세.. 컥"라고 해서 놀라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를…)

언제나 바라보면 잘릴 준비가 되어 있는 손발톱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손톱깎이 정도는 다룰 줄 알지만, 일종의 알람처럼, 똑똑 손톱을 깎고 있자면 나도 모르는 새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어느새 손톱이 이렇게 자란 거야? 똑, 똑. 도대체 그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똑, 똑. 이봐, 자네 혹시 내 시간 봤나? 똑. 분명 도시락 통에 넣어둔 것 같은데 감쪽같이 사라졌단 말이야. 거 참… 아, 젠장 입에 튀었네. 퉤퉤퉷! 

이것들은 내가 인생해 대해 가지는 느낌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언제나 꺼림직하고, 죄책감이 들며, 꼬여만 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도리도 없이 시간은 흘러만 간다.

다들 마찬가지인 건지 <고민하는 힘>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참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말 이 (알 수 없는 사람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책이 잘나갈까?"라는 내 고민은, 헛고민이었던 셈이다. 사실 우리의 많은 고민은 헛고민이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잔가지 같은 고민들.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 머리는 또 어떻게 만져야 좋을지 / 이건 어떠니 또 저건 어떠니 고민 고민하지 마!"라고 이효리가 노래했던, 그런 고민들. 그래, 그런 고민은 지겹다.

사실 우리가 계속해서 작은 고민들을 안고 사는 것은 편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손 안에 넣고 주사위를 굴리듯 '짱구'를 굴려볼 수 있으니까. 큰 고민이 가끔 말을 걸려 하면 "아 잠깐만, 나 지금 바빠"라고 별 죄책감 없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강상중 교수의 책은, 이 책을 집은 사람의 심리를 '배반'하는 구석이 있는 셈이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큰 고민'이니까.

이쯤에서 폴 발레리(의 것으로 알려진 경구)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사는 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 정원사가 꿈이 아닌 이상 그 고민은 '큰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고민의 잔가지만 치고 있다고 정원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마음먹은 당신에게, 한 손에는 막스 베버와 다른 손에는 나쓰메 소세키를 붙들고 있는 이 책은, 적잖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이 고민하시라고 특별히 첫 줄의 나머지 세 권을 철학책으로 채웠다. 여기까지 쓰느라 벌써 적정량(?)의 고민을 한 본 담당MD는 나머지 세 권에 대해 별 다른 코멘트를 붙이지 않겠다… 라고 하면 부장님이 부르시겠지!  

- 책날개에 상당히 재미있는 저자 사진을 담고 있는 <시차적 관점>은 아시다시피, 지젝의 책이다. 이 책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지젝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미 여기저기서 많은 정보를 들어 알고 계실 테니. 

이 책에는 파란색 '편집자추천' 딱지가 붙어 있는데, 대개의 경우 그것은 "아, 책 파는 사람이 읽어도 정말 좋네요"(개인적 취향 78%)이지만, 이번 경우는 "지금 당장 읽어버리고 싶은 책!"임을 뜻한다. 실제로 내가 838쪽을 자랑하는 이 두꺼운 책을 읽으려면 안식년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차적 관점>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1993) <까다로운 주체>(1999)의 뒤를 잇는 주저이며, 스스로 대작(Magnum Opus)라고 칭한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번역은 꽤나 매끄럽다고.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많은 신문기사들처럼 대충 보도자료를 짜깁기해 설명할 수는 물론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라고. (물론 이건 단순한 '패러디'에 불과하다. 나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인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 <드림 위버>는 그 두터움에 있어 <시차적 관점>을 닮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고민하는 힘>을 닮았다고 해야겠다. 형식에 있어서는 <소피의 세계>를, 플롯을 따지자면 <기억 전달자>를 닮았다고 말해도 좋다. 한 마디로, 소설의 형식으로 철학을 다루지만, 철학사적 접근이 아닌 논쟁거리를 던지면서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두껍지만 어렵지 않은 책. 

- <고대원자론>의 부제는 '쾌락의 윤리로서의 유물론'이다. 쾌락과 윤리와 유물론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지만, 같이 붙여 놓으니 꽤나 근사하게 들린다.

