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 <현문우답> 백성호의 이스라엘 마음순례 백성호의 현문우답
백성호 글.사진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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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쪽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온유하지 않은 이들은 누구일까.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이번에 예수는 '고집'을 겨냥한다.

고집이 뭘가. 내가 세운 '잣대의 성벽'이다. 사람들은 내 땅을 지키기 우ㅟ해 성벽을 쌓는ㄴ다.

그 성벽이 자신을 적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아군에게는 성문을 열고 적군에게는 성문을 닫는다.

그래야 내 땅이 지켜지니까.

예수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그건 성벽이 아니라 감옥이다. 신의 속성은 이 우주에 가득하다.

이를 외면한 채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감독이다. 산상설교의 메시지는 이처럼 역설적이고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다.

 

129족

예수는 "마음을 가난하게 해라"라고 했다. 마음의 창고를 비우라는 말이다. 우리의 창고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창고를 채우는 것, 그건 바로 집착이다. 접착제처럼 끈적이면서 내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집착이다.

집착할 때 마음의 창고가 가득 찬다. 집착을 비울 대면 창고도 빈다. 그 이치를 꿰뚫은 예수가 말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 예수는 그저 소박하게 살라고,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마음이 가난해질 때 비로소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의 창고를 비워야 하느님 나라와 통하게 된다.

'가난한 마음'이 곧 '하느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신의 속성'이다. 아무런 집착도 달라붙지 않는 자리. 거기다 바로

'하느님 나라'이다

 

163쪽

배추잎은 처음에는 빳빳하다. 고집이 있고 에고가 있다. 그런데 소금과 만나는 순간 풀이 죽는다.

왜 그럴까. 에고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176쪽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기준은 간단하다. 나에게 좋으면 선이고 나에게 싫으면 악이다. 내게 잘하는 사람은 선인이고

내게 못하는 사람은 악인이다. 우리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항상 '나'이다.

나의 이익, 나의 철학, 나의 잣대가 기준이다. 그 기준을 바탕으로 이쪽은 선, 저쪽은 악으로 나뉜다.

아담과 이브도 그랬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 에덴동산에는 선악이 없었다.

...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야 비로소 인류 최호의 부부 싸움도 벌어졌으리라. 한마디로 '선 긋기'다.

내 마음의 선긋기. 그로 인해 이쪽과 저쪽, 좋고 나쁨, 선과 악이 생겨난다. 그렇게 그은 선이 수십 개, 수백 개가 뭉쳐서 생겨난 결과물이 있다.

철학적인 용어로 '에고'라고 부른다.

그렇게 그어놓은 숱한 선들이 뭉친 것이 에고다. 그 선들이 에고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선을 지우려면 말이다. 그 선을 지워서 선악과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말이다. 그렇게 돌아가야 우리가 에덴동산을 만날 테니까.

 

262쪽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 레너드 스윗... 박자는 결핍을 채우려면 '관점'이 아니라 '하느님'을 맛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세계관은 없습니다. 세계관은 모두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거기선 아무것도 얻을 게 없습니다. 성경에선 하느님을 맛보고, 그걸 느끼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라이프(life, 생명)가 필요한 것이지

뷰(view, 관점)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세계관이나 교리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예수는 굳이 산성설교를 설하지 않았을 터이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관점'을 설하지 않았다.

삶의 사막에서 허덕대는 우리의 목을 축여주는 건 관점이 아니다. 대신 예수는 생수를 건넸다. 마음의 버튼을 누르고 마음이 작동하게 하는

진짜 물이다. 거기에 길이 있다. 

 

 

 

교회에서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 진작에 이렇게 표현해 주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십자가란 바로 십자가에 못박힌 나의 자아라는 것 말이다.

 

가끔 경험하기는 한다. 지금 이렇게 힘든 이유가 내 고집 때문이라는 걸 깨닫을 때가 있다.

내가 그걸 좀 포기하면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포기를 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거나 주변의 평화를 위해서 특별히 희생하는 차원에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보편 인간에게 있는 에고를 죽이는 과정이라는 걸 이해했다면 좀더 쉽게 그 시기를 보냈을 것 같다.

 

예수님이 오셔서까지 전하고 보여줬어야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지금 인류가 하나님의 뜻을 많이 오해하고 있다고, 그게 아니라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직접 말씀해 주시기 위해 굳이 달려오셨을 것 같다.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말씀해 주셨어야 할 그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성경을 읽고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데 좀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무척 적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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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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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 

오전 시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martin 에서 유래된 말로 오전이나 오후 시간 개념을 넘어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연극, 오페라, 콘서트 등의 공연을 뜻하는 말. 

