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6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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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야간 우편비행기 관리 책임자 리비에르가 밤을 맞고 있다. 오늘 밤 안으로 남미의 세 곳,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우편비행기가 도착하면 유럽행 우편비행기에 우편물을 실어 보내야 한다. 야간 비행은 우편비행기가 열차 등 다른 교통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불가피하다. GPS 시스템이 존재하기 전, 일기예보도 불확실한 시대다. 야간 우편비행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고 작가 역시 비행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아 요즘 같은 수준의 안전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던 것 같다. 벌써 백 년 전이니. 

 

주인공 리비에르는 대의를 위해 생겨나는 개인의 희생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꾸고 미래를 앞당겨야 하는, 이 책에서는 '의무'라고 표현하는 것을 위해 인간의 나약함이나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그날 밤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 한 대가 연락이 끊기고 도착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6주 된 아내가 남편을 잃는다. 비행사 가족을 둔 이들의 슬픔도, 인간의 의무 앞에 선 자의 갈등도 헤아릴 수 없다. 인간이 가는 길이, 의무와 대의 그리고 개인의 희생 사이의 어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p19

이제 그는 밤의 한복판에서 불침번처럼, 밤이 인간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신호, 이런 불빛, 이런 불안을 보여준다는 것을 말이다. 어둠 속의 별 하나는 고립된 집 한 채를 의미한다. 별 하나가 꺼진다. 그것은 사랑에 대해 문을 닫은 집이다. 어쩌면 권태에 대해서도 문을 닫았거나. 그 집은 세상에 신호 보내기를 중단한 집이다. 전등 불빛 아래,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앉은 농부들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모른다. 농부들은 그들을 가둔 거대한 어둠을 뚫고 자신들의 욕망을 아주 멀리까지 보내고 있음을 모른다. 그러나 파비앵은 이제 막 천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높은 파고가 살아 숨 쉬는 비행기를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전쟁터 같은 뇌우를 열 개쯤 통과하고 그 사이사이 달빛 받은 공터를 지날 때마다 그리고 이 빛들을 하나하나 정복하는 기분으로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욕망을 알아본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불빛이 소박한 식탁을 밝히기 위해 빛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로부터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은 그 불빛 신호에 감동을 느낀다. 마치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서 절망에 빠져 구조의 불빛을 흔들기라도 하는 양 말이다.

 

숭고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야간비행을 소재로 하고 있어 소설 전체가 무척 서정적이다. 목숨을 거는 일인데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도 될까. 작가마저도 비행사로서 행방불명되어 소설 속으로 떠나버렸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비행사 파비앵이 폭풍우 속에서 한줄기 빛에 취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묘사는 너무 아찔하다. 위험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가서 데어버리는 인간의 욕망하고도 비슷하다. 갈등과 모순, 욕망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캄캄한 곳에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문명의 대의와 개인의 희생 사이를 생각하다보니 요즘의 택배기사들이 떠올랐다. 혹서기에 그들의 노동은 종종 언론에도 오르내리지만 피할 방법이 있을까. 이 시대에 택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하루 이틀 늦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사회를 멈추지 않고 그들도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에 쫓겨 물류를 상하차하고 배달하는 위험스런 일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깃들 수 있을까. 말이 되지 않는다. 무수한 황토색 직육면체들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 사이에는 인간의 숭고함 자체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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