쾌락의 유물론은 하나의 '비판철학'이다. 고대 원자론자들은 신성하게 여겨지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신화, 종교, 제도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 속에서 강렬하고 완벽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쾌락의 철학을 설파하며, 이에 다다르기 위한 우정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자들을 따라 유물론에 '비판'이라는 역할을 부여하는 동시에, 쾌락의 '유물론'을 '윤리'의 문제로 만든다. (중략)

일체의 초월적 원리를 부정하고 형이상학적 체계를 뒤흔드는 ‘스캔들로서의 철학’. 당연시되는 것들을 의문시하고, 행복을 위한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는 철학. 이는 사회 체제에 수상하고 위험한 것으로 비쳐졌고, 끊임없이 관념론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기독교적 세계가 들어서면서 원자론은 더욱 철저하게 비난받고 금기시됐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은 현재적이다. 역사의 종언이 이야기되고 공고화된 체제가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기, 계층화가 확대되고 다른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 지금, 고대 원자론자들이 제시한 물음들은 여전히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 출판사 보도자료 중에서

 

 

 

 

 

 

 
<심리학 초콜릿>의 저자 김진세가 남자인 줄은 TV를 보고 알았다. 사실 <심리학 초콜릿>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금은 20대 여성들을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스타트 신드롬>은 꽤나 공감하며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작은 언제나 두려운 법이다. 새로이 무언가를 쥐기 위해서는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하고, 그것이 아무리 하찮을 것이라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 자신이 없어서, 의욕이 없어서, 상처가 두려워서, 게을러서. 아니면 정말 신체적으로 어지럽고 숨이 막혀서. 등등등. 오죽하면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을까.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스타트 신드롬이다.

반대로 누군가는 시작을 쉽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시작만 하고 만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이런 경우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준비된 말이 바로 '작심삼일'. 이 역시 스타트 신드롬에 포함된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게 마련이니.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하지 않은 일은 알게 모르게 마음의 다락방에 쌓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터져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스타트 신드롬>은 꽤나 위안이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달콤해도 위로가 곧 해결은 아니다.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초콜릿을 먹던 사람들이 이내 불어난 몸무게의 역습에 더욱더 우울해지듯.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래, 한 번 시작해보자!"라고 마음먹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 이후 10여 년간 (가끔씩) 꿈꾸었던 복싱 도장과 역시 10년을 벼르던 기타 학원을 다니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딱히 세계챔피언이나 버나드 버틀러를 꿈꾸는 건 아니다.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런 책을 쓸 생각이다. <미스터 챔피언 : 혹은 나는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챔피언 벨트를 훔쳤나?>(미국 출간 제목 : Mr. Champ :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Steal The Belt) 

샬라카불라 매지카둘라 비비디바비디부~

- <왜 그녀는 다리를 꼬았을까>. 다들 그 이유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베스트 순위로 쑥쑥 치고 올라오는 모습에 조금 놀랐는데, 개인적으론 '일'로 만나서 그런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락처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지! 이런, 또 부장님에게 불려가는 건가… 어쩐지 스포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을 세워 버렸다. 그러니까, 음. 그녀가 당신 앞에서 다리를 꼰 이유는 바로, 당신을 OO 하기 때문이다. XX도 YY도 아닌 OO. 바로 그거다. (죄송합니다) 

책은 말 그대로 '왜 그녀가 다리를 꼬았(고 또 이런저런 행동을 했)는지'를 분석한다. 신체언어를 다루는 책이란 말인데, 신체언어의 '아이콘' 데스먼드 모리스의 <피플 워칭>과 비교하면 특징이 두드러진다. <피플 워칭>이 학문적으로 접근했다면(이 말은 결코 '지루한'과 동일어가 아니다), <왜 그녀는...>은 신체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원하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가 한층 수월할 것이라는, '자기계발'의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하는 걸까…?)

그렇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설득의 심리학>을 읽는다고 설득의 달인이 되지는 않을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있다. 1~2도 정도의 차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굉장히 새롭게 마련. 그게 바로 독서의 매력이고, 다리를 꼰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이 책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 전에 나는 <미러링 피플>의 한줄 광고문구를 "막장 드라마 열광심리!"라고 썼다. 쯧쯧 혀를 차고 욕을 하면서도 막장 드라마에 빠져드는 인간의 심리가 바로 이 책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뇌다. 남의 행동을 바라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때와 똑같이 반응하는 신경 세포, '거울 뉴런'이 작동하는 것. 우리가 자연스럽게 맺는 관계들, 공감의 원천이 바로 그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그러니까, 만약 쌓여있는 책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해대는 이 서재의 글을 보고 책을 사게 된다면 바로 '거울 뉴런'의 작동 때문이라는 것! 사실 발로 쓴 것만 같은 이 글에 '거울 뉴런'을 작동시키는 '서브리미널'이 가득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 오늘의 인간 심리여행 마지막 책은 <심리 게임>이다. 원제는 <Games We Play> 즉 '우리가 하는 게임'이다. 상당히 재미있는 제목인데, 우리가 누군지 어떤 게임인지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친절한 번역서 덕에 책을 읽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인간의 사회적 교류에서 작동하는 심리 역학을 밝혀내 정신 의학계에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 책이다. 아기가 엄마의 보살핌 없이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정서적 교류를 통해 보살핌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인정받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게임을 만든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은 모두 게임하는 동물이다. 