오전 시간을 선호하는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 한다.

 

선남 선녀의 만남과 어긋남, 안타까움과 약간의 회한이라고 해야 하나.

전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아티스트, 그러나 쉽게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그의 삶에서는 이게 바로 단하나의 결점일까.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그를 알아본 스승과의 교류는 언제봐도 완벽한 조합, 부러움의 대상이다.

 

여자는 글로벌 감각을 타고 나 여러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며 유력 일간지 종군급(?) 기자로 활동한다.

이라크 같이 이슈가 되는 지역에도 가는데,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런 능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같이 살지 않지만 아빠는 독특한 세계를 지닌 유명 영화감독이고,

이 여자 외모까지도 출중한데,

거기다가 약자에 대한 관심과 실천까지. 머 하나 부족한게 없는 '여주인공'

그녀의 약혼자와 그 가족이 보여주는 깊은 신뢰와 사랑은, 약간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아니 내가 미국 사회의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으니까,, 잘 몰라 그렇게 느끼는 것 일 거다.

 

암튼 너무 좋은 배경과 능력 그리고 애틋하지만 사랑마저도 너무 감미롭게 날아가 버리는...

그녀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사랑이 이렇게 극적으로 매끄럽게 그녀 옆을 스쳐 지나간다.

그도 잘못한 건 없다. 다급한 와중에 휴대전화 정도는 집에 깜빡할 수도 있는건데 그 틈을 타서...

둘 다 무고한 피해자가 된다. 타고난 게 없는 평범한 사람 한 명이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좀 딴 얘기지만, 내 잘못이 없이 어떤 일이 일어나면 배드뉴스라도 마음 다스리기가 편하다.

근데 어느 정도 내가 잘못해서 또는 무심한 실수가 불거져 크게 벌어진 일이라면...

겉잡을 수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데... 대책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무고한 피해자들이다.

결정적인 역할은 그저 평범하고 주변인이었던 것 같은 사람이 하고,

운명은 이렇게 틈을 타서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고 가버린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나고 그간의 사건과 오해를 모두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을 건너 여전히 아름답고 원숙한 채로 만나는 이들은,,

닿을 수 없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빗겨간 사랑을,

멋진 그림처럼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은 저자가 한 말이다.

연애와 결혼이 점점 늦은 나이에 이루어지는, 이 시대와 호응하는 이야기 한 편이라 보인다.

저자의 인터뷰 일부를 남겨 놓는다. (어떤 브런치에 있던 글)

"누군가를 좋아해도 연인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많습니다. ...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쓴다면 아주 큰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퀄리티 있는 글로 써 보고 싶었어요. 작가로서는 도전하는 맛이 있었습니다. ...

어른이 된 후에, 가진 일도 있고 가정도 있는 가운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싹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연애 외에 중요한 것들 안에서 벌어지는 연애,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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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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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형질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 이 가설에 따르면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기 당뇨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태아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영양분이 부족할 때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영양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아는 뇌와 같이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당장 내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합니다. 설사 그 선택이 먼 훗날 당뇨병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할지랃 지금의 생존을 위해 먼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성인병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하지요.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때로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오래전 사회가 남긴 상처가 인간의 몸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57

왜 사람들은 그 원인의 그물망이 마치 처음부터 주어진 것인 양 생각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유전적 요소인 가족력조차도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데, 질병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만 고려할 때 우리가 놓치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지요. 어떤 이가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결핵에 걸리고 또 다른 이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린다고 이야기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3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었습니다. ... 외부에서 온 연구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 몇 년 뒤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사로 충남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근무지를 선택할 때, 저는 교도소 근무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근무한 곳은 만 23세 이하 재소자가 있는 소년교도소와 재판을 앞둔 성인 재소자가 머무는 구치소였어요. 교도소에서 의사로 일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었습니다.

 

 

301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제가 했던 활동들이 제게는 마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같은 것들이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면 의과대학 본과 1학년 겨울방학 때, 산업재해를 당한 분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한달 동안 지원상근을 한 적이 있는데요. ...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이 저 하나뿐이었어요. 그때 느꼈던 묘한 낯섦 같은 거요. ... 산업재해를 당한 후 유일한 직업이 되어 버린 우유배달을 하러 가야 한다고 아무 말 없이 오토바이를 끌고 새벽에 나가던 그 뒷모습에서 느꼈던 삶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거요. ...

그 아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보다 하루만 더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감당해내는 부모들을 보면서 느꼈던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들이 저를 살아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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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것’ ... 이것이 이 분 삶의 내러티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질병의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의 의미와 지금 한국 사회에 처져 있는 거미줄에 대한 고민과 함께 나는 어떤 지향점을 갖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해 준다.