이 책에는 무려 100여 가지 게임이 등장한다. 자기 주위의 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들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평생토록 지속되는 게임 집단으로 ‘인생 게임’이 있다. 인생 게임에는 ‘알코올 중독자’, ‘빚쟁이’, ‘나 좀 차주세요’, ‘너 이번에 딱 걸렸어’, ‘당신 때문이야’ 같은 게임이 있다. 성적 충동을 착취하거나 이겨내려는 게임들인 ‘당신들끼리 싸워보세요’, ‘유혹’, ‘난리법석’ 게임 등은 때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상당히 유쾌하고, 번뜩이며 또한 섬뜩하기도 한 이 책에는 무려 故 커트 보네거트의 서평이 실려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심리 게임>은 중요한 책이다. 과학도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단순한 실마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러하다. 이 책은 또한 마법적인 직관력을 지닌 소설가나 극작가는 그 어떤 의사보다 삶에 관해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헛소문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자신의 통찰을 의술에 보태고자하는 마음뿐인 여기 이 훌륭한 의사 선생님은, 작가들이 앞으로 만 년 동안 써먹어도 바닥나지 않을 이야기 구조(!)를 제공한다.

- 커트 보네거트, 1965년 6월 11일자 <라이프(Life)> 지 서평. (!)는 인용자(인문MD!)가 추가  

 

 

 

 

 

 

모노폴리 하면 브루마블이 생각나고, 브루마블 하면 호텔왕 게임이 생각난다. 역시 그 중에서도 최강은 호텔왕 게임이었다. 어린 시절, 서울에 호텔을 짓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주사위를 굴렸던가! 지나간 많은 세월이 그렇듯, 좋은 시절이었다.  

<미디어 모노폴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바로 그런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어떻게 '그들이' 헬싱키-스톡홀름-베를린으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독점'을 구축했는지, 가까워 올수록 주사위를 던지던 내 손이 어떻게 떨렸는지 같은 것들을. 나는 마지막으로 브루마블을 했던 21살 무렵, 과학생회장이었던 2년 선배에게 주사위를 집어 던지며 "이 자본주의의 개!"라고 울부짖은 일도 있다…  

물론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섬뜩하긴 하지만, 그래도 주사위는 공평하니까. '미디어 모노폴리'가 어린 시절의 그것과 다른 것은, 우리에겐 선택할 기회가 없다는 거다. 누군가는 돈을 가지고, 누군가는 미디어를 사들인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그 위에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돈 한 푼 없이 남들이 구축한 호텔들 사이를 '황금 열쇠'에서 대박 카드라도 뒤집기를 바라면서 겨우 지나다니는, 운이 좋아야 그저 파산하지 않을 뿐인 플레이어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속칭 '미디어법'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을 보라.

성문영 씨가 잠시 편집장으로 있었던 '서브'라는 잡지가 있다. 90년대 후반, 모던-브릿팝을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잡지. 그 잡지가 망한 것은 단지 당시 잘나가던 미성의 가수 XXX 씨의 앨범에 아주 낮은 별점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고를 빼버린 것이다. 일이 그러한데, '미디어법'이라도 통과하는 날에는! 정말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에 대해 우석훈 교수는 이런 평을 했다. "제대로 된 세계화 교과서, 이제야 나왔다!" DK 출판사의 책 답게 이미지와 도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은, 세계화의 여러 토픽들을 간결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뜨겁게 선동하진 않지만 팩트 그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 언젠가 나는 <벌들이 사라지는 곳>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려 했었다. 벌들이 감쪽 같이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이 무척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벌들이 사라지면 인류는 3년 내에 멸망할 것"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직장인의 군집 붕괴 현상' 쯤이었을까. <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에서 형제는 '납치' 모티브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나는 언제나 '실종'에 끌린다.  

벌들이 왜,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추측은 가능하다. 모든 나쁜 이유는 인간'들' 때문이고, 벌들은 죽은 것이다. 슬픈 일이다. 벌들은 식물의 자연 수분의 70%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벌들이 사라지면 자연히 작물을 얻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아인슈타인의 예언은 들어맞게 될 것이다. 꿀벌이 무슨 죄람! 

- 마지막으로 소개할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과 정보처리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숫자와 통계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숫자와 통계는 일견, 과학이 그러하다고 여겨지듯 차갑고 객관적인 '사실'로 느껴지지만 과연 그것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숫자와 통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단단한 위안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적어도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사실로 여겨지고, 우리는 기뻐하거나 실망할 지언정 적어도 불안은 느끼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상생활의 모든 불확실성을 '수'로 대체하려는 인간 심리의 작동 방식이라고 책은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첫머리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끝자리가 48로 끝나는 복권(로또)에 당첨된 스페인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7일 동안 연속해서 숫자 7에 관한 꿈을 꿨고, 7 곱하기 7은 48이다!" 결국 숫자와 통계란, 그것에서 우리가 얻는 위안이란 이런 식이 아닐까? 어쩐지 우디 알렌의 농담처럼 느껴지지만.

 


오늘의 마무리는 한 장의 그림(?)이다.  

한가로이 누워있는 한 마리의 수달과 다 컸지만 아직 애 티를 벗지 못한 멧돼지 한 마리.  

멧돼지는 벌벌 떨고 있는데 수달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따뜻한 털로 덮고 있으면서 뭐가 그리 무서운 거지? 어금니도 있고, 나보다 훨씬 강하게 생긴 주제에!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전부터 어금니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친구들 말로는 어금니 몇 개 간단하게 때우고 스켈링만 해도 돈 백은 우습다는 거다. 아, 이러니 떨지 않을 수가.   

사실은 오늘 회의 시간에 예술MD 님이 들고온 <일러스트 연습장 동물 그리기>를 보고 따라 그렸다… (이로써 이 글에서만 부장님께 불려갈 일이 세 번 생긴 셈이다)  

귀엽기도 하고 어딘지 애처롭기도 한 동물들의 그림이 가득하다. 게다가 따라 그리기도 아주 쉽다! (비록 내가 그린 멧돼지는 불쌍하게 벌벌 떨고 있지만…) 그래도 10,800원은 좀 부담스러운 게 사실. 흑.  

아 근데 나도 정말, 네 귀퉁이의 어금니가 모두 아프고, 잔고는 없고, 그래서 무섭다. 진심으로 그렇다. 치과가, 단순히 치과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무서운 곳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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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오버> 강준만, 고종석, 박노자, 유시민- 정치논객 F4! 그들이 돌아왔다! 누가 '구준표'가 될 것인가? 도대체 누가 '지후 선배'란 말인가? 이들 정치논객 F4의 '금잔디'는 또 누구?  

 

보이스오버> 4월은 과학의 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보다 더 재미있는 대중과학책들을 만나자!
과학책이 어렵다고? Don't Panic!  

 

* 보너스 컷 - "지젝님이 보고 계셔"

(2009.04.15. 추가 * 제공 : 마티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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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예술MD 2009-04-0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악 멋쟁이!!!

// 어쨌든, 일러스트 동물 그리기(와 자매품 인물그리기)는 알라딘 단독 할인 쿠폰이 붙을거니까 걱정말아요. 라는건 한 권 구입하시면 어떻겠냐는 의미. ^^

활자유랑자 2009-04-13 11:43   좋아요 0 | URL
여기서 어슬렁거리다 부장님께 혼나요 ;

치과싫어 2009-04-0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큰일인데요..
이에 통증을 느끼셨다면 정말 사소한 충치라 생각하고
이미 최소 20은 깔고 네 귀퉁이라 하시니 기본 80에..
줄줄이 비엔나처럼 딸려나오는 치료해야 할 충치떼 하며.
버틸수록 연봉이 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치료비가 늘어날테고
빨랑 가세요, 치과.
문제는 저도 아래위로 이가 아프다는 사실. ㅡ,.ㅡ;

활자유랑자 2009-04-13 11:44   좋아요 0 | URL
어디.. '함께 가면 싸져요' 이벤트를 하는 치과는 없을까요? ;

슬겅슬겅푸르릅 2009-04-0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하 어떻게 어떻게 해서 들어와보았는데요