그리고 깊숙이 숨어 있던 나의 내러티브를 불러내고 있다.

나는 부르심을 따라 살고 있는가, 그 뜻을 되새기며 살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게 될 것 같은,

이 책을 내 놓은

동아시아의 밝은 눈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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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번영 - 지구화 시대, 진정한 번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묻다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양혜원 옮김 / IVP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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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중

...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세상을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즐기도록 해 준다.

 

... 단순한 펜 하나로도 우리가 대면하는 많은 것이 단지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물이 사회적 관계라면 우리는 또한 사회적 관계로서 그것을 즐거워한다.

 ... 쾌락의 또 다른 부분, 더 크고 중요한 부분은 사물에 내재하는 사회적 관계와 관련이 있다.

 ... 쾌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대로의' 사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물로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다른 존재의 현존을 전해 주는 성례로 사물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가장 많이 즐길 수 있다. 이제 이 세상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자.

... 그리고 그것의 수혜자인 당신이 있다.

... 선물은 그냥 주어지는 산물이 아니다. 선물 가게 선반에 놓인 작은 장신구들은 선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선물은 관계다. 따라서 이 세상이 선물이라면 당신이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이기도 하다.

... 당신이 좋은 그리스도인이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하자.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고 하자. 상상력의 날개를 담대하게 활짝 펴서 모든 이웃이 당신에게도 그렇게 한다고 하자.

...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의 관계가 된다. 별 하나,

...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우리의 오감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분위기로 반짝거린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 자체 이상이며 여러 겹의 즐거움의 근원이다.

...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지구화는 세계종교가 줄 수 있는 번영의 비전을 필요로 하고, 지구화와 종교, 그리고 종교들끼리도 격렬하게 충돌할 필요가 없으면 건설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서로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

나가는 글에서는 의미와 쾌락의 연합을 번영의 핵심적 근원으로, 개인의 만족과 지구적 연대와 지구에 대한 공동 돌봄의 근원으로 규명하려 했다. 앞에서 내가 주장한 대로 지구화된 세계는 이것을 필요로 하고 종교는 이것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간략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바른 하나님에 대한 바른 사랑은 우리의 세상을 초월적 영광의 빛에 목욕시키고 기쁨의 무대로 바꾼다. 이 주장과 이 주장이 지지하는 좋은 인생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내 미래 작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 중요한 탐구에 다흔 사람들도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요를 담은 이 책을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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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분들의 추천사가 많이 달려있고,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약간 어려운 편이었다. 지구화 시대에 종교가 어떻게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

'바른 하나님에 대한 바른 사랑은..'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저자도 기독교 신앙이 왜곡된 부분을 안타까워 한다.

종교의 왜곡은 세계적인 심각한 문제인가보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뒤집어 엎으실 정도로. 

지구화 시대와 종교의 역할 가운데 인간의 번영의 길을 찾고자 모색하는 글인 것 같은데

어려워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언젠가 다시 읽어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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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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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이 이런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난독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한 글자 한 단어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문장이 여러개 이어지면 순식간에 길을 잃었다.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아주 약간 흐릿한 느낌을 가지고 서평 몇개를 읽었다. 이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알고 크게 위안을 삼았다.

​그렇지만 이정도로 대다수가 어려워하는 텍스트가 어떻게 아직도 그대로 존재하는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끝까지 읽기는 했으나 이걸 읽었다고 해야 하나, 글자를 따라 책장을 넘기며 끝 페이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하나.

열일곱 ​고로와 고기토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내가 읽다가 결국 놓쳤나 싶었는데 다른 서평을 찾아보니 그 역시 나만 놓친 게 아니라 책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었다.

​어떤 것에 관련된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가 전부다.

심지어 에필로그를 제외한 1장부터 6장까지는 모두 에필로그를 위한 트레이싱 페이퍼라고 평하는 글도 있었다.

 

그러나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을 겪기 전과 겪은 후는 결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사람한테 어떤 일을 당하고 하면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려 ​그것이 열일곱에 일어났다면.

 

​사춘기라고도 하고 성장기라고도 하며 이때의 어떤 고통은 끝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으로 박혀버린다고 한다. 나도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오래 영향을 미쳤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장면들...

​열일곱에 겪었던 그와 고로. 그리고 첫 아이에게 찾아온 정신박약증세.

삶에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같은 이런 일들을 겪고 소설로 삶을 지탱해 온 작가,

그가 건네는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란 말은 제법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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