! 글 정말 맛깔나십니다! (허허 처음 들어와놓고서는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는지요;; 근데 정말요!)
강상중 교수님 [고민하는 힘] 책 소개 보고서도 살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여기 들어와서 본 글 읽고난 후
살까말까 고민이 소장가치 확신으로 굳어집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글이 술술술~
제대로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비공개로 담아가도 될는지요~(이러면서 벌써 마우스 우클릭하고 있지만서도~ 하하)

늘 설렘 가득한 봄날 되시구요~ ^^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벌써 즐겨찾기 추가임돠~ 하하하)

활자유랑자 2009-04-13 11:45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종종 놀러오세요. 고맙습니다. (공개로 퍼가셔도 됩니다;)

핀볼 2009-04-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직장인의 애환과 고뇌(?)가 묻어있는 글이군요. 저 수달과 멧돼지를 그리고 있는 MD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흠..아름다운 모습은 아니군요;;) 어쨌든 부장님은 이 글을 보고 책을 읽고 싶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어 제발 인문MD님을 호출하지 않길 바랍니다! 어쨌든 봄은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계절이죠? 너무 일찍 더워진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고보니 숨막힐 것 같은 사무실에서 수달을 그리고 있으면 어쩐지 시원해질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서재에 올라오는 글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활자유랑자 2009-04-13 11:50   좋아요 0 | URL
어째서 아름답지 않을까요. 실물은 서재의 사진보다 훨 나은데... 아, 혹시 저를 알고 계시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 어느덧 벚꽃도 지고 있네요. 고생하세요.

로쟈 2009-04-0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책이 'Magnum Opus'인 건 맞지만 왜 '대작'이라고 옮겼는지는 의문이에요. 그냥 '대표작'이란 뜻이 더 적합한데요. 마침 오늘 책에 대한 짧은 원고를 쓴지라 눈에 잘 띄는 글이네요(원래 '애독'하고 있지만요)...

활자유랑자 2009-04-13 11:55   좋아요 0 | URL
"스스로 대작(Magnum Opus)라고 칭한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 문장을 보건데 아마도, '대작'(넓은 범위에서)과 '대표작'(지젝 자신의 저술 중에서)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언어적 경제성 때문일지도? 뭐 결국엔 '대작'이 '대표작' 보다 더 근사해 보인다는 이유겠지만요.

저야말로 항상 즐겨찾고 있습니다. :)

삶은계란 2009-04-1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톱 이야기를 하시니 황신혜밴드의 손톱이 생각나 오랜만에 음악감상 중입니다. 날도 좋은데 좋은 글에 음악을 더하니 10점 만점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3 11: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늘도 날이 좋은데요? :)

2009-04-10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3 11:57   좋아요 0 | URL
MD는 merchandiser의 약자에요. "상품이라는 의미인 ‘merchandise’에 ‘er’을 덧붙여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에 대한 결정권자 및 책임자를 의미한다" 라고 하네요... (네이버 백과사전)

말은 그럴 듯 하죠? :)

마티 2009-04-1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티 이철입니다. 지젝 사진이 어둡네요. 직접 스캔하셧나봐요. 달라고 하시지.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5 13:5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이철 2009-04-1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년에 제가 어금니쪽이 시려서 난생 처음 동네 치과에 갔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스켈링만 5만원.. 허걱. 그래서 이래 저래 지인을 통해 알아보았더니 어느 분이 성남에 있는 아주 친절하고 바가지없는 치과병원을 알려주시더군요. 성남 단대 오거리에 있는 남서울치과 입니다. 듣기로는 스켈링비가 1만원정도라고 하더군요. http://namseoul-dental.ohpy.com/main 031-748-7028입니다.

활자유랑자 2009-04-17 09:14   좋아요 0 | URL
성남까지 가려면 휴가를 써야겠는 걸요 ㅜㅜ

Claire 2009-04-1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인문MD님 글을 표현할 적당한 거리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쵸와 갈릭소스가 생각나네요. 얌얌..
기분좋게 읽고갑니다. 좋은 책 추천 땡큐^^

활자유랑자 2009-04-20 09:02   좋아요 0 | URL
갈릭소스 좋은데요? 많이 먹으면 좀 느끼하지만...;
좋은 하루 되세요 :)

비로그인 2009-05-0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님이 보고 계세! 아하하

활자유랑자 2009-05-11 19:15   좋아요 0 | URL
강렬하시죠 ;

2009-07-